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창설에 역할을 담당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936년 난징〔南京〕에서 지청천(池靑天, 일명 이청천)의 휘하에서 민족혁명당에 입당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계획하였다. 1938년 10월에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창설에 참가하였다. 청년공작대는 결성 과정에서 김구의 승인을 받았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독자적인 조직체였다. 대장은 고운기(高雲起)였다. 청년공작대는 주로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청년공작대원은 중국인들의 항일의식을 고취하고 이들을 항일투쟁의 대열에 참여하게 하기 위한 선전 활동에 주력하였다.
1939년 11월 한국광복군 창설 준비 과정에 청년공작대원으로 고운기 · 노복선 · 지달수(池達洙) 등과 함께 임시정부의 군사위원회 위원과 군사특파원으로 임명되었다. 1940년 9월 17일 충칭〔重慶〕 가릉빈관(嘉陵賓館)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중국의 저명 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한국광복군 창립식이 거행되었다. 창립식에 많은 인사를 초청한 것이나 장소를 서양인이 주로 이용하는 가릉빈관으로 택한 것은 광복군 창설에 대한 선전 효과를 거둔다는 측면은 물론 이에 대한 협조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중국군사위원회 실무진을 압박하려는 의도였다.
광복군 성립 전례식은 임시정부의 주도면밀한 계획에 따라 이루어졌다. 참석 인원은 약 200여 명이었다. 상하이에서 탄생한 임시정부가 20여 년만에 정식 군대를 갖추게 되었기 때문에 한국광복군의 탄생은 임시정부 요인뿐만 아니라 관내 지역 한인사회에도 각별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특히, 중국과의 연합을 통해 임시정부의 위상과 직결된 군사 활동을 공식적으로 펼칠 수 있다는 점은 고난의 이동 시기를 거친 임시정부가 염원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전태산은 이때 창립 요원으로 지달수 등과 함께 참석하였다. 총사령부의 간부 요원으로 임명되어 사병의 모집 및 훈련, 선전과 정보 수집, 필요에 의한 유격전 수행 등의 임무 방안을 세우고 이를 강력히 추진하였다. 1940년 11월 시안〔西安〕으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이전할 때 경제부 조원으로 민영구(閔泳玖) · , 지달수와 함께 활동하였다. 당시 시안 시내 이부가(二府街) 4호에 총사령부가 설치되었다.
1942년 4월에는 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되어 제1구대 제1분대장에 임명되었으며, 그해 10월에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편제에 따라 본부에서 활동하였다. 그 후 8 · 15광복 때까지 항일 활동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한시준, 『한국광복군 연구』(일조각, 1993)
- 『독립유공자공훈록』 5(국가보훈처, 1988)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4권, 제6권(고려서림, 1983)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 5(탐구당, 1968)
-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권(독립문화사, 1966)
인터넷 자료
- 공훈전자사료관(https://e-gonghun.mpva.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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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중국 국민당이 1925년 광저우(廣州)에 수립한 중화민국 정부. 쑨원(孫文)이 죽은 후 후한민(胡漢民)이 광둥 정부(廣東政府)를 개혁하여 고친 이름으로, 후에 장제스(蔣介石)의 지도 아래 민주 공화국으로 발족하였으나, 중국 공산당에 패하여 1949년 대만으로 물러났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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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중국의 군인ㆍ정치가ㆍ중화민국의 총통(1887~1975). 이름은 중정(中正). 쑨원(孫文)에게 배웠으며, 국민당 혁명군 총사령관이 되어 북벌(北伐)에 성공하고 난징(南京) 정부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항일전에 힘썼으며, 헌정(憲政)하의 초대 총통에 취임하였으나 중공과의 전투에 패하여 정부를 타이완으로 옮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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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중국 산시성(陝西省)에 있는 도시. 황허강(黃河江)의 지류 유역인 웨이수이강(渭水江) 분지의 중심 도시이며, 방적ㆍ제분 공장과 발전소가 있다. 예로부터 한민족 활동의 중심지로 부근에 주(周)나라, 진(秦)나라, 한(漢)나라, 수나라, 당나라의 도읍이 있었다. 성도(省都)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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