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는 1927년 평안남도 출생으로 1992년 사망하였다. 국학대학을 졸업한 미술학도로, 각종 출판사 및 잡지사에 삽화를 그리다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육군본부 정훈국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국방부에서 발행한 주간지 『만화승리』, 『사병만화』 등에 캐릭터 갈비군을 발굴하여 게재함으로써 만화가로 데뷔하였다. 「갈비군과 막내둥이 딸딸이」, 「갈비군과 매깹이」, 「갈비군의 딸딸이」, 「꼬마 국회의원」, 「꼬마 변호사」, 「꼬마 탐정 갈비군」, 「꼬마와 갈비 군」, 「꼬마탐정 갈비」, 「난이와 갈비군」, 「머사니」, 「새침데기」, 「양지영감, 제로」, 「짬뽕, 회색커튼」, 「흰구름 뭉게뭉게」, 「되돌아온 영」, 「맹비서」, 「바보와 쫌보」, 「이름없는 섬」, 「탐정의 거리」 등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1956년에는 김용환이 회장이었던 대한만화가협회 소속으로 활동했다. 이후 만화에 대한 각종 제재와 어려운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한국만화가협회를 이끌어오면서 회장을 3회 연임하였다.
「꼬마와 갈비군」 시리즈는 총 7권으로 1965년 12월 5일부터 1966년 1월 26일까지 삼협문화사에서 발행되었으며, 당시 25원의 가격으로 판매되었다. 내레이션과 다중 시점의 서사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국보 도난 사건 문제를 밀도 있게 다루며 전형적인 권선징악형 서사구조를 보인다. 전형적 캐릭터, 갈등 상황에 대한 보편적 대처 등 전형적인 명랑만화의 형식을 갖는다.
매일 구두를 닦으며 적은 돈을 벌면서도 하루 종일 번 돈 30원을 꼭 저축하는 성실한 소년 갈비군은 수상한 취업 제의를 받게 된 친구를 도우려 미행하던 중 도굴꾼들의 정체를 알게 된다. 갈비군은 친구와 힘을 합쳐 도굴꾼 일행을 모두 잡고, 그들이 훔쳐 간 국보를 되찾는다. 이후 우연히 얻은 진주로 인해 둘의 사이가 틀어지지만 서로 잘못을 인정하며 성실했던 구두닦이 소년으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면 살아간다.
전형적인 명랑만화 형식을 갖고 있는 이 작품은 당대의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매일 구두닦이로 번 돈을 저축하며 살아가는 갈비군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린이들마저도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던 1950~60년대의 가난한 시대 상황을 대표한다. 당시에는 무분별한 문화재 도굴, 도난에 관련된 신문기사를 자주 접할 수 있었는데 이로 인해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1962년 「한국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국내 문화재 도난 사건이 늘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은 이러한 시대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명랑만화답게 어린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 잘 나타나 있는데, 문화재 도굴에 대한 내용을 세세하게 설명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전형적인 권선징악 구조를 갖고 있는 이 작품은 주인공의 선행을 통한 지난 행적들을 통해 위기를 벗어나거나 도움을 얻는 등 결정적인 장면에서 권선징악을 강조한다. 당대의 만화들이 그렇듯 이 작품 역시 국가 체제 유지를 위한 질서와 선을 권장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서사 구조에 있어서 내레이션과 다중 시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주인공 꼬마와 갈비군 두 인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보조 인물들, 도굴꾼 악당들의 시점 등 도난 사건을 다양한 시점에서 보여준다.
전형적인 명랑만화의 특징을 갖는 이 작품은 시대가 요구하는 선량한 갈비군 캐릭터를 통해 1960년대 당시 빈번했던 문화재 도굴 사건을 조명하고 있다. 당시 사회적 문제를 주요 소재로 하여 이를 권선징악에 맞춰 표현한 이 작품은 명랑만화가 갖는 계몽적인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당시 정권이 지향하는 바를 표현하는 초기 명랑만화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 만화사적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