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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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군(京軍)인 이군육위 중 육위의 하나.
금오위 (金吾衛)
고려시대 경군(京軍)인 이군육위 중 육위의 하나.
고려시대 경군(京軍 : 中央軍)에 소속된 특수부대.
검점군 (檢點軍)
고려시대 경군(京軍 : 中央軍)에 소속된 특수부대.
고려시대의 군대명.
비순위 (備巡衛)
고려시대의 군대명.
고려시대 경군(京軍)과 주현군(州縣軍)을 구성한 단위부대.
보승 (保勝)
고려시대 경군(京軍)과 주현군(州縣軍)을 구성한 단위부대.
고려 현종 때 김훈과 최질이 일으킨 반란.
김훈·최질의 난 (金訓·崔質의 亂)
고려 현종 때 김훈과 최질이 일으킨 반란.
고려전기 김훈, 최질의 난 당시의 장수.
김훈 (金訓)
고려전기 김훈, 최질의 난 당시의 장수.
부병제는 고려시대에 시행된 병농일치(兵農一致)의 병제이다. 농민 의무병으로 운영되는 상비군제이며, 농민은 국가로부터 균전을 지급받았다. 평상시에는 농경에 종사하고 농한기에는 절충부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다. 성종 때 6위를 설치하면서 지방 호족 휘하의 사병을 중앙 통제하에 두기 위해 부병제의 도입을 시도하였다. 2군 6위는 지방 주현에서 교대로 서울로 와 근무하는 병농일치의 농민병이었다. 지방의 군부인 절충부가 병력의 간점과 동원을 맡았는데, 고려의 경우 지방 행정 구역과 궤를 같이하는 군사도를 단위로 지방 농민을 동원하였다.
부병제 (府兵制)
부병제는 고려시대에 시행된 병농일치(兵農一致)의 병제이다. 농민 의무병으로 운영되는 상비군제이며, 농민은 국가로부터 균전을 지급받았다. 평상시에는 농경에 종사하고 농한기에는 절충부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다. 성종 때 6위를 설치하면서 지방 호족 휘하의 사병을 중앙 통제하에 두기 위해 부병제의 도입을 시도하였다. 2군 6위는 지방 주현에서 교대로 서울로 와 근무하는 병농일치의 농민병이었다. 지방의 군부인 절충부가 병력의 간점과 동원을 맡았는데, 고려의 경우 지방 행정 구역과 궤를 같이하는 군사도를 단위로 지방 농민을 동원하였다.
고려시대 정8품의 무관직.
산원 (散員)
고려시대 정8품의 무관직.
군반씨족(軍班氏族)은 고려시대 2군 6위로 구성된 경군의 군역을 세습적으로 담당하던 특정의 집단이다. 고려 전기 경군[중앙군]의 기간이 되는 군인들 일부는 ‘군반씨족’이라는 특정 호의 군호(軍戶)에서 배출되었고, 이 군호는 군적에 근거하여 군역을 세습하고 대가로 군인전(軍人田)을 지급받았다.
군반씨족 (軍班氏族)
군반씨족(軍班氏族)은 고려시대 2군 6위로 구성된 경군의 군역을 세습적으로 담당하던 특정의 집단이다. 고려 전기 경군[중앙군]의 기간이 되는 군인들 일부는 ‘군반씨족’이라는 특정 호의 군호(軍戶)에서 배출되었고, 이 군호는 군적에 근거하여 군역을 세습하고 대가로 군인전(軍人田)을 지급받았다.
군인전은 고려시대 군인이 군역(軍役)에 복무하는 대가로 국가로부터 지급받은 토지이다. 여기서 군인이란 전문적으로 군역을 담당하는 직업 군인이며 농업에 종사하다가 잠시 군역을 부담하는 양인과는 다르다. 주로 2군 6위 소속의 경군을 대상으로 지급되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의견이 분분하여 확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군인에 대한 토지 지급은 개정 전시과에서 처음 규정된 이래 고려 말까지 다소 부침은 있었으나 줄곧 유지되었다.
군인전 (軍人田)
군인전은 고려시대 군인이 군역(軍役)에 복무하는 대가로 국가로부터 지급받은 토지이다. 여기서 군인이란 전문적으로 군역을 담당하는 직업 군인이며 농업에 종사하다가 잠시 군역을 부담하는 양인과는 다르다. 주로 2군 6위 소속의 경군을 대상으로 지급되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의견이 분분하여 확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군인에 대한 토지 지급은 개정 전시과에서 처음 규정된 이래 고려 말까지 다소 부침은 있었으나 줄곧 유지되었다.
영업전은 고려시대에 양반(兩班) · 서리(胥吏) · 군인(軍人) 등에게 지급하였던 전시과(田柴科) 및 공음전시(功蔭田柴)의 이칭이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전시과만 영업전으로 파악하거나 공음전시만을 영업전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영업전은 비록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토지는 아니었으나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자손에게 세습할 수 있었다.
영업전 (永業田)
영업전은 고려시대에 양반(兩班) · 서리(胥吏) · 군인(軍人) 등에게 지급하였던 전시과(田柴科) 및 공음전시(功蔭田柴)의 이칭이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전시과만 영업전으로 파악하거나 공음전시만을 영업전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영업전은 비록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토지는 아니었으나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자손에게 세습할 수 있었다.
