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암(竹菴)이 편찬하였다.
목판본 1권 1책이다. 권수제는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天地㝠陽水陸齋儀纂要)’이며, 표제는 ‘중례문(中禮文)’으로 되어 있다. 선장(線裝)은 오침안 선장본(五針眼 線裝本)이며, 판식은 사주단변(四周單邊), 반곽(半郭)의 크기는 세로 27.3㎝, 가로 20.7㎝이다.
본문에 계선이 있으며(有界), 반엽(半葉)은 7행 17자, 책장의 가운데를 접어서 양면으로 나눌 때에 그 접힌 가운데 부분인 판심(版心)은 백구(白口), 판심어미는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이다. 책의 크기는 세로 36.7㎝, 가로 26.0㎝이며, 종이 재질은 저지(楮紙)이다.
이 책은 1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말에 “융경2년무진3월일 경상도상주지보문산보문사 개판(隆慶二年戊辰三月日 慶尙道尙州地普門山普門寺 開板)”이라는 간행 기록이 남아 있기에 1568년(선조 2) 3월에 인쇄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간행 장소도 경상도 상주 보문사임을 알 수 있다.
수륙재(水陸齋)는 물과 땅에서 헤매는 고독한 영혼 및 굶주리고 있는 귀신인 아귀를 위로하기 위하여 불법을 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 의식이다. 당(唐)대 서역승 실차난타(實叉難陀)가 695년에서 704년 사이에 번역한 것으로 알려진 『불설구면연아귀다라니신주경(佛說救面然餓鬼陁羅尼神呪經)』에 의하면, 수륙재는 부처의 제자 아난(阿難)이 중생에게 음식을 보시함으로써 복을 구하고 재앙을 막고자 하였는데, 이것이 수륙재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남북조시대인 양(梁)나라 무제(武帝) 때에 수륙재 의문(儀文)을 짓고 수륙도량을 세워, 천감 4년(天監 4年, 505) 2월 15일 친히 금산사(金山寺)에서 수륙재를 거행하였다고 한다. 송(宋) 대에 이르러 성행한 수륙재는 고려 전기에 유입되었으며, 조선 초기까지는 왕실을 중심으로 행해지다가 중 · 후기에 이르면 일반 사찰에서도 활발하게 수륙재를 거행하였다. 현재 수륙재를 행하는 대표적인 사찰은 진관사(津寬寺)이다.
함안 달전사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는 수륙재 때 행해지는 여러 의식 절차를 요약해서 편찬한 것으로, 1권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6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례문(中禮文)』으로 불린다.
함안 달전사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는 간행 기록과 간행 연도(1568년)를 확인할 수 있어 조선 중기 서지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17세기 이후에 거행된 수륙재의 저본으로 활용되었기에 불교의례집으로도 그 가치가 인정된다. 국가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1월 5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