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은 오침안(五針眼)의 선장(線裝)이며 목판본(木板本)으로, 표지의 제첨(題簽)에는 ‘서장(書狀)’이라 묵서되어 있다. 권수제(卷首題)는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다음 행에 ‘참학혜연록(參學慧然錄)’과 ‘정지거사황문창중편(淨智居士黃文昌重編)’의 편자 표시가 있다.
판식(版式)은 사주단변(四周單變)에, 반곽(半郭)의 크기는 세로 17.0㎝, 가로 12.6㎝이며, 계선 없이[無界] 10행(行) 18자(字)가 배열되어 있다. 판심(版心)은 상하백구(上下白口)에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이고, 판심제(版心題)는 ‘서(書)’이다. 지질(紙質)은 저지(楮紙)이며, 장수는 전체 138장(張)이고, 책 크기는 세로 24.5㎝, 가로 18.1㎝이다.
책 상태는 각 장마다 상하단에 수침(水沈)의 흔적이 있고, 1장부터 12장, 마지막 장이 훼손되어 배접한 것이 확인된다. 배접된 9장은 훼손된 하단 부분에 묵서로 내용을 보충하였다. 개장하면서 책의 상하(上下)단이 절단된 것으로 확인된다.
본문에는 묵서로 약체 구결(口訣)을 표시했고, 발문 기록에 "홍무이십년정묘…이색발(洪武二十年丁卯…李穡跋)"이라 판각되어 1387년(우왕 13)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 발문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혜보각선사서』는 송나라 대혜보각선사와 명사(名士) 42명이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으로, 공안선의 올바른 이해를 확립하기 위하여 간화선법(看話禪法)을 주장한 것이다.
대혜의 간화선에는 당시 선사들이 언어와 문자에 얽매이고 관념에만 빠져 있던 상황에서 선의 본래 목적을 부흥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서명(書名)을 줄여서 ‘대혜서장(大慧書狀)’ 또는 ‘서장(書狀)’ 등으로 이칭되며 주로 ‘서장’이라 한다.
『서장』은 대혜가 죽은 후 1166년(건도 2) 8월 제자들이 편지글을 엮어 경산 묘희암(妙喜菴)에서 간행되었다. 고려시대에 전해져 보조국사 지눌이 간화선을 지도하는 지침서로 학승들에게 널리 읽히게 되었다. 불교 강원의 사집과(四集科) 과정에서 배우는 과목 중 하나로 조선시대에 많은 전적들이 간행되었다.
초간본(初刊本)의 권말(卷末)에는 “건도이년세차병술(乾道二年歲次丙戌)(1166)팔월칙사경산묘희암간행(八月勅賜徑山妙喜庵刊行)”의 간기가 있으며, 이 간기는 남송(南宋)과 원(元)을 비롯한 중국 및 국내에 간행된 판본에 그대로 판각된다.
창녕 신흥사 도서 『대혜보각선사서』는 1387년(우왕 13) 간행본으로, 1166년(건도 2) 초간본 간기와 한산부원군 이색의 발문이 있다. 이색의 발문에 의하면 지담(志淡)과 각전(覺全)이 책을 널리 전하여 후학들에게 혜택을 주고자 간행하였으며, 『법보단경』을 스승으로 삼고, 『서장』을 벗으로 삼도록 하라는 지눌의 말을 빌려 편찬 및 간행 경위를 말하였다.
현존하는 1387년 판본은 국립중앙박물관 도서로 있고, 이색의 발문, 임금을 위한 발원문, 간행에 참여한 시주질(施主秩)에 인명이 확인된다. 이 판본은 초간본인 중국 경산 묘희사본과 행자수와 어미가 같은 11행 20자의 무어미(無魚尾)본이다.
이후 조선에서는 27회의 간행이 확인되며, 이 중 11행 20자 무어미본은 1418년, 1546년(석두사본) 2종의 판본만 확인된다.
창녕 신흥사 도서 『대혜보각선사서』는 10행 18자로, 임진왜란 이전 10행 18자 상하내향흑어미 판본은 1573년(선조 6) 평안 영변 보윤암(普潤庵)본과 1574년(선조 7) 황해 문화 월정사(月精寺)에서 간행한 판본이 현존하고 있다.
『대혜보각선사서』는 사대부 39명, 여성 l명, 승려 2명의 42명에게 보낸 편지 모음 62편으로 『대혜보각선사어록』(전 30권)의 권25~30에도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수행에 게으르지 않도록 격려하며 수행 방법, 불교 경전의 의미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창녕 신흥사 도서 『대혜보각선사서』는 1387년 이색의 발문이 있어 고려 후기에 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1월 15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