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960년대 초중반 배우 신성일과 엄앵란 커플을 주연으로 한 「가정교사」(1963), 「떠날 때는 말없이」(1964), 「맨발의 청춘」(1964) 등 이른바 ‘청춘영화’를 다수 제작하였는데, 이 영화들은 당대 젊은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시기 그는 「남과 북」(1964)과 같은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도 연출하였다. 이 영화들은 김기덕의 대표작으로 남아있다. 다만, 「맨발의 청춘」은 일본 영화 「진흙 속의 순정」을 표절한 영화로 비판받기도 한다.
1960년대 후반 이후 김기덕의 연출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해졌다. 「대괴수 용가리」(1967)는 한국 특수촬영 영화의 시초로 거론되며, 최초로 야구를 소재로 삼았던 「사나이의 눈물」이나 최초로 실제 복서를 출연시킨 「내 주먹을 사라」(1966) 등은 본격 스포츠 영화의 시초 격인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말띠 신부」(1965)와 같은 독특한 코미디 영화를 연출하기도 하였다.
1977년 「영광의 9회말」을 끝으로 장편 극영화 연출을 그만두었고, 이후 서울예술전문대학(지금의 서울예술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위원, 대종상영화제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2001년부터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2003년에는 부산예술대학 학장 등을 맡았다.
평가 및 의의
상훈
참고문헌
단행본
- 강소원, 「동시대의 공기를 담은 장르적 횡단: 김기덕의 영화세계」(『김기덕컬렉션 DVD 소책자』, 한국영상자료원, 2013)
- 주유신 외, 『김기덕: 60년대 한국 대중 · 장르영화의 최전선』(한국영상자료원·부산국제영화제 기획, 한국영상자료원, 2011)
- 『김기덕·심우섭: 2009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50년대 한국영화 스타일 2』(한국영상자료원, 2009)
인터넷 자료
- 한국영상자료원(https://www.koreafilm.or.kr/main)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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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있던 예술 대학. 1953년에 개교한 서라벌 예술 학교가 그 전신으로, 1957년에 초급 대학 인가를 받아 서라벌 예술 초급 대학이 되었고 1964년에 4년제 정규 대학 인가를 받아 이 이름으로 바뀌었다. 1973년 학교 법인 중앙 문화 학원에 합병되어 중앙 대학교 예술 대학으로 개편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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