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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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계를 수여하는 의식을 진행하는 의례공간. 단(壇).
계단 (戒壇)
불교에서 계를 수여하는 의식을 진행하는 의례공간. 단(壇).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용연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계의식 관련 계단.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 (達城 龍淵寺 金剛戒壇)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용연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계의식 관련 계단.
김제 금산사 금강계단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 조영된 수계의식 관련 석조계단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2중 방형 기단 위 중앙부에 종 모양의 사리탑이 세워져 있다. 기단의 면석마다 불상과 신장상이 돋을새김되어 있고 난간의 사방 모서리에는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다. 수계자에게 계율을 전수하던 곳으로 통일신라 진표율사에 의해 설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고려 후기에 원명대사에 의해 절이 중창되면서 이 계단 역시 개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김제 금산사 금강계단 (金堤 金山寺 金剛戒壇)
김제 금산사 금강계단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 조영된 수계의식 관련 석조계단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2중 방형 기단 위 중앙부에 종 모양의 사리탑이 세워져 있다. 기단의 면석마다 불상과 신장상이 돋을새김되어 있고 난간의 사방 모서리에는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다. 수계자에게 계율을 전수하던 곳으로 통일신라 진표율사에 의해 설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고려 후기에 원명대사에 의해 절이 중창되면서 이 계단 역시 개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소재 안심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사리탑 및 계단.
안심사 계단 (安心寺 戒壇)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소재 안심사에 있는 조선시대 불사리탑 및 계단.
조선후기 승려 사명당이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의 사리 봉안 유래와 변천을 수록하여 1705년에 간행한 사적기.
사바교주계단원류강요록 (娑婆敎主戒壇源流綱要錄)
조선후기 승려 사명당이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의 사리 봉안 유래와 변천을 수록하여 1705년에 간행한 사적기.
불교에서 비구와 비구니가 받는 계율을 지칭하는 용어. 승려계율.
구족계 (具足戒)
불교에서 비구와 비구니가 받는 계율을 지칭하는 용어. 승려계율.
안심사는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군)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大芚山)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로 비구니 사찰로 운영되고 있다. 이 절의 사적비는 1759년(영조 35)에 세워졌는데, 당시에는 30여 개의 당우와 12개의 암자가 부속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유산으로는 2005년 보물로 지정된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이 있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1984년에는 안심사 사적비, 2005년에는 안심사 소장 동종 등이 지정되었다.
안심사 (安心寺)
안심사는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군)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大芚山)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로 비구니 사찰로 운영되고 있다. 이 절의 사적비는 1759년(영조 35)에 세워졌는데, 당시에는 30여 개의 당우와 12개의 암자가 부속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유산으로는 2005년 보물로 지정된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이 있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1984년에는 안심사 사적비, 2005년에는 안심사 소장 동종 등이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돌계단 다리.
경주 불국사 연화교 및 칠보교 (慶州 佛國寺 蓮華橋 및 七寶橋)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돌계단 다리.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돌계단 다리.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 (慶州 佛國寺 靑雲橋 및 白雲橋)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돌계단 다리.
고려후기 대선사, 국사 등을 역임한 승려.
승형 (承逈)
고려후기 대선사, 국사 등을 역임한 승려.
용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신라하대 창건됐다고 전하며, 15세기 이후 중창됐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고 다시 재건되는 것을 반복했다. 통도사의 사리가 옮겨 오면서 금강계단이 조성됐다.
용연사 (龍淵寺)
용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신라하대 창건됐다고 전하며, 15세기 이후 중창됐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고 다시 재건되는 것을 반복했다. 통도사의 사리가 옮겨 오면서 금강계단이 조성됐다.
조사시찰단은 1881년(고종 18) 4월 10일부터 윤7월 2일까지 약 4개월에 걸쳐 일본에 파견되었던 문물시찰단이다. 당시 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던 일본의 국정과 문물을 탐방하기 위해 12명의 전문위원을 비롯해 12반 총 60명으로 구성되었다. 모두 암행어사의 자격을 유지하며 비밀리에 개별적으로 행동하였다. 비용은 전적으로 조선 정부가 부담하고 일본에도 출발 이후 통보하는 등 자주성 유지에 노력했다. 전문위원들은 분야를 나누어 각기 국정 시찰을 하고 자세한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조사시찰단의 활동은 성공리에 이루어졌고 국내 개화세력의 증대에도 기여하였다.