육위는 고려 전기의 중앙군 조직이다.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동원한 군대를 새롭게 편제하여 조직하였다. 경군의 중심을 이루는 부대로, 좌우위·신호위·흥위위·금오위·천우위·감문위으로 편성하였다. 좌우·신호·흥위의 삼위는 국왕의 행차에 대한 호가(扈駕), 외국 사신의 송영(送迎) 등을 비롯해 국가의 중요 행사에 참여하였다. 금오위는 수도의 치안을 담당한 경찰부대였고, 천우위는 국왕을 시종하는 의장대였다. 감문위는 궁성 안팎의 여러 문을 지키는 수문군이었다. 당의 부병제를 참조하여 독자적인 군반씨족제를 정비하였다고 평가된다.
육위 (六衛)
육위는 고려 전기의 중앙군 조직이다.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동원한 군대를 새롭게 편제하여 조직하였다. 경군의 중심을 이루는 부대로, 좌우위·신호위·흥위위·금오위·천우위·감문위으로 편성하였다. 좌우·신호·흥위의 삼위는 국왕의 행차에 대한 호가(扈駕), 외국 사신의 송영(送迎) 등을 비롯해 국가의 중요 행사에 참여하였다. 금오위는 수도의 치안을 담당한 경찰부대였고, 천우위는 국왕을 시종하는 의장대였다. 감문위는 궁성 안팎의 여러 문을 지키는 수문군이었다. 당의 부병제를 참조하여 독자적인 군반씨족제를 정비하였다고 평가된다.
고려시대 경군(京軍)인 2군6위(二軍六衛) 중의 한 군단.
용호군 (龍虎軍)
고려시대 경군(京軍)인 2군6위(二軍六衛) 중의 한 군단.
고려시대 정9품 무관직.
오위 (伍尉)
고려시대 정9품 무관직.
응양군은 고려시대 경군(京軍)인 이군 육위(二軍六衛) 중의 한 군단이다. 용호군과 함께 2군을 구성하고 있으며, 설치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현종 때로 보인다. 이는 궁성을 시위하는 친위군으로서, 용호군이 2령을 보유한 데 비하여 1령이었다. 국왕의 시위군으로 견룡군, 공학군, 중금군, 순검군, 내순검군 등의 금군(禁軍)도 무신정권의 성립을 전후하여 자주 출현하였으며, 2군과 달리 금위(禁衛)라는 별도 편제로 이해되기도 한다. 응양군의 상장군은 반주(班主)라 하여 이군 육위의 상장군·대장군으로 구성되는 중방 회의의 의장이 되었다.
응양군 (鷹揚軍)
응양군은 고려시대 경군(京軍)인 이군 육위(二軍六衛) 중의 한 군단이다. 용호군과 함께 2군을 구성하고 있으며, 설치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현종 때로 보인다. 이는 궁성을 시위하는 친위군으로서, 용호군이 2령을 보유한 데 비하여 1령이었다. 국왕의 시위군으로 견룡군, 공학군, 중금군, 순검군, 내순검군 등의 금군(禁軍)도 무신정권의 성립을 전후하여 자주 출현하였으며, 2군과 달리 금위(禁衛)라는 별도 편제로 이해되기도 한다. 응양군의 상장군은 반주(班主)라 하여 이군 육위의 상장군·대장군으로 구성되는 중방 회의의 의장이 되었다.
최질은 고려 전기 김훈 등과 함께 정변을 일으켜 일시적으로 권력을 장악하였다가 처형된 무신이다. 1010년(현종 1) 거란이 2차 침입하였을 때 통주(通州)를 성공적으로 수비하는 등의 공적으로 상장군까지 승진하였지만, 문반이 될 수 없었으므로 불만을 품고 있었다. 1014년(현종 5)에 김훈 등과 함께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으나, 1015년(현종 6)에 체포되어 처형당하였다.
최질 (崔質)
최질은 고려 전기 김훈 등과 함께 정변을 일으켜 일시적으로 권력을 장악하였다가 처형된 무신이다. 1010년(현종 1) 거란이 2차 침입하였을 때 통주(通州)를 성공적으로 수비하는 등의 공적으로 상장군까지 승진하였지만, 문반이 될 수 없었으므로 불만을 품고 있었다. 1014년(현종 5)에 김훈 등과 함께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으나, 1015년(현종 6)에 체포되어 처형당하였다.
정용은 고려시대 경군의 6위(六衛)와 지방의 주현군(州縣軍)에 있었던 병종(兵種)이다. 양계의 주진군에 있던 정용은 초군(抄軍) 또는 초정용(抄精勇)으로 불렀다. 외침에 대한 방어, 내란 진압 등의 전투와 변경 지역의 방수(防戍), 각종 노역에 동원되었다. 일반 농민으로 구성된 주현군의 정용이 번상을 하면 6위의 정용이 되고, 반대로 6위의 정용이 하번을 하면 주현군의 정용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또한 같은 명칭의 부대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근거로 중앙정부에서 직접적으로 군사적 지휘를 하였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정용 (精勇)
정용은 고려시대 경군의 6위(六衛)와 지방의 주현군(州縣軍)에 있었던 병종(兵種)이다. 양계의 주진군에 있던 정용은 초군(抄軍) 또는 초정용(抄精勇)으로 불렀다. 외침에 대한 방어, 내란 진압 등의 전투와 변경 지역의 방수(防戍), 각종 노역에 동원되었다. 일반 농민으로 구성된 주현군의 정용이 번상을 하면 6위의 정용이 되고, 반대로 6위의 정용이 하번을 하면 주현군의 정용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또한 같은 명칭의 부대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근거로 중앙정부에서 직접적으로 군사적 지휘를 하였을 것이라고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