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엽주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조선인 최초의 미용사.
이칭
이명
오이격(吳二格)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905년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황해도 사리원
주요 경력
화신미용원 경영, 엽주미용원 경영, 경성미용조합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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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오엽주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최초의 미용사이다. 일본에서 영화배우로 뽑히기도 하는 등 뛰어난 외모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일본인 히라야마 우메코가 경영하던 경성의 여자미용원에서 유일한 조선인 학생으로 미용 기술을 배웠다. 졸업 후 현희운의 경성미용원에서 일하다가 1933년 화신미용원, 1935년 엽주미용실을 개업하였다. 해방 후에는 다음 세대의 미용사를 길러내는 데 힘을 쏟았다. 근대적 직업으로서의 미용사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애쓴 선구자였다.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조선인 최초의 미용사.
인적사항

1905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오이격(吳二格)이다. 5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결혼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주요 활동

평양의 남산보통학교와 서문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6년 일본인 히라야마 우메코[平山梅子]가 경영하던 경성의 여자미용원에서 유일한 조선인 학생으로 미용 기술을 배웠다. 일본에서 오사카[大阪]의 쇼인고등여학교[樟蔭高等女学校] 전공과에 다녔다는 기록도 있다. 히라야마의 여자미용원을 졸업할 때 언론에서 “미용술을 배울만한 미를 가진”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졸업 후 바로 미용실을 개업하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연극 배우이자 조선인 미장원 경영자이던 주1이 만든 경성미용원에서 미용사로 일하였다.

1927년 일본으로 건너가 미남 배우로 유명하던 모로구치 츠즈야[諸口十九]가 대형 영화 회사인 쇼치쿠[松竹]에서 독립해 만든 모로구치 츠즈야사에 영화배우로 뽑혀 첫 번째 작품인 「미요키치 죽이기(美代吉殺し)」[1927]에 출연 예정이었다고 하는데, 실제 출연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후 3년 동안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한 뒤 귀국하였다.

1933년 3월 16일 종로의 화신상회 2층에 마사지실과 세발실을 갖춘 화신미용원을 개업하고 직접 화장을 맡아 하였다. 화신미용원은 조선인 여성 미용사가 개업한 최초의 미용실이었는데, “아무리 호박 같은 못난 여성이라도 …… 절대가인이 되어 나온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1935년 1월 27일 화신백화점에 불이 나서 영업을 할 수 없게 되자, 그해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와타나베미용연구소[渡邊美容硏究所]에서 연수를 받았다. 1935년 12월 19일 마츠다화장품[松田化粧品]의 지원을 받아 종로의 영보빌딩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엽주미용실을 개업하였다. 일본에서 수입한 최첨단의 파마 기계를 갖추었기 때문에 파마를 위해 찾는 손님이 급증하였다. 이 무렵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돈버는 직업으로 생각하느니보다 조선 부인들을 건강하고 어여쁘게 만드는 것이 나의 목적이오 또 반드시 해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기 때문에 하루 종일 서서 앉을 사이가 없어도 유쾌하고 기쁜 것뿐이죠. 나는 미용사도 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고 자신만의 미용 철학을 밝혔다. 엽주미용실 이후 경성에 조선인이 경영하는 미용실이 늘어나자, 경성미용조합 조선 측 조합장을 맡았다.

해방 후에는 소정미용학교, 대한군경원호고등기술학교(大韓軍警援護高等技術學校), 동아백화점 미용연구원 등에서 후배 미용사를 기르는 일에 힘을 쏟았다. 근대적 직업으로서의 미용사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애쓴 선구자였다. 1960년 4·19혁명 이후 미국으로 갔으며, 1972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참고문헌

원전

오엽주, 「색다른 직업여성과 그들이 본 세상: 젊어진다면 돈은 얼마든지」(『동아일보』, 1936. 1. 6.)

단행본

김경일, 신영숙, 정현주, 이상경, 김성은, 김은경, 박정애, 『한국 근대 여성 63인의 초상』(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5)
『구술자료선집 6: 모던걸, 치장하다』(국사편찬위원회, 2008)

논문

김은정, 「식민지 시대 미용사의 직업경험과 근대인식, 그리고 직업정체성 형성에 관한 연구」(『사회사상과 문화』 24-3, 동양사회사상학회, 2021)
김미선, 「1930년대 ‘신식’화장담론이 구성한 소비주체로서 신여성」(『여성학논집』 22-2,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2005)
주석
주1

예명은 현철(玄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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