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조선민족대동단의 일원으로 제2차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실행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주요 활동
또한 각종 선전물을 제작하고, 청년, 노인, 부인, 종교 분야의 인물들을 망라한 33인 대표를 구성하여 제2차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때 박정선은 부인 대표로 선정되어 제2차 만세시위의 준비와 실행에 앞장섰다. 그는 나창헌(羅昌憲), 이신애, 정규식(鄭圭植) 등과 함께 1919년 11월 25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이들은 이종춘(李鍾春), 김익하(金益夏) 등 노인 대표들이 중국요리점 장춘관(長春館)에서 「제2회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시위를 개시하기로 하였다. 이때 3개 시위대가 각각 남대문 조선은행, 동대문 한일은행, 정동 배재학교(培材學校)에서 자동차를 앞세워 출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계획이 다소 지체되어 1919년 11월 28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날 오후 5시경 안국동 사거리에서 만세시위에 앞장선 박정선은 독립선언서를 뿌리고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를 독려하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다시 벌어진 만세시위에 일제 경찰은 크게 당황하여 즉각적인 검거에 나섰다. 박정선은 이때 붙잡혀 종로경찰서에 구금되었다. 그는 신문을 받으면서 “하루라도 빨리 독립이 되기를 바란다.”, “만세를 부르면 독립이 된다 해서 만세를 불렀다.”라고 진술하였다.
이후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1년 5월 21일 풀려날 당시 “독립운동이 일어난 후에 무수한 청춘남녀가 고생을 하는데, 죽을 곳을 얻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1927년 12월 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논문
- 김은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내비밀결사 의용단의 활동」(『한국근현대사연구』 47, 한국근현대사학회, 2008)
- 장석흥, 「조선민족대동단 연구」(『한국독립운동사연구』 3,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9)
주석
-
주1
: 음력 10월 3일, 즉 개천절이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