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환 ()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최익환 전후면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최익환 전후면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대동단, 조선민흥회 등을 조직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신간회 출판부 간사로 활동한 관료 ·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9년(고종 26) 2월 12일
사망 연도
1959년 7월 25일
출생지
충청남도 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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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동단, 조선민흥회 등을 조직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신간회 출판부 간사로 활동한 관료 ·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충청남도 홍성 출신. 1904년 동학(東學)에 입교하여, 일진회(一進會)에 가입하였다. 1905년 서울의 광무일어학교(光武日語學校)에서 2년간 수학한 후, 1907년 5월 종사도량형사무국통역(從事度量衡事務局通譯), 1907년 7월 탁지부(度支部) 세무주사를 거쳐 1908년 충남 서천군 재무주사를 지냈다.

1909년 서천군 재무주사로 재직 중에 일진회(一進會) 회원으로 활동했던 과오를 반성하고, 3,000여 원을 탈취하여 국외로 망명하려다가 체포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고 감형되어 5년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15년 출옥 후 만주로 망명하여 봉천(奉天) 등지를 떠돌며 독립운동의 기회만를 엿보았다. 그런데 1917년부터 세계의 정세가 급변하자 1918년 봄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각 계급을 대표하는 인물을 규합하여 민족의 의지를 파리강화회의와 미국 대통령 등에게 알려 그들로부터 원조를 받아 독립을 이룰 목적으로 1919년 3월말 대동단(大同團)을 조직하였다.

이후 김찬규(金燦奎)를 포함한 유림들 뿐만 아니라, 청년층과 노동자층을 주된 대상으로 가입시켜 회원 확보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리고 각종 독립문서의 작성 및 배포를 통해 대동단의 조직을 정비하였고, 대동단원의 파리강화회의 참석을 도모하였다. 그 뒤 동년 6월 초 소위 ‘대동단사건’으로 체포되어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6년형을 언도받았다.

출옥 후, 1926년 10월 대동단의 동지 권태석(權泰錫), 명제세(明濟世) 등과 함께 각 계급을 망라한 민족적 유일기관으로 조선민흥회(朝鮮民興會)를 조직하고, 상무위원에 선임되어 민족연합전선의 결성에 주력하였다.

또한 1927년 2월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될 때, 규칙심사위원 및 출판부 간사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8년 만주로 건너가 광복단(光復團)에서 활동하다가 1937년 귀국하여 1년간 경찰에 구금되었다.

1944년 대고려재건당(大高麗再建黨)을 조직하려다가 체포되었으며, 1945년 다시 인민정치당을 조직하려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 후 1945년 한독당 중앙상무위원에 피선되었으며, 1946년 신한민족당(新韓民族黨)을 창당, 동 대표의 자격으로 비상국민회의(非常國民會議)의 최고정무위원(最高政務委員)에 피선되었으며, 민주의원(民主議院) 의원에 선임되었다.

6·25전쟁 중에는 휴전협상을 위해 애쓰다가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1957년 민주혁신당(民主革新黨)의 통제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1959년 7월 21일 동대문구 돈암동 자택에서 서거하였다.

상훈과 추모

묘소는 대전 국립묘지에 있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제국관원이력서(大韓帝國官員履歷書)』
『대동단실기』(신복룡, 선인, 2003)
『대한민국 국회50년사』(국회, 1998)
『한국전쟁과 휴전 체제』(집문당, 1997)
『독립유공자공훈록』7(국가보훈처, 1990)
『한국공산주의운동사』신판 3권(김준엽·김창순, 청계연구소, 1986)
「大同團事件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21)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신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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