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계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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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때, 고구려 장안성 축성의 책임을 맡았던 관리.
가군 (加群)
삼국시대 때, 고구려 장안성 축성의 책임을 맡았던 관리.
대로(對盧)는 고구려시대의 관등이다. 나부 출신의 대가를 편제하는 관등이었던 패자에 비견되며, 왕권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패자의 기능을 대로가 대체하였을 것으로 파악된다. 대로는 대대로로 분화되어 고구려 말기까지 최고위 관등으로 기능하였다.
대로 (對盧)
대로(對盧)는 고구려시대의 관등이다. 나부 출신의 대가를 편제하는 관등이었던 패자에 비견되며, 왕권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패자의 기능을 대로가 대체하였을 것으로 파악된다. 대로는 대대로로 분화되어 고구려 말기까지 최고위 관등으로 기능하였다.
대승은 고구려 잠지락의 대가로서 47년(민중왕 4) 1만여 명의 무리와 함께 낙랑군에 투항하였다. 대승이 거느린 잠지락이라는 집단은 약 1만 명 규모였는데, 삼한의 소국에 비견되기도 한다. 이러한 규모의 정치체 3~4개가 하나의 나부를 구성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승 (戴升)
대승은 고구려 잠지락의 대가로서 47년(민중왕 4) 1만여 명의 무리와 함께 낙랑군에 투항하였다. 대승이 거느린 잠지락이라는 집단은 약 1만 명 규모였는데, 삼한의 소국에 비견되기도 한다. 이러한 규모의 정치체 3~4개가 하나의 나부를 구성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구려오부는 고구려 초기, 국가 운영의 주축이 된 5개의 단위 정치체이다. 『삼국지』에는 소노부(消奴部), 절노부(絶奴部), 순노부(順奴部), 관노부(灌奴部), 계루부(桂婁部) 등 5개 ‘부(部)’의 이름이 등장하며, 『삼국사기』에는 비류나부(沸流那部), 연나부(椽那部), 환나부(桓那部), 관나부(貫那部)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고구려 초기의 정치 권력은 국가 전체를 통괄하는 왕권과 나부의 자치권이라는 2가지 축을 중심으로 유지되었다.
고구려 오부 (高句麗 五部)
고구려오부는 고구려 초기, 국가 운영의 주축이 된 5개의 단위 정치체이다. 『삼국지』에는 소노부(消奴部), 절노부(絶奴部), 순노부(順奴部), 관노부(灌奴部), 계루부(桂婁部) 등 5개 ‘부(部)’의 이름이 등장하며, 『삼국사기』에는 비류나부(沸流那部), 연나부(椽那部), 환나부(桓那部), 관나부(貫那部)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고구려 초기의 정치 권력은 국가 전체를 통괄하는 왕권과 나부의 자치권이라는 2가지 축을 중심으로 유지되었다.
순노부는 삼국시대 고구려 초기의 오부(五部) 중 하나인 정치체이다. 다른 노부와 달리 『삼국사기』에서의 나부와 대응시키기가 쉽지 않지만, 대체로 환나부와 동일한 실체로 파악된다. 소노부나 절노부보다 세력이 약하여 비교적 일찍 계루부의 통제력이 강하게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순노부 (順奴部)
순노부는 삼국시대 고구려 초기의 오부(五部) 중 하나인 정치체이다. 다른 노부와 달리 『삼국사기』에서의 나부와 대응시키기가 쉽지 않지만, 대체로 환나부와 동일한 실체로 파악된다. 소노부나 절노부보다 세력이 약하여 비교적 일찍 계루부의 통제력이 강하게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소노부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국가를 구성한 하위 정치체이다. 초기 고구려를 구성한 5부 중 하나로, 계루부에 앞서 고구려의 왕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비류나부와 동일한 실체로 파악된다. 계루부로 왕위를 넘긴 이후에도 3세기 중반까지 독자성과 정치적 특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소노부 (消奴部)
소노부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국가를 구성한 하위 정치체이다. 초기 고구려를 구성한 5부 중 하나로, 계루부에 앞서 고구려의 왕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비류나부와 동일한 실체로 파악된다. 계루부로 왕위를 넘긴 이후에도 3세기 중반까지 독자성과 정치적 특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유리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19~기원후18년이다. 아버지 고주몽을 찾아 기원전 19년(동명왕 19) 4월에 동부여에서 고구려로 와서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그 해 9월 동명왕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기원전 9년 선비를 쳐서 항복을 받았고 13년 부여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14년에는 양맥을 쳐서 멸망시키고 한나라의 고구려현을 빼앗는 등 재위 기간에 활발한 정복전쟁으로 영토를 넓혔다. 3년에는 도읍을 홀본에서 국내 지역으로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계비인 치희를 그리는 「황조가」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유리왕 (琉璃王)
유리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19~기원후18년이다. 아버지 고주몽을 찾아 기원전 19년(동명왕 19) 4월에 동부여에서 고구려로 와서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그 해 9월 동명왕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기원전 9년 선비를 쳐서 항복을 받았고 13년 부여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14년에는 양맥을 쳐서 멸망시키고 한나라의 고구려현을 빼앗는 등 재위 기간에 활발한 정복전쟁으로 영토를 넓혔다. 3년에는 도읍을 홀본에서 국내 지역으로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계비인 치희를 그리는 「황조가」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좌보는 고구려 초기에 우보와 함께 국정 운영을 주도한 최고위 관직이다. 대무신왕 대에 처음 확인되며, 신대왕 즉위 이후 국상으로 통합되었다. 좌 ‧ 우보제의 시행은 계루부와 나부 지배층이 제가회의를 통해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나부체제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이와 다른 견해도 있다.
좌보 (左輔)
좌보는 고구려 초기에 우보와 함께 국정 운영을 주도한 최고위 관직이다. 대무신왕 대에 처음 확인되며, 신대왕 즉위 이후 국상으로 통합되었다. 좌 ‧ 우보제의 시행은 계루부와 나부 지배층이 제가회의를 통해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나부체제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이와 다른 견해도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5부에 해당하는 정치집단체. 환나(桓那).
환나부 (桓那部)
삼국시대 고구려의 5부에 해당하는 정치집단체. 환나(桓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