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이평은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을 목표로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에서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창설하고 무장 항일 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광복군으로 개편되자 주요 간부로 활동하였다. 1941년에 피살되었다.
1939년 중국 시안〔西安〕에서 나월환(羅月煥) 등과 함께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를 창설하고 선전, 초모 활동 등 지하공작을 벌여 일본군 내부의 한국 청년을 공작대원으로 편입시키는 한편, 중국군과 연합하여 일본군의 후방 교란 및 일본군 막사 습격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0년 5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시안 성내 남원문(南院門) 가설극장(假設劇場)에서 ‘군민(軍民) 위안과 일선 장병 위문품 모집을 위한 공연대회’를 개최하자 대회 규찰장(糾察長)으로 임명되어 「국경의 밤」, 「한국의 일용사(一勇士)」, 「아리랑」 등을 10여 일간 공연하여 중국 군관민에게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41년 3월경 피살되었다.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