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주1 체결 시점부터 미군 민사활동이 종료된 1955년 사이에 미국의 대한 원조정책의 초점은 전시 긴급 구호에서 장기 재건을 위한 지원으로 변화하였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기존에 그 역할을 담당하던 주한연합군민사원조사령부[United Nations Civil Assistance Command Korea, UNCACK]가 한국민사원조사령부[KCAC]로 개편되었다.
한국민사원조사령부는 기존 주한연합군민사원조사령부의 원조물자 통제 권한과 임무를 그대로 이양받았다. 이는 운송, 주2, 주3, 공공근로, 전력, 사회[복지] 사업, 노동, 농촌교도, 임업, 홍수통제, 주4, 주5, 철도와 항만 등 매우 광범한 분야에 걸쳐 있었다. 특히 전시 상황이 종료되면서 한국민사원조사령부의 ‘공중보건’ 계획은 단순한 ‘의학적 구호’ 차원에서 '근대적이며 광범한 공중보건 발전의 기초 작업을 수행'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이 공중보건 계획은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그 외연을 확대하여 국가 발전의 기초로서 사회복지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목표가 맞추어져 있었다. 보건 서비스 제공 뿐만 아니라 전문 의료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기관 설립 및 국내 의료진의 해외연수 등도 지원하며 한국의 보건행정 구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한국민사원조사령부의 활동은 미국의 냉전 정책과도 연계되어 있었는데, 국내외를 대상으로 한국민사원조사령부의 활동과 그 성과를 홍보하는 공보활동을 함께 수행하였다.
1954년부터 미국의 대한원조 담당자들의 관심은 한국에 대한 단기적인 처방보다 장기적인 계획을 추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와 같은 변화로 말미암아 기존 원조기구들은 개편되기 시작하였다. 1954년 하반기부터 경제원조계획의 통합관리를 위해 주한민사처와 경제조정관실을 합쳐 하나의 대민 원조기구를 만들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 결과 전후 대민원조활동을 맡아온 한국민사원조사령부는 본격적인 해체 수순을 밞게 되었다. 이에 1955년 2월 한국민사원조사령부의 계획 및 사업의 발전에 대한 책임이 경제조정관실로 이관되었다. 1955년 3월에는 한국민사원조사령부의 9개 도 지방팀과 서울시 팀이 5개의 '지역팀[Regional Civil Assistance Teams]'으로 통합 재편되었다. 한국민사원조사령부의 법무팀이 맡아왔던 역할은 경제조정관실로 흡수되었고, 대민공보도 주한미공보원으로 이관되었다. 한국민사원조사령부 산하 정부, 정치분과의 역할은 주6으로 이양되었고, 물자조달 업무도 경제조정관실로 이양되었다.
한국민사원조사령부의 담당 분야를 보면 개개인의 행동에 대한 규율 및 통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한국민사원조사령부는 대한민국이 국민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의 재건을 지원하고, 미국식 제도의 도입을 유도하는 존재였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