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혜보각선사서 ()

불교
문헌
문화재
1573년(선조 6) 평안도 묘향산 보윤암에서 개판하여 간행한 목판본 불서.
이칭
약칭
대혜서(大慧書), 대혜서장(大慧書狀), 서장(書狀)
문헌/고서
편찬 시기
조선 전기
간행 시기
1573년(선조 6)
저자
대혜 종고(大慧宗杲)
편자
혜연(慧然)
권책수
1책
권수제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
판본
목판본
소장처
천개사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서울특별시
종목
시도유형문화재(2016년 12월 8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서초구 원터길 45(원지동) 천개사
내용 요약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는 1573년(선조 6) 평안도 묘향산 보윤암에서 개판하여 간행한 목판본 불서이다. 이 불서는 송나라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가 올바른 선(禪) 수행의 가르침을 준 수행서로 목판본 1책이다. 조선시대 전국의 주요 사찰에서 대략 30종이 간행된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그중 천개사(天開寺) 도서는 불교사 분야는 물론 서지학 분야의 고판본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임진왜란 이전에 북한 지역에서 간행된 판본으로 그 희소성이 인정되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의
1573년(선조 6) 평안도 묘향산 보윤암에서 개판하여 간행한 목판본 불서.
저자 및 편자

『대혜보각선사서』는 송나라의 대혜 종고가 간화선법을 물어온 42인에게 사악한 견해를 깨뜨리고 정법의 눈을 열어 주기 위해서 보낸 62통의 편지글을 후에 그의 문인 혜연(慧然)이 기록하고 황문창(黃文昌)이 중편(重編)하여, 문도들이 비용을 모아 1166년(의종 20)에 남송(南宋) 항주(杭州)의 경산(徑山) 묘희암(妙喜庵)에서 처음 간행되었다.

이 『대혜보각선사서』는 약칭하여 ‘대혜서(大慧書)’, ‘대혜서장(大慧書狀)’, ‘서장(書狀)’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지사항

『대혜보각선사서』 천개사 도서는 권말의 간기(刊記)에 의하면 조선시대 전국 사찰에서 간행된 30종 중에 1573년(선조 6)에 평안도 영변의 묘향산 보윤암(普潤庵)에서 개판한 판본으로 확인된다.

이 천개사 도서는 근래 오침으로 새로 주1한 것으로 보아 불복에서 수습한 복장본(腹藏本)으로 보이며, 전체적으로는 결락이 없는 온전한 상태이다. 새로 개장한 책의 크기는 세로 26.8㎝, 가로 17.2㎝이다.

권수에는 서문이나 목차 없이 바로 권수제면이 나타나며, 권수제는 ‘대혜보각선사서’로 되어 있다.

다음 행 아래에는 ‘참학 혜연 록 / 정지거사황문창 중편(參學 慧然 錄 / 淨智居士黃文昌 重編)’이라는 저자 표시가 2행으로 기재되어 있어 이 책의 편찬 내력을 알 수 있다. 저자 표시 위에 이 책을 소유했던 사찰의 장서인이 날인되어 있다.

판식의 서지적 특징을 살펴보면, 변란은 상하단변(上下單邊)으로 계선(界線)은 없고 반엽(半葉)을 기준으로 반곽(半郭)의 크기는 세로 18.5㎝, 가로 12.8㎝이며, 행자수(行字數)는 10행 18자이다. 중앙의 판심부(版心部)에는 흑어미(黑魚尾)가 상하로 내향하고 있고, 그 사이에 판심제(版心題) ‘서(書)’와 장차가 표시되어 있다.

인경(印經)에 사용한 종이는 굵은 발문이 보이고 있고 간혹 파지를 점련하여 사용한 부분이 보이는데, 이는 주로 임진왜란 전후에 종이의 수급이 어려운 시기에 인경지로 사용한 흔적으로 보인다.

권말에는 이 책이 송나라에서 편찬되어 간행된 배경을 밝히고 있는 황문창의 후록(後錄)과 ‘건도이년(1166) 경산묘희암간행(乾道二年 徑山妙喜菴刊行)’이라는 송나라 시대 간기가 그대로 복각되어 있다.

아울러 고려 말 1387년(우왕 13)에 고려 왕실에서 간행하면서 첨부한 이색(李穡)이 쓴 발문도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는 시주질과 연화질이 기재되어 있어 보윤암본의 간행과 관련된 여러 정보를 상세히 알 수 있다.

특히 서사(書寫)에 의천(義天)이라는 이름이 보이고 있는데, 그는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직계 제자로 지리산으로부터 묘향산을 오가면서 불서의 간행에 적극 참여했던 금화(金華) 도인 의천으로 보인다.

판각에는 학조(學祖)와 법명(法明) 등이 주2로 활약했으며, 화사 영준(靈俊)이 간역의 책임을 담당하였다.

맨 끝에 “만력원년계유하일 묘향산보윤암개판보현사유전(萬曆元年癸酉夏日 妙香山普潤庵開板普賢寺留傳)”이라는 간기를 통해서 이 책이 1573년에 평안도 영변의 묘향산에 소재하는 보윤암에서 개판한 이후 그 경판을 인근의 본사인 보현사로 옮겨서 보존해 온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판식의 서지적 특징에서 천개사 도서 보윤암본은 1570년(선조 3) 지리산 신흥사에서 간행된 판본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찾을 수 있어 이를 저본으로 그 직후인 1573년 보윤암에서 복각한 판본 계통으로 확인된다.

편찬 및 간행 경위

우리나라에서는 송판본(宋板本)을 저본으로 고려 말 1387년에 지담(志淡)과 각전(覺全)이 우왕의 정비인 근비(謹妃)와 근신인 진천군 강인부(姜仁富) 등의 지원으로 처음 간행되었다.

이후 조선시대에 주로 강원의 교재로 사용하기 위해 이 고려본을 저본으로 순천의 대광사(大光寺) 등 전국의 주요 사찰에서 번각하거나 혹은 이를 재편하여 모두 30종 이상이 간행되었다.

구성과 내용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智訥)이 이 책을 보다가 도를 깨친 뒤 간화선(看話禪) 수행의 지침서로 삼았던 까닭에, 우리나라에서 주3 교과목 중 제1의 과목으로 선정하여 중시하게 되었다.

이후 이 책은 수행을 시작하는 승려들에게 바른 지견을 심어주어 그 중심을 잡아 줄 수 있는 길라잡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선종의 지침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 고려 초기에 전래된 이후 유통되기 시작하였으나, 조선시대 불교 전문강원에서 사집과의 학습 과정에 교재로 채택되면서 전국의 주요 사찰에서 간행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의의 및 평가

이 책은 조선시대 전국의 주요 사찰에서 대략 30종이 간행된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그중 1573년에 평안도 묘향산 보윤암에서 개판된 판본은 매우 희귀하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천개사 도서로서 불교사 분야는 물론 서지학 분야의 고판본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에 임진왜란 이전에 북한 지역에서 간행된 판본으로 그 희소성이 인정되어 2016년 12월 8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서울특별시 서초구 천개사 도서)

단행본

송일기, 『조선사찰본서지연표』(현재기록유산보존연구원, 2021)

기타 자료

『서울시문화재지정보고서』(서울특별시, 2015)
주석
주1

포장, 장식 따위를 고쳐 다시 꾸밈.    우리말샘

주2

나무나 돌 따위에 조각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우리말샘

주3

사미과를 마친 학인이 사집(四集)을 배우는 과정.    우리말샘

집필자
송일기(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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