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初木版)은 1856년(철종 7) 서울 봉은사에서 『화엄소초』를 번각한 목판이다. 본 경판은 『화엄경』의 주석서로 총 3,175판이다. 조선 철종 때 남호 영기의 주관으로 조성하여 봉은사의 판전에 보존되어 있다. 판전은 경판을 완벽하게 보관하기 위해 밑바닥을 온돌로 만들어 습기를 방지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조선 말기에 거질의 주석서를 판각하고 이 경판을 보존할 장판각을 세우고,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판전(板殿)’을 새겨서 내건 사례의 가치가 인정되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初)』는 당나라 청량 화상 징관(澄觀, 737~838)이 대표적인 대승불교 경전이자 화엄종의 소의경전인 『 화엄경(華嚴經)』에 상세한 해석을 부친 주석서의 일종인데, 일반적으로 ‘화엄소초(華嚴疏初)’ 또는 ‘화엄현담(華嚴玄談)’이란 이름으로 통칭한다.
우리나라에도 일찍이 『화엄경』이 전래되어 화엄종의 근본 경전으로 존숭되었다. 『화엄경』은 『 금강경(金剛經)』, 『법화경(法華經)』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의 사상을 형성하였으며, 불교 전문강원에서 교과로 채택하여 학습해 온 중요 경전 중 하나이다.
고려 초기부터 징관과 정원(淨源) 등의 『화엄경주소(華嚴經註疏)』가 수입되어 조선 후기까지 널리 유통되었는데, 시대에 따라 송판(宋板)과 명판(明板)을 저본으로 번각(飜刻)하여 수용하였다.
현재 봉은사의 판전에 보존되어 있는 『화엄소초』 경판은 모두 3,175판으로 대부분 한 판의 양면에 판각한 상태이며, 경판에 사용된 수종은 자작나무로 추정된다. 판전은 예불 공간으로 함께 사용하고 있으며, 경판은 창문이 없는 벽쪽에 나무로 책가를 만들어 가로로 차곡차곡 배가한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책가의 형태는 해인사 장경판전의 경우처럼 보안과 보존을 위해 별도의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여 세로로 배가하는 방식이 선호되고 있다.
경판의 서지적 특징은 변란이 사주쌍변(四周雙邊)으로 판면에 계선(界線)이 새겨져 있으며, 반곽(半郭)을 기준으로 크기는 세로 21㎝, 가로 14.2㎝이다.
반엽(半葉)을 기준으로 10행으로 배열되어 있고 한 행의 자수는 20자이다. 판심부(版心部) 위에 흑어미(黑魚尾)가 하향하고 있으며, 그 아래로 판심제 ‘화엄소초(華嚴疏鈔)’에 이어 권수와 장차, 시주자가 새겨져 있다.
권80의 끝에 1690년(숙종 16) 지리산의 대원암(大源庵)에서 각성한 간기(刊記)가 그대로 새겨져 있으며, 각 권의 끝부분에 다른 시주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봉은사판은 대원암판을 저본으로 중각(重刻)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행원품소(行願品疏)』에 1856년(철종 7)에 선영(善影)이 쓴 『삼간후서(三刊後序)』에 판각된 사실과 이어서 시주질과 연화질이 수록되어 있다.
일부 경판에 화엄조사 ‘청량국사상(淸凉國師像)’과 ‘화엄불보살(華嚴佛菩薩)’이라는 제기가 새겨진 판화가 있으며, 초상을 그린 화사(畫師) 이만주(李萬株)가 기재되어 있다.
본래 명판본을 저본으로 판각하여 인서체(印書體)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글자의 새김이 비교적 정교하다. 이 경판의 인경본(印經本)이 동국대학교도서관과 해인사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다.
조선 후기 숙종 때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던 상선이 임자도 부근에서 좌초되었는데, 이 배에 대량의 불교 전적이 선적되어 있어 백암 성총(性聰)의 지휘 아래 체계적으로 수습했던 일이 있었다.
그 후 성총은 상선에서 수습한 명나라의 판본을 저본으로 낙안의 징광사와 지리산 대암정사를 중심으로 지리산 인근의 여러 사찰이 참여하여 2차에 걸쳐 대략의 불경을 간행하였다. 이때 간행된 불전에 『화엄경』 주소류(註疏類)가 중심을 이루고 있어 조선 후기 화엄 교학이 성행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조선 말기 철종 때 동방의 율사로 이름을 날린 남호 영기(永奇) 선사가 망월사에서 『화엄경』을 설법하면서 쇠퇴한 교학을 유지하기 위해 1856년 다시 『화엄소초』를 중각하여 현재 봉은사의 판전에 보장하였다.
당시 이 개판 불사에는 왕궁의 내탕금을 받고 많은 불교 신자들의 후원으로 방대한 분량의 판각 사업을 완성하였다. 이에 봉은사에 『화엄소초』 경판을 봉안하기 위한 장판각을 신축하고 추사 김정희(金正喜)에게 ‘판전(板殿)’이라는 글씨를 받아서 현판을 새겨 걸었다.
『화엄경』은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원리를 중심사상으로 표방하며, 완전한 경명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라 부른다. 산스크리트 원전의 완전본이 아직 발견되지 않아 초기 경전의 상세한 성립 과정은 확실하지 않다.
여러 단계의 결집 과정을 거쳐 편찬된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인데, 중국으로 전래된 이후 한역된 진본, 주본, 정원본의 '삼본화엄경'이 전하고 있다.
이 주석서는 삼본화엄경 중에 주본화엄경을 대상으로 당나라 화엄학의 대가인 징관이 주소한 것이나, 그 명칭은 ‘연의초(演義初)’, ‘소초(疏初)’, ‘행원품소’ 등이 혼재되어 있다.
본 경판은 대승불교의 대표적 경전인 『화엄경』의 주석서로 조선 철종 때 남호 영기의 주관으로 조성하여 봉은사의 판전에 보존되어 있다. 판전은 경판을 완벽하게 보관하기 위해 밑바닥을 온돌로 만들어 습기를 방지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조선 말기에 거질의 주석서를 판각하고 이 경판을 보존할 판전을 설치하여 현판을 당대 명필가인 추사의 글씨로 판각한 사례의 가치가 인정되어 1992년 12월 31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