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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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이북해역도」는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이 평안도 가도에서 경기도 강화도까지의 해로를 수록하여 제작한 지도이다. 필사본이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 ‘신경준의고지도’의 2매 중 하나이다. 해로를 실선으로 표현하는 대신, 구간별 정보를 담은 글귀를 해로 방향으로 기입하는 방식으로 표시하였다. 조선 후기, 평안도에서 경기도 강화도까지의 해로와 해저지형을 상세히 기록한 유일한 지도로서 의의가 있다.
강화도 이북해역도 (江華島 以北海域圖)
「강화도 이북해역도」는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이 평안도 가도에서 경기도 강화도까지의 해로를 수록하여 제작한 지도이다. 필사본이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 ‘신경준의고지도’의 2매 중 하나이다. 해로를 실선으로 표현하는 대신, 구간별 정보를 담은 글귀를 해로 방향으로 기입하는 방식으로 표시하였다. 조선 후기, 평안도에서 경기도 강화도까지의 해로와 해저지형을 상세히 기록한 유일한 지도로서 의의가 있다.
「강도지도」는 조선 후기 강화도의 상황을 묘사한 지도이다. 1축의 채색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강화도는 일찍부터 군사요충지로 인식되어, 돈대와 성곽 등을 쌓아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이 지도에는 강화도를 중심으로 김포와 통진, 교동 일대와 한강, 임진강, 예성강 하구를 그려 놓았다. 또 강화성을 비롯하여 군사기지인 월곶과 제물, 초지 등의 진보를 표시해 놓았다. 18세기 중엽 무렵, 강화도의 군사적 상황과 각종 관아 시설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지도이다.
강도지도 (江都地圖)
「강도지도」는 조선 후기 강화도의 상황을 묘사한 지도이다. 1축의 채색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강화도는 일찍부터 군사요충지로 인식되어, 돈대와 성곽 등을 쌓아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이 지도에는 강화도를 중심으로 김포와 통진, 교동 일대와 한강, 임진강, 예성강 하구를 그려 놓았다. 또 강화성을 비롯하여 군사기지인 월곶과 제물, 초지 등의 진보를 표시해 놓았다. 18세기 중엽 무렵, 강화도의 군사적 상황과 각종 관아 시설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지도이다.
고려시대 병기를 보관하던 창고.
금강고 (金剛庫)
고려시대 병기를 보관하던 창고.
고려의 제22대(재위: 1211~1213) 왕.
강종 (康宗)
고려의 제22대(재위: 1211~1213) 왕.
강화만은 경기도 서쪽 해안에 있는 만이다. 한강의 하류부에 해당하는 해역으로 경기만의 일부이며, 강화도를 비롯한 다수의 섬들이 포함되어 있다. 조석 간만의 차가 크기 때문에 넓은 간석지가 발달하고 있어 어획량이 많고 염전이 이루어졌으며, 간척 사업을 통한 공업 단지, 신도시 등이 건설되는 등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지역이다. 2007년부터 큰 조차를 이용한 조력 발전 사업이 추진되었으나, 세계 5대 갯벌이자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는 강화도 일대 갯벌의 훼손에 대한 우려로 인하여 중지된 상황이다.
강화만 (江華灣)
강화만은 경기도 서쪽 해안에 있는 만이다. 한강의 하류부에 해당하는 해역으로 경기만의 일부이며, 강화도를 비롯한 다수의 섬들이 포함되어 있다. 조석 간만의 차가 크기 때문에 넓은 간석지가 발달하고 있어 어획량이 많고 염전이 이루어졌으며, 간척 사업을 통한 공업 단지, 신도시 등이 건설되는 등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지역이다. 2007년부터 큰 조차를 이용한 조력 발전 사업이 추진되었으나, 세계 5대 갯벌이자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는 강화도 일대 갯벌의 훼손에 대한 우려로 인하여 중지된 상황이다.
