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경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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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때, 신라 무열왕의 4세손으로, 장군, 상대등 등을 역임한 통일신라의 종실.
김사인 (金思仁)
남북국시대 때, 신라 무열왕의 4세손으로, 장군, 상대등 등을 역임한 통일신라의 종실.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백월산(白月山)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5대 경덕왕의 명으로 창건한 사찰.
백월산 남백사 (白月山 南白寺)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백월산(白月山)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5대 경덕왕의 명으로 창건한 사찰.
경상북도 경주시 금강산(金剛山)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
금강산 굴불사 (金剛山 掘佛寺)
경상북도 경주시 금강산(金剛山)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
김옹은 신라 진골 출신의 고위 관료로서, 중대 말기에 활약하였다. 경덕왕 때 집사성의 장관인 시중이 되어 정치와 행정의 핵심 역할을 맡았고, 혜공왕 때는 대각간에 올라 최고의 집정자로서 정국을 주도하였다. 외교 면에서는 일본과 우호적인 교류를 추진하였다.
김옹 (金邕)
김옹은 신라 진골 출신의 고위 관료로서, 중대 말기에 활약하였다. 경덕왕 때 집사성의 장관인 시중이 되어 정치와 행정의 핵심 역할을 맡았고, 혜공왕 때는 대각간에 올라 최고의 집정자로서 정국을 주도하였다. 외교 면에서는 일본과 우호적인 교류를 추진하였다.
만월부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경덕왕의 후비로서 혜공왕의 어머니이며, 김의충의 딸이다. 선비 삼모부인이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출궁되자, 734년에 후비로 들어갔다. 765년 혜공왕이 즉위하였으나 나이가 8세로 어려 만월부인이 태후로서 섭정하였다.
만월부인 (滿月夫人)
만월부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경덕왕의 후비로서 혜공왕의 어머니이며, 김의충의 딸이다. 선비 삼모부인이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출궁되자, 734년에 후비로 들어갔다. 765년 혜공왕이 즉위하였으나 나이가 8세로 어려 만월부인이 태후로서 섭정하였다.
남북국시대 때 이찬 관등으로 상대등을 역임한 통일신라의 관리.
만종 (萬宗)
남북국시대 때 이찬 관등으로 상대등을 역임한 통일신라의 관리.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5대 경덕왕의 요청으로 황룡사에서 『화엄경』을 강설한 승려.
법해 (法海)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5대 경덕왕의 요청으로 황룡사에서 『화엄경』을 강설한 승려.
단속사는 경상남도 산청군 지리산(智異山)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경덕왕 당시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 시기와 주체에 대한 2가지 설이 있으며 통일신라의 쌍탑 가람 양식을 보여준다. 신행선사가 북종선을 전파하였고, 최치원이 머물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 사세가 이어져 탄연이 이곳에서 제자를 양성하였고, 최 씨 정권 때 혜심과 만종이 주지로 임명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선종에 소속되어 17세기까지 이어졌으나 폐사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단속사는 통일신라에서 조선까지 종교 중심지일 뿐 아니라 지방 사회의 중심 사원으로 역할을 하였다.
단속사 (斷俗寺)
단속사는 경상남도 산청군 지리산(智異山)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경덕왕 당시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 시기와 주체에 대한 2가지 설이 있으며 통일신라의 쌍탑 가람 양식을 보여준다. 신행선사가 북종선을 전파하였고, 최치원이 머물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 사세가 이어져 탄연이 이곳에서 제자를 양성하였고, 최 씨 정권 때 혜심과 만종이 주지로 임명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선종에 소속되어 17세기까지 이어졌으나 폐사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단속사는 통일신라에서 조선까지 종교 중심지일 뿐 아니라 지방 사회의 중심 사원으로 역할을 하였다.
삼모부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5대 경덕왕의 왕비로, 첫 번째 부인이다. 아버지는 이찬 김순정이다. 경덕왕은 삼모부인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왕비를 폐하고, 사량부인으로 봉한 후에 만월부인을 후비로 맞았다. 삼모부인의 출궁 후 행적은 경덕왕 13년(754) 황룡사종 주조의 시주자로서 발견된다.
