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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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천도는 1232년(고종 19)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도읍지를 강화도로 옮긴 사건이다. 이는 최우(崔瑀)에 의해 단행되었고, 1270년(원종 11) 개경(開京)으로 환도(還都)할 때까지 고려의 국도가 되었다. 이의 배경에는 정치적 측면에서 최 씨 정권의 정권 보위 차원, 지방 사회의 저항과 같은 정권에 대한 비판을 돌파하기 위한 면, 그리고 외교적 측면에서 몽골의 과도한 공물이나 인질 요구 등에 대한 회피 혹은 지연 전략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잠재되어 있었던 지방 사회의 저항을 새롭게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화천도 (江華遷都)
강화천도는 1232년(고종 19)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도읍지를 강화도로 옮긴 사건이다. 이는 최우(崔瑀)에 의해 단행되었고, 1270년(원종 11) 개경(開京)으로 환도(還都)할 때까지 고려의 국도가 되었다. 이의 배경에는 정치적 측면에서 최 씨 정권의 정권 보위 차원, 지방 사회의 저항과 같은 정권에 대한 비판을 돌파하기 위한 면, 그리고 외교적 측면에서 몽골의 과도한 공물이나 인질 요구 등에 대한 회피 혹은 지연 전략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잠재되어 있었던 지방 사회의 저항을 새롭게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1876년(고종 13) 8월 24일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강화도조약, 1876년 2월 3일)를 보완하기 위해 조인된 조약.
조일수호조규부록 (朝日修好條規附錄)
1876년(고종 13) 8월 24일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강화도조약, 1876년 2월 3일)를 보완하기 위해 조인된 조약.
일반적인 의미의 개항은 외국과 국교를 맺고 통상 관계를 갖는 일을 말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의 개항은 근대 개항기인 1876년 2월 26일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을 체결하여 문호를 개방하게 된 일을 말한다. 조선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취하다가 1876년(고종 13) 2월 26일 강화도에서 체결된 조일수호조규, 이른바 강화도조약을 일본과 체결하고 개항하게 되었다.
개항 (開港)
일반적인 의미의 개항은 외국과 국교를 맺고 통상 관계를 갖는 일을 말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의 개항은 근대 개항기인 1876년 2월 26일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을 체결하여 문호를 개방하게 된 일을 말한다. 조선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취하다가 1876년(고종 13) 2월 26일 강화도에서 체결된 조일수호조규, 이른바 강화도조약을 일본과 체결하고 개항하게 되었다.
몽고는 13세기 초에서 14세기 말(15세기 초)까지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던 부족이자 칭기즈칸에 의해 건국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세력을 확대하며 존재하였던 국가이다. 고려와는 30여 년에 이르는 전쟁을 치렀고,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이 관계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몽고 (蒙古)
몽고는 13세기 초에서 14세기 말(15세기 초)까지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던 부족이자 칭기즈칸에 의해 건국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세력을 확대하며 존재하였던 국가이다. 고려와는 30여 년에 이르는 전쟁을 치렀고,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이 관계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마니산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산이다.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땅의 머리라는 뜻에서 머리산 또는 마리산으로도 불린다. 본래 바다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고가도(古加島)라는 섬이었는데, 강화도와 둑으로 연결되면서 한 섬이 되었다고 한다. 산 정상에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를 지내기 위하여 설치하였다는 참성단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 현재 성역(聖域)으로 보호되어 있으며 매년 개천절에는 제전이 올려진다. 1953년 이후 전국체육대회의 성화를 매년 채화(採火)하고 있다.
마니산 (摩尼山)
마니산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산이다.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땅의 머리라는 뜻에서 머리산 또는 마리산으로도 불린다. 본래 바다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고가도(古加島)라는 섬이었는데, 강화도와 둑으로 연결되면서 한 섬이 되었다고 한다. 산 정상에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를 지내기 위하여 설치하였다는 참성단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 현재 성역(聖域)으로 보호되어 있으며 매년 개천절에는 제전이 올려진다. 1953년 이후 전국체육대회의 성화를 매년 채화(採火)하고 있다.
소형 잠수정을 이용한 북한의 해상침투 사건.
북한잠수정 침투사건 (北韓潛水艇 浸透事件)
소형 잠수정을 이용한 북한의 해상침투 사건.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교리, 중학교수 등을 역임하다가 을미사변 이후 의병활동을 전개하였고, 국권 피탈 이후 자결한 관료·의병장·열사.
이만도 (李晩燾)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교리, 중학교수 등을 역임하다가 을미사변 이후 의병활동을 전개하였고, 국권 피탈 이후 자결한 관료·의병장·열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위치한 논습지.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江華 梅花마름 群落地)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위치한 논습지.
조선 후기 강화도에 있었던 군영.
진무영 (鎭撫營)
조선 후기 강화도에 있었던 군영.
출륙환도는 섬인 강화도에서 나와 수도인 개경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고려의 강화천도 이후 지속된 몽골의 요구, 혹은 1270년(원종 1)에 개경으로 환도한 사건이다. 고려는 출륙환도와 함께 인접한 섬에 백성들을 보내 놓고 방어하는 해도입보책을 실시하여 장기전을 유도하여 몽골군의 공격 의지를 약화시켰다. 이에 몽골은 고려와의 전투나 교섭에서 최우선 사항으로 출륙환도를 요청하였다. 이처럼 출륙환도는 여·몽전쟁에 있어서 최대의 외교쟁점이었으며, 출륙환도 거부가 대몽항전의 핵심이었다. 무신정권의 몰락 이후 출륙환도하여 몽골에 예속되었으나, 이에 반대한 삼별초의 항쟁이 이어졌다.
