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보고서는 1961년 미국 국제협조처의 기술지원계획 책임자로 주한미국경제협조처의 부단장을 역임한 휴 팔리가 케네디 대통령 국가안보담당특별부보좌관 월트 로스토우에게 제출한 보고서이다. 한국에 존재한 불안을 이유로 미국의 즉각적 개입을 요구하였으며, 케네디 행정부가 한국 상황에 대해 획기적 전환책의 필요성을 점검하도록 계기를 제공한 보고서로 평가된다.
보고서의 작성자인 휴 팔리[Hugh D. Farley]는 주한미국경제협조처의 기술원조프로그램 책임자였다. 주한미국경제협조처의 근무자로서 1~2년의 근무 기간 이후 해당 분야의 보고서, 'Term-End Report'를 작성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팔리 보고서'라고 알려진 보고서는 이러한 의무 하에서 작성되었다.
팔리보고서는 25장의 서신 형식으로 되어 있다. 보고서는 원조의 계획, 예산 집행, 사업 집행에서 현지 원조 당국의 낮은 권한, 그리고 프로젝트 단위로 시행되는 사업의 비통일성에 대한 비판이 담겨져 있다. 이와 더불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주1의 기운, 4월 혁명 이후 안정되지 않는 분위기도 함께 지적하며 미국 정부의 특사 파견은 물론 한국 정부에 대한 직접적 고문 파견 등의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 나아가 당시 한국 정부가 계획하고 있던 국토 건설단 사업에 군을 동원할 것을 제안하고, 한국의 안정화를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참여를 이야기하는 등 기존에 논의되지 않거나, 당시로서는 비현실적 수준의 제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보고서는 사실 주한 경제조정관실에 제출된 역대 담당자들의 보고서와 비교했을 때 특별한 내용을 담고있지는 않다. 다만 이러한 형식의 보고서는 일반적으로 한국 내 담당기관에 보내졌던 것과는 달리, 팔리는 워싱턴에 복귀한 후 지휘 체계를 무시하고,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중앙정보국 등 중요 기관에 배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당시 케네디 대통령 국가안보담당특별부보좌관 월트 로스토우[Wlat W. Rostow]에게도 전달되었다. 케네디 행정부는 이 보고서 회람을 발단으로 관계 부처들의 보고서 및 자문을 통해 미국의 대한국정책을 재검토하였다. 이후 1961년 5월 5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한 케네디 대통령이 국무부 동아시아 담당관보 매카너기[(Walter P. McConaugy]의 책임 아래 한국 관련 보고서를 준비할 임무단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즉 팔리보고서는 1960년대 초 미국의 대한국정책 변화 및 새로운 대한국원조의 특별대책반이 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