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29민주화선언 이후 11월 11일 언론을 억압했던 「언론기본법」이 국회에서 폐지되었다. 이후 등장한 노태우 정권은 “대통령 얼굴을 시사 풍자만화에 그려 넣어도 좋다”라고 공표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듯 했지만 여전히 군사정권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6·29선언은 군사정권의 권위주의적인 통제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과거에 금기시되었던 다양한 표현을 시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사만화를 연재했던 안기태는 깡패 용팔이 사건을 풍자하는 시사만화를 그린다. 안기태는 시사만화 작가로는 최초로 언론인 강제 해직을 당한 인물로 꾸준히 정부를 비판하는 시사만화를 그려왔다.
1988년 10월 시사만화가 안기태가 ‘용팔이 정치테러 사건’을 우회적으로 풍자한 만화를 게재한 후 귀가하던 중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테러를 당해 머리 부상과 갈비뼈 골절의 중상을 입었고, 테러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안기태의 딸에게도 협박전화를 하였다. 반공연맹과 국가안전기획부 소행이라 추정되었지만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하는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1987년 6·29민주화선언은 언론이 지금까지의 권위주의와 군사정권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율 경쟁시대에 진입하게 됐음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6·29선언은 한국 신문 시사만화의 창작 환경에도 커다란 전환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 운동이 6·29선언 이후 전개됐으며, 1988년에는 국민주 공모 형식의 신문 『한겨레』가 창간됐기 때문이다. 6·29선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안기태 필화사건은 억압됐던 창작 환경이 변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행태를 보여준 사건이라 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