강화천도는 1232년(고종 19)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도읍지를 강화도로 옮긴 사건이다. 이는 최우(崔瑀)에 의해 단행되었고, 1270년(원종 11) 개경(開京)으로 환도(還都)할 때까지 고려의 국도가 되었다. 이의 배경에는 정치적 측면에서 최 씨 정권의 정권 보위 차원, 지방 사회의 저항과 같은 정권에 대한 비판을 돌파하기 위한 면, 그리고 외교적 측면에서 몽골의 과도한 공물이나 인질 요구 등에 대한 회피 혹은 지연 전략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잠재되어 있었던 지방 사회의 저항을 새롭게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화천도 (江華遷都)
강화천도는 1232년(고종 19)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도읍지를 강화도로 옮긴 사건이다. 이는 최우(崔瑀)에 의해 단행되었고, 1270년(원종 11) 개경(開京)으로 환도(還都)할 때까지 고려의 국도가 되었다. 이의 배경에는 정치적 측면에서 최 씨 정권의 정권 보위 차원, 지방 사회의 저항과 같은 정권에 대한 비판을 돌파하기 위한 면, 그리고 외교적 측면에서 몽골의 과도한 공물이나 인질 요구 등에 대한 회피 혹은 지연 전략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잠재되어 있었던 지방 사회의 저항을 새롭게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반적인 의미의 개항은 외국과 국교를 맺고 통상 관계를 갖는 일을 말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의 개항은 근대 개항기인 1876년 2월 26일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을 체결하여 문호를 개방하게 된 일을 말한다. 조선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취하다가 1876년(고종 13) 2월 26일 강화도에서 체결된 조일수호조규, 이른바 강화도조약을 일본과 체결하고 개항하게 되었다.
개항 (開港)
일반적인 의미의 개항은 외국과 국교를 맺고 통상 관계를 갖는 일을 말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의 개항은 근대 개항기인 1876년 2월 26일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을 체결하여 문호를 개방하게 된 일을 말한다. 조선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취하다가 1876년(고종 13) 2월 26일 강화도에서 체결된 조일수호조규, 이른바 강화도조약을 일본과 체결하고 개항하게 되었다.
고려후기 제32대 우왕의 왕비.
명순옹주 (明順翁主)
고려후기 제32대 우왕의 왕비.
『병인양난록』은 조선 후기, 양반가 여성 나주 임씨(羅州林氏)가 병인양요(丙寅洋擾) 체험을 한글로 기록한 일기이다. 자신이 직접 겪은 전쟁 체험과 고난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를 점령한 양상, 강화도에서의 약탈과 방화 등의 만행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병인양요의 피해를 직접 겪은 여성이 한글로 남긴 일기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병인양난록 (丙寅洋亂錄)
『병인양난록』은 조선 후기, 양반가 여성 나주 임씨(羅州林氏)가 병인양요(丙寅洋擾) 체험을 한글로 기록한 일기이다. 자신이 직접 겪은 전쟁 체험과 고난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를 점령한 양상, 강화도에서의 약탈과 방화 등의 만행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병인양요의 피해를 직접 겪은 여성이 한글로 남긴 일기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몽고는 13세기 초에서 14세기 말(15세기 초)까지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던 부족이자 칭기즈칸에 의해 건국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세력을 확대하며 존재하였던 국가이다. 고려와는 30여 년에 이르는 전쟁을 치렀고,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이 관계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몽고 (蒙古)
몽고는 13세기 초에서 14세기 말(15세기 초)까지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던 부족이자 칭기즈칸에 의해 건국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세력을 확대하며 존재하였던 국가이다. 고려와는 30여 년에 이르는 전쟁을 치렀고,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이 관계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무수집』은 조선 후기 문신인 윤직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87년에 편찬한 시문집이다. 본집 6권 3책, 별집 1책, 연보 1책, 부록 1책 등 총 6권 6책의 필사본으로, 표제와 권수제는 동일하게 ‘무수집(無睡集)’이다.
무수집 (無睡集)
『무수집』은 조선 후기 문신인 윤직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87년에 편찬한 시문집이다. 본집 6권 3책, 별집 1책, 연보 1책, 부록 1책 등 총 6권 6책의 필사본으로, 표제와 권수제는 동일하게 ‘무수집(無睡集)’이다.