삼모부인 (三毛夫人)
삼모부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5대 경덕왕의 왕비로, 첫 번째 부인이다. 아버지는 이찬 김순정이다. 경덕왕은 삼모부인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왕비를 폐하고, 사량부인으로 봉한 후에 만월부인을 후비로 맞았다. 삼모부인의 출궁 후 행적은 경덕왕 13년(754) 황룡사종 주조의 시주자로서 발견된다.
남북국시대 때, 시중 등을 역임하였으며, 경덕왕의 왕권 강화를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통일신라의 관리.
김기 (金耆)
남북국시대 때, 시중 등을 역임하였으며, 경덕왕의 왕권 강화를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통일신라의 관리.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3대 성덕왕의 제2왕비.
소덕왕후 (炤德王后)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3대 성덕왕의 제2왕비.
염상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이찬(伊湌)으로 시중(侍中)을 지낸 진골 귀족이다. 그가 시중으로 있을 때, 759년(경덕왕 18) 신라의 고유 지명을 비롯해 기존의 관청과 관직 등 관호(官號)를 중국식으로 개명하였고, 그가 반란을 일으켜 처형된 직후인 776년(혜공왕 12)에 지명과 관호를 종전대로 복구하는 조치가 단행되었다는 점에서 경덕왕을 도와 왕권 강화 정책을 추진하였던 친왕 세력의 일원으로 보고 있다.
염상 (廉相)
염상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이찬(伊湌)으로 시중(侍中)을 지낸 진골 귀족이다. 그가 시중으로 있을 때, 759년(경덕왕 18) 신라의 고유 지명을 비롯해 기존의 관청과 관직 등 관호(官號)를 중국식으로 개명하였고, 그가 반란을 일으켜 처형된 직후인 776년(혜공왕 12)에 지명과 관호를 종전대로 복구하는 조치가 단행되었다는 점에서 경덕왕을 도와 왕권 강화 정책을 추진하였던 친왕 세력의 일원으로 보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범종.
성덕대왕신종 (聖德大王神鐘)
통일신라시대의 범종.
유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중시(中侍)를 역임한 외척(外戚) 대신이다. 744년(경덕왕 3) 1월 이찬(伊飡)으로 집사부(執事部)의 중시에 임명되어 745년 5월까지 재임하였다. 그의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딸이 혜공왕의 비인 신보왕후(新寶王后)로, 외척(外戚) 권문(權門)이었다. 당시 그는 왕구(王舅)로서, 경덕왕과 결탁하여 그의 왕권 강화 정책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유정 (惟正)
유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중시(中侍)를 역임한 외척(外戚) 대신이다. 744년(경덕왕 3) 1월 이찬(伊飡)으로 집사부(執事部)의 중시에 임명되어 745년 5월까지 재임하였다. 그의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딸이 혜공왕의 비인 신보왕후(新寶王后)로, 외척(外戚) 권문(權門)이었다. 당시 그는 왕구(王舅)로서, 경덕왕과 결탁하여 그의 왕권 강화 정책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추전(鞦典)은 통일신라시대에 경덕왕이 관호를 개혁할 때에 설치된 궁중 수공업 관사이다. 신라 내성 산하의 관사로서 말고들개를 제작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덕왕의 관호 개혁 이전에 궁중에 필요한 가죽 제품을 피전(皮典)과 피타전(皮打典)에서 생산하던 것을, 관호 개혁과 함께 제품별 생산 관사로 분화되면서 설치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관영 수공업 관사인 중상서(中尙署)에 통합되었다.
추전 (鞦典)
추전(鞦典)은 통일신라시대에 경덕왕이 관호를 개혁할 때에 설치된 궁중 수공업 관사이다. 신라 내성 산하의 관사로서 말고들개를 제작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덕왕의 관호 개혁 이전에 궁중에 필요한 가죽 제품을 피전(皮典)과 피타전(皮打典)에서 생산하던 것을, 관호 개혁과 함께 제품별 생산 관사로 분화되면서 설치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관영 수공업 관사인 중상서(中尙署)에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