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은 남한에 대한 모든 군사, 경제 원조를 미국이 관리하는 유엔군 사령부를 통해 제공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구호 필요액과 현지 배급 등에 관한 책임과 권한은 유엔군 사령부가 갖게 되었다. 민간구호원조로 명명된 이 원조는 유엔군 사령부 산하의 한국 민사원조 사령부가 담당하였으며, 미 육군부 예산이 주가 되는 구호 중심의 원조였다. 1951년 6월 경제협조처 원조가 종료됨에 따라 주한경제협조처의 미사용자금에 의한 원조 사업 역시 유엔 한국 민사원조사령부로 이관되었고, 민간구호원조에 대한 한국과 유엔의 협의기관으로서 중앙구호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중앙구호위원회는 유엔을 통해 도입되는 물자의 내역과 규모를 결정할 수 있었으며, 물자가 필요한 곳에 적절히 배급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하였다. 중앙구호위원회는 당시 물가를 안정시켜 인플레이션을 완화시키려고 했던 미국의 의도를 반영하여 원조 물자를 운영하였다.
1950년대 미국의 대한원조 운영에서 물가의 안정이 가장 큰 목표였다는 점에서 중앙구호위원회의 역할은 단순히 구호 물자를 전달하는 원조의 역할을 넘어 원조 물자가 물가 상승 요인이 되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즉 중앙구호위원회는 전시 상황을 반영한 한미 간 원조 운영 협의 기구의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