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보국회는 창설 이후부터 회원들 간의 내부 갈등 양상을 보였다. 사소하게는 기부금을 내지 않고 가입한 사람들부터, 회원의 불법 기부, 대한경제보국회의 기금 사용처 결정 등을 계기로 갈등이 노정되었다. 특히 열심히 활동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점 등이 자연스럽게 해체의 기로에 서게 하였다. 미군정 역시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대한경제보국회의 자연적 해산을 방치하였다. 대한경제보국회는 이승만에게 제출한 1946년 7월 18일자 보고서를 끝으로 공식기록에서 사라졌다. 정치자금 모금 기록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1946년 말에 이르러 조직명을 내건 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판단된다.
대한경제보국회는 미군정의 식량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기부금을 내어 미곡수집 캠페인을 벌였다. 그리고 미군정의 공보활동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였다. 이는 미군정 발간 공보잡지 『농민주보』 발간 비용이었다. 보다 중요한 활동은 정치인과 정당, 사회단체에 대한 보국 기금의 수집과 기부 활동이었다. 미군정은 물가 안정책을 시행하면서도 대한경제보국회 회원들에게는 대부를 허용하는 등 재정적 지원을 하였다. 이는 대한경제보국회를 통한 우익의 정치활동 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 이 자금은 이승만의 활동 기금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대한경제보국회의 미곡수집 활동은 성과를 얻을 수 없었다. 애초에 회원들이 서울을 떠나 방방곡곡을 다니며 미곡을 수집할 수 없었다.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다만 대한경제보국회는 해방 이후 최초로 우익 진영에 정치자금을 제공한 "그림자 조직"으로 기능하였다. 특히 이승만이 1946년 6월 남한 우익진영 조직과 자금을 장악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남한 정계를 지배하게 되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