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9월 1일 주간지 『여성민보』를 계승하여 창간하였다. 여성일보 사장인 김한우(金漢宇)는 여성민보사의 사장이었다. 창간 당시 『여성일보』는 「혁신 발간하면서 만천하 독자에게 엄숙 기약한다」는 제목의 재창간사에서 "본보가 앞으로 지향하여 개척해 나갈 가치적 논지는 재론할 것 없이 여권 확립과 사회 비판에 중점을 두되, 편파성을 배격하고 공정 신속한 보도 사명을 완수하는 데 심혈을 경주하려 한다. 여권 확립이 말로만 그치고 있는 현실의 시정에 노력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의 질적 향상을 위한 지도 계몽과 추락된 여성 윤리관의 확립을 기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여성을 유린하는 남성, 그리고 모든 사회 악은 가능한 주1을 동원해서 규탄과 비판을 가하여 자유와 평화의 상징국으로 만드는데 일익이 되도록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라고 밝혔다. 논설위원으로는 수도여자사범대학 강사이자 4월혁명동지회 지도위원이었던 김춘봉이 있었다. 사무실은 서울시 종로구 종로3가에 있었다.
『여성일보』 의 구성은 4면의 16단제였으며 창간호의 1면의 기사들은 「구파, 신파와 완전 결별」, 「부인회 수습 난망」, 「일인의 양식에 호소」, 「제36회 임시국회 폐회」, 「대국회 대책 논의」 외에 이 신문의 창간을 축하하는 글로 구성되었다. 2면은 「주부와 가정경제」, 「헬렌켈러」, 「가정요리」, 「육아」 기사 등이 있다. 3면은 「160명 본처가 집단 진정」, 「전매청 부식물 말썽」, 「혁명을 모독하는 무리들」 등의 기사가 실렸다. 4면은 어린이 난으로 「만화 세계」와 「동화」로 이루어져 있다.
매주 금요일에는 「독자문예란」과 「결혼상담란」을 통해 중매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기도 하였다. 신문 내용은 여권을 신장하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정치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의도로 창간했음을 기사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성일보』 는 여성계의 활동상을 소개하고 보도함으로써 여성 일반의 교양을 높이는데 이바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