구원일의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여선(汝先)이다.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중용되지 못하다가 강화부(江華府)의 우부천총(右部千摠)이 되었다. 병자호란 당시 갑곶진(甲串津)에서 순절하였다. 함께 전사한 본부의 중군(中軍) 황성신(黃善身), 좌부천총(左部千摠) 강흥업(姜興業)과 함께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으며, 이들을 아울러 강도삼충(江都三忠)이라고 한다.
구원일 (具元一)
구원일의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여선(汝先)이다.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중용되지 못하다가 강화부(江華府)의 우부천총(右部千摠)이 되었다. 병자호란 당시 갑곶진(甲串津)에서 순절하였다. 함께 전사한 본부의 중군(中軍) 황성신(黃善身), 좌부천총(左部千摠) 강흥업(姜興業)과 함께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으며, 이들을 아울러 강도삼충(江都三忠)이라고 한다.
마니산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산이다.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땅의 머리라는 뜻에서 머리산 또는 마리산으로도 불린다. 본래 바다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고가도(古加島)라는 섬이었는데, 강화도와 둑으로 연결되면서 한 섬이 되었다고 한다. 산 정상에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를 지내기 위하여 설치하였다는 참성단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 현재 성역(聖域)으로 보호되어 있으며 매년 개천절에는 제전이 올려진다. 1953년 이후 전국체육대회의 성화를 매년 채화(採火)하고 있다.
마니산 (摩尼山)
마니산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산이다.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땅의 머리라는 뜻에서 머리산 또는 마리산으로도 불린다. 본래 바다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고가도(古加島)라는 섬이었는데, 강화도와 둑으로 연결되면서 한 섬이 되었다고 한다. 산 정상에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를 지내기 위하여 설치하였다는 참성단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 현재 성역(聖域)으로 보호되어 있으며 매년 개천절에는 제전이 올려진다. 1953년 이후 전국체육대회의 성화를 매년 채화(採火)하고 있다.
고려후기 장군, 대장군, 동북면병마사 등을 역임한 무신.
신집평 (慎執平)
고려후기 장군, 대장군, 동북면병마사 등을 역임한 무신.
외방별과는 조선시대 서울 이외의 지방에서 위무를 목적으로 시행한 특별 시험이다. 해당 지역의 거주자를 중심으로 응시 자격이 주어졌으며, 우수자들에게는 직부전시 이하의 은사를 내리고 이후의 식년시나 증광시 등에 응시하도록 했다. 주된 실시 지역은 평안도, 함경도, 제주도 등이다.
외방별과 (外方別科)
외방별과는 조선시대 서울 이외의 지방에서 위무를 목적으로 시행한 특별 시험이다. 해당 지역의 거주자를 중심으로 응시 자격이 주어졌으며, 우수자들에게는 직부전시 이하의 은사를 내리고 이후의 식년시나 증광시 등에 응시하도록 했다. 주된 실시 지역은 평안도, 함경도, 제주도 등이다.
고려후기 강화도 선원사와 용장사 등에서 노략질하던 왜구와 싸우다 전사한 무신.
심몽룡 (沈夢龍)
고려후기 강화도 선원사와 용장사 등에서 노략질하던 왜구와 싸우다 전사한 무신.
조선후기 무신·외교가 신헌이 강화도조약 체결의 전말을 기록한 공무 일기.
심행일기 (沁行日記)
조선후기 무신·외교가 신헌이 강화도조약 체결의 전말을 기록한 공무 일기.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교리, 중학교수 등을 역임하다가 을미사변 이후 의병활동을 전개하였고, 국권 피탈 이후 자결한 관료·의병장·열사.
이만도 (李晩燾)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교리, 중학교수 등을 역임하다가 을미사변 이후 의병활동을 전개하였고, 국권 피탈 이후 자결한 관료·의병장·열사.
인천광역시 중구에 있는 대한제국기 외국인들의 사교모임 장소로 건립된 건물. 서양식건물.
구)제물포구락부 (舊)濟物浦俱樂部)
인천광역시 중구에 있는 대한제국기 외국인들의 사교모임 장소로 건립된 건물. 서양식건물.
조선후기 어영대장, 훈련대장,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무신.
이용희 (李容熙)
조선후기 어영대장, 훈련대장,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