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65년 9월 30일, 은행의 자금중개기능 등의 개선을 위해 예금과 대출금리를 크게 인상시켜 금융 제도를 개혁하고자 취해진 조치.
발단
경과 및 결과
게다가 정부는 동원된 자금을 경제계획에 입각하여 배분하기 위해 금융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시켰는데, 1961년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에 근거하여 불하했던 은행 귀속주를 다시 환수하여 일반 은행을 국유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1962년 1월에 제정된 이자제한법(이식제한령)제1조에 따르면, “금전대차에 관한 계약상의 이자는 연 2할로 한다.”고 제한하여 민간이 보유한 화폐는 실물자산에 대한 투자나 사금융시장으로 유입되어 은행으로는 집중되지 않았다. 더욱이 당시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이자율을 연 20%로 제한하는 것은 제도 금융기관의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부의 ‘지나치게 의욕적인’ 목표 성장률과 정책에 비판적이었던 미국 정부는 경제성장보다 경제안정에 중점을 두어 시장기능을 활성화시킬 것을 강조하였다. 우선 미국 정부는 7.1%의 목표 성장률을 낮출 것과 투자 규모를 줄일 것 등을 요구했고, 아울러 인플레이션을 완화시키기 위해 1961년 중단되었던 재정안정계획을 1963년에 다시 부활시켰다. 다음에 미국 정부는 한국의 금리 체계 등을 포함하는 금융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국제개발처 프로그램 일환으로 미국의 전문가를 파견하여 한국의 금융 제도를 연구하게 하였다. 이들은 1965년 6월에 『한국의 금융구조』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여기에서 이들은 저축을 증가시키기 위해 이자율의 법적 상한을 철폐하고 사채 금리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상할 것을 권고하였다.
미국 정부와 합의한 1965년 재정안정계획의 단서조항에 따르면, “금융개혁을 1965년 3/4분기 말까지 이행할 것을 합의”한 한국 정부는 금융개혁을 서둘렀다. 박정희 정부는 이자율 법적 상한을 철폐하지 않았지만, 이자제한법을 개정하여 국회의 심의를 거쳐 개정된 이자제한법을 1965년 9월 24일에 공포(법률 제1710호)하였다. 이 개정된 이자제한법 제1조에 따르면, ‘금전대차에 관한 계약상의 최고이자율은 연 4할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결정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근거하여 1965년 9월 30일에 예금금리와 대출금리를 대폭 인상하는 금리현실화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의의 및 평가
그러나 1965년 9월에 취해진 금리현실화조치가 금융시장을 개혁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금리현실화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연구자들은 금융의 자금중개기능이나 기업의 투자효율성 개선에 기여했다고 평가하는 반면, 그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연구자들은 금융의 자금중개기능이나 기업의 투자효율성 개선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 조선총독부 제령 제13호, 「이식제한령」(1911.11.1.)
- 법률 제971호, 「이자제한법」(1962.1.15.)
- 법률 제1710호, 「이자제한법」(1965.9.24.)
단행본
- 사공일, 김관수, 『한국의 금융구조, 1963~1975』 (한국개발연구원, 1977)
- 최진배, 『해방이후 한국의 금융정책』 (경성대학교 출판부, 1995)
- Cole, D. C., 박영철, 『한국의 금융발전, 1945~80』 (한국개발연구원, 1984)
논문
- 유철규, 「1965년 금리현실화: 재평가와 이론적 쟁점」 (공제욱·조석곤 공편, 『1950~1960년대 한국형 발전모델의 원형과 변용과정』, 한울아카데미, 2005)
- 이명휘, 「1950~80년 한국 금융시장의 위기와 대응」 (『사회과학연구논총』 22, 이화사회과학원, 2009)
- 정무용, 「박정희 정권기 저축동원의 전개과정과 성격」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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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이식제한령은 1911년 11월 1일에 조선총독부 제령 제13호로 제정되었는데, 이 법에 따르면 원금 1,000원 이상의 금전대차에 적용되는 이자는 연 20% 이하였다. 이 이식제한령은 1962년 1월 15일 이자제한법(법률 제971호)이 제정되어 폐지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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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미국 전문가는 스탠포드 대학교의 걸리(J.G. Gurley) 교수와 쇼(E.S. Shaw) 교수, 그리고 예일대학교의 패트릭(H.I. Patrick) 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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