출륙환도 (出陸還都)
출륙환도는 섬인 강화도에서 나와 수도인 개경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고려의 강화천도 이후 지속된 몽골의 요구, 혹은 1270년(원종 1)에 개경으로 환도한 사건이다. 고려는 출륙환도와 함께 인접한 섬에 백성들을 보내 놓고 방어하는 해도입보책을 실시하여 장기전을 유도하여 몽골군의 공격 의지를 약화시켰다. 이에 몽골은 고려와의 전투나 교섭에서 최우선 사항으로 출륙환도를 요청하였다. 이처럼 출륙환도는 여·몽전쟁에 있어서 최대의 외교쟁점이었으며, 출륙환도 거부가 대몽항전의 핵심이었다. 무신정권의 몰락 이후 출륙환도하여 몽골에 예속되었으나, 이에 반대한 삼별초의 항쟁이 이어졌다.
조선후기 무신·외교가 신헌이 강화도조약 체결의 전말을 기록한 공무 일기.
심행일기 (沁行日記)
조선후기 무신·외교가 신헌이 강화도조약 체결의 전말을 기록한 공무 일기.
인천광역시 중구에 있는 대한제국기 외국인들의 사교모임 장소로 건립된 건물. 서양식건물.
구)제물포구락부 (舊)濟物浦俱樂部)
인천광역시 중구에 있는 대한제국기 외국인들의 사교모임 장소로 건립된 건물. 서양식건물.
『교린수지』는 조선후기 일본인들이 조선어를 배울 수 있도록 편찬한 교재이다. 18세기 초~말기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며 20세기 초까지 여러 이본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저본으로는 필사본, 증보본, 판본이 있다. 1881년 초간본은 부산 조선어학교 교수였던 우라세 유타카가 필사본을 수정·증보하여 간행한 것으로 4권 4책이다. 체재는 목차명이 제시되고 그 목차명 아래 한자어 표제어와 한국어 문장, 일본어 역문, 동의어 등이 나온다. 조선어와 일본어의 일대일 대응 형식과 편찬 시기별 다른 표기법 등으로 한일 근대어 비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교린수지 (交隣須知)
『교린수지』는 조선후기 일본인들이 조선어를 배울 수 있도록 편찬한 교재이다. 18세기 초~말기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며 20세기 초까지 여러 이본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저본으로는 필사본, 증보본, 판본이 있다. 1881년 초간본은 부산 조선어학교 교수였던 우라세 유타카가 필사본을 수정·증보하여 간행한 것으로 4권 4책이다. 체재는 목차명이 제시되고 그 목차명 아래 한자어 표제어와 한국어 문장, 일본어 역문, 동의어 등이 나온다. 조선어와 일본어의 일대일 대응 형식과 편찬 시기별 다른 표기법 등으로 한일 근대어 비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고려의 제22대(재위: 1211~1213) 왕.
강종 (康宗)
고려의 제22대(재위: 1211~1213) 왕.
조선후기 어영대장, 훈련대장,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무신.
이용희 (李容熙)
조선후기 어영대장, 훈련대장,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후기 제32대 우왕의 왕비.
명순옹주 (明順翁主)
고려후기 제32대 우왕의 왕비.
고려시대 병기를 보관하던 창고.
금강고 (金剛庫)
고려시대 병기를 보관하던 창고.
고려후기 장군, 대장군, 동북면병마사 등을 역임한 무신.
신집평 (慎執平)
고려후기 장군, 대장군, 동북면병마사 등을 역임한 무신.
통어영은 1633년(인조 11)에 경기·충청·황해도 등의 수군을 관할하기 위해 교동에 설립된 수군 최고 사령부이다. 17세기 초 임진왜란을 계기로 북방의 여진이 중원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인조는 청에 대한 강경책을 수립하고 전략적 요충지인 강화도의 수비를 위해 경기 화량에 위치한 수영을 한강의 길목에 있는 교동으로 옮겼다. 이후 경기 수영을 통어영으로 승격하고 경기 수사가 통어사를 겸임하게 하였다. 17세기 후반 북방 정세가 안정되자 통어영의 영향력도 줄어들었다. 병인양요 이후 해방영이 설치되면서 통어영은 폐지되었다.
통어영 (統禦營)
통어영은 1633년(인조 11)에 경기·충청·황해도 등의 수군을 관할하기 위해 교동에 설립된 수군 최고 사령부이다. 17세기 초 임진왜란을 계기로 북방의 여진이 중원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인조는 청에 대한 강경책을 수립하고 전략적 요충지인 강화도의 수비를 위해 경기 화량에 위치한 수영을 한강의 길목에 있는 교동으로 옮겼다. 이후 경기 수영을 통어영으로 승격하고 경기 수사가 통어사를 겸임하게 하였다. 17세기 후반 북방 정세가 안정되자 통어영의 영향력도 줄어들었다. 병인양요 이후 해방영이 설치되면서 통어영은 폐지되었다.
인천광역시 지역 사찰에서 바다와 육지를 떠도는 영혼과 아귀를 달래기 위해 행하는 종교의례. 불교의식.
인천 수륙재 (仁川 水陸齋)
인천광역시 지역 사찰에서 바다와 육지를 떠도는 영혼과 아귀를 달래기 위해 행하는 종교의례. 불교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