범어로는 catvāri vaiśāradyāni이다. 사무소외(四無所畏)라고도 한다. 크게 부처의 사무외와 보살의 사무외로 나뉘는데, 그 내용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설법을 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는 의미는 공통된다.
부처가 열반한 뒤에 제자들이 부처의 위대함을 찬탄하면서 성립한 교의가 바로 불타관(佛陀觀)이다. 즉, 부처의 존재 의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한 결과에 해당하는데, 부처에게서만 발견되는 능력 또는 그 면모를 정리한 것이 바로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으로 ‘사무외’는 이 중에서 4가지 요소에 해당한다. 따라서 ‘사무외’는 불타관을 정립하려는 노력에서 나타난 하나의 설명 체계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
‘사무외’의 핵심은 ‘부처는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고 모든 형태의 번뇌를 소멸시킨 성자’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데 근본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나아가 중생들이 해탈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갖가지 방식으로 수행 길을 설하는 데 그 어떤 두려움도 없는 확신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사무외인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이 대승불교에 이르러 보살(菩薩: 구도자)에게 적용되고 계승된 것이다. 곧 대승의 보살은 중생들에게 적절한 모습으로 대승불교의 의의와 가치를 설법하는 데 아무런 두려움 없이 설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기여했던 네 명의 고승인 이엄(利嚴)·여엄(麗嚴)·경유(慶猷)·형미(逈微)를 사무외대사로 지칭했던 사실도 이와 같은 ‘사무외’의 의미가 계승된 사례에 해당한다.
부처에게 갖추어져 있는 사무외는 다음의 네 가지이다. 첫째 모든 법(法)을 제대로 알고 온전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고, 둘째 모든 번뇌가 이미 다 소멸되었으므로 두려울 것이 없으며, 셋째 수행 길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모두 설했다는 데 두려움이 없으며, 넷째 괴로움의 세계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는 길을 모두 설했다는 데 두려움이 없어서 늘 확신에 찬 설법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에 반해 보살이 성취한 사무외는 다음의 네 가지 내용으로 구성된다.
첫째, 모든 교법(敎法)과 다라니(陀羅尼)를 잘 기억하고 그 뜻을 온전하게 이해하여 설법을 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것. 둘째, 모든 중생들이 해탈하기를 원하는 그 인연과 근기(根機)를 잘 알아 그에 알맞게 적절하게 설법을 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것. 셋째, 세상의 그 어떤 중생들이 찾아와 어려운 질문을 하더라도 그들이 품고 있는 의문을 해결해주는 데 두려움이 없는 것. 넷째, 일체의 중생들이 제기하는 갖가지 형태의 어려운 질문들을 잘 듣고 그 의미를 이치에 맞게 답하여, 그들이 지니고 있는 의혹을 끊어주기 위해 자유자재하게 대답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사무외의 의미가 부처와 보살이 중생들에게 불교의 이치를 설법하는 장에서 두려움 없이 확신에 찬 연설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부처의 위상에 대한 교의적인 모색이라는 데 그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