조사시찰단 (朝士視察團)
조사시찰단은 1881년(고종 18) 4월 10일부터 윤7월 2일까지 약 4개월에 걸쳐 일본에 파견되었던 문물시찰단이다. 당시 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던 일본의 국정과 문물을 탐방하기 위해 12명의 전문위원을 비롯해 12반 총 60명으로 구성되었다. 모두 암행어사의 자격을 유지하며 비밀리에 개별적으로 행동하였다. 비용은 전적으로 조선 정부가 부담하고 일본에도 출발 이후 통보하는 등 자주성 유지에 노력했다. 전문위원들은 분야를 나누어 각기 국정 시찰을 하고 자세한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조사시찰단의 활동은 성공리에 이루어졌고 국내 개화세력의 증대에도 기여하였다.
성우는 해방 이후 동국역경원장, 조계종 단일계단 전계대화상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911년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성은 김씨, 호는 자운(慈雲)이다. 1927년 합천 해인사 장경각에서 혜운을 은사로 하여 사미계를 받았다. 1955년부터 타계한 1992년까지 해인사 주지, 조계종 총무원장, 동국역경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해외의 불교 현황을 시찰한 뒤 인간 존엄의 도덕성 회복을 역설하고 자비에 바탕을 둔 보시정신과 정토사상을 중시하였다. 1992년 해인사에서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입적하였다. 행적비와 사리탑이 해인사에 있다. 한국불교의 기강을 확립한 공이 크다.
성우 (盛祐)
성우는 해방 이후 동국역경원장, 조계종 단일계단 전계대화상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911년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성은 김씨, 호는 자운(慈雲)이다. 1927년 합천 해인사 장경각에서 혜운을 은사로 하여 사미계를 받았다. 1955년부터 타계한 1992년까지 해인사 주지, 조계종 총무원장, 동국역경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해외의 불교 현황을 시찰한 뒤 인간 존엄의 도덕성 회복을 역설하고 자비에 바탕을 둔 보시정신과 정토사상을 중시하였다. 1992년 해인사에서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입적하였다. 행적비와 사리탑이 해인사에 있다. 한국불교의 기강을 확립한 공이 크다.
개항기 승려 서해담이 양산 통도사와 부속암자의 내력을 정리하여 1912년에 간행한 사적기.
통도사 사적 (通度寺 事蹟)
개항기 승려 서해담이 양산 통도사와 부속암자의 내력을 정리하여 1912년에 간행한 사적기.
칠곡가실성당은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신로마네스크 양식의 벽돌조 건물로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위치한 성당건물이다. 2003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본당과 사제관 등 2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1924년 축성식이 열렸다. 본당은 정면 중앙부에 종탑을 둔 형태로, 종탑 안쪽의 두 짝 여닫이 판문을 통해 실내로 출입한다. 사제관은 본당 뒤쪽에 위치하는 붉은벽돌 조적조 단층 건물이다. 1920년대 중반에 건립된 비교적 수준 높은 벽돌조 건축물로, 건축사적ㆍ교회사적인 측면에서 역사적 가치가 큰 건물이다.
칠곡 가실성당 (漆谷 佳室聖堂)
칠곡가실성당은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신로마네스크 양식의 벽돌조 건물로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위치한 성당건물이다. 2003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본당과 사제관 등 2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1924년 축성식이 열렸다. 본당은 정면 중앙부에 종탑을 둔 형태로, 종탑 안쪽의 두 짝 여닫이 판문을 통해 실내로 출입한다. 사제관은 본당 뒤쪽에 위치하는 붉은벽돌 조적조 단층 건물이다. 1920년대 중반에 건립된 비교적 수준 높은 벽돌조 건축물로, 건축사적ㆍ교회사적인 측면에서 역사적 가치가 큰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