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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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698~926년, 한반도 북부에서 중국 동북 랴오닝성 ‧ 지린성 ‧ 헤이룽장성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걸쳐 존속하며 통일신라와 함께 남북국을 이루었던 고대국가이다. 대조영이 698년에 건국하였고, 초기 국명은 진국이다. 건국 초에는 신라와 교류하며 대아찬 직을 받았고, 이후 신라도를 설치하였다. 713년에 당나라에서 발해군왕을 받은 뒤 국명을 발해로 변경하였다. 제3대 문왕 대에 황제국 체제를 갖추었고, 9세기에는 해동성국으로 불렸다. 925년 12월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고 926년 초에 멸망하였다.
발해 (渤海)
발해는 698~926년, 한반도 북부에서 중국 동북 랴오닝성 ‧ 지린성 ‧ 헤이룽장성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걸쳐 존속하며 통일신라와 함께 남북국을 이루었던 고대국가이다. 대조영이 698년에 건국하였고, 초기 국명은 진국이다. 건국 초에는 신라와 교류하며 대아찬 직을 받았고, 이후 신라도를 설치하였다. 713년에 당나라에서 발해군왕을 받은 뒤 국명을 발해로 변경하였다. 제3대 문왕 대에 황제국 체제를 갖추었고, 9세기에는 해동성국으로 불렸다. 925년 12월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고 926년 초에 멸망하였다.
동북공정은 중국사회과학원 중국변강사지연구센터(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가 동북지역 3개 성과 연합하여 동북지역의 역사와 현실의 문제를 연구하기 위하여 2002년부터 시작한 대규모 중국정부프로젝트이다.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의 약칭으로, 동북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실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사회주의 중국의 통일 강화를 명분으로 추진된 학술연구이지만, 한국인의 뿌리에 해당하는 이 지역에서의 한민족 역사 형성과정을 부인하는 역사인식을 드러내었다. 이에 한국 정부는 동북아역사재단을 출범시켜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처하고 있다.
동북공정 (東北工程)
동북공정은 중국사회과학원 중국변강사지연구센터(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가 동북지역 3개 성과 연합하여 동북지역의 역사와 현실의 문제를 연구하기 위하여 2002년부터 시작한 대규모 중국정부프로젝트이다.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의 약칭으로, 동북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실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사회주의 중국의 통일 강화를 명분으로 추진된 학술연구이지만, 한국인의 뿌리에 해당하는 이 지역에서의 한민족 역사 형성과정을 부인하는 역사인식을 드러내었다. 이에 한국 정부는 동북아역사재단을 출범시켜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처하고 있다.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는 중국 지린성 집안시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왕의 비석이다. 삼국시대인 고구려의 제20대 장수왕에 의해 건립되었다. 19세기 말에 재발견된 광개토왕릉비문은 사료가 부족한 4~5세기 고구려의 정치 · 사회사와 더불어 한반도를 비롯한 만주 일대 여러 세력들의 정세도 함께 살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
광개토왕릉비 (廣開土王陵碑)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는 중국 지린성 집안시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왕의 비석이다. 삼국시대인 고구려의 제20대 장수왕에 의해 건립되었다. 19세기 말에 재발견된 광개토왕릉비문은 사료가 부족한 4~5세기 고구려의 정치 · 사회사와 더불어 한반도를 비롯한 만주 일대 여러 세력들의 정세도 함께 살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
사신도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진호하는 상징적인 동물을 그린 그림이다. 사신은 사령·사수라고도 하는데, 동쪽의 청룡, 서쪽의 백호, 남쪽의 주작, 북쪽의 현무를 일컫는다. 사신사상은 중국의 전국시대부터 진한시대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방위와 색깔, 수호신으로서의 동물과 결합한 형태로 오행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방위신인 사신은 군 부대의 깃발과 포진에 응용되거나 풍수지리에 적용되기도 했다. 사신도는 삼국시대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한 이래 건축물·동경·동전 등 방위와 관련된 특정 공간이나 기물에 장식되었다.
사신도 (四神圖)
사신도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진호하는 상징적인 동물을 그린 그림이다. 사신은 사령·사수라고도 하는데, 동쪽의 청룡, 서쪽의 백호, 남쪽의 주작, 북쪽의 현무를 일컫는다. 사신사상은 중국의 전국시대부터 진한시대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방위와 색깔, 수호신으로서의 동물과 결합한 형태로 오행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방위신인 사신은 군 부대의 깃발과 포진에 응용되거나 풍수지리에 적용되기도 했다. 사신도는 삼국시대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한 이래 건축물·동경·동전 등 방위와 관련된 특정 공간이나 기물에 장식되었다.
인류가 철을 이용해 도구로 사용하게 된 시기부터 역사시대 이전까지의 시기.
철기시대 (鐵器時代)
인류가 철을 이용해 도구로 사용하게 된 시기부터 역사시대 이전까지의 시기.
신라와 백제가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맺은 동맹.
나제동맹 (羅濟同盟)
신라와 백제가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맺은 동맹.
살수대첩(薩水大捷)은 612년(영양왕 23) 7월,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에서 벌어진 주요 전투의 하나이다. 612년 7월 24일에 을지문덕이 지휘한 고구려군이 우중문과 우문술 등이 지휘한 수나라군을 살수에서 크게 격파한 전투였다. 살수는 지금의 청천강이다.
살수대첩 (薩水大捷)
살수대첩(薩水大捷)은 612년(영양왕 23) 7월,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에서 벌어진 주요 전투의 하나이다. 612년 7월 24일에 을지문덕이 지휘한 고구려군이 우중문과 우문술 등이 지휘한 수나라군을 살수에서 크게 격파한 전투였다. 살수는 지금의 청천강이다.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비. 석비·중원비.
충주 고구려비 (忠州 高句麗碑)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비. 석비·중원비.
중국 요령성 해성시(海城市) 영성자둔(英城子屯) 영성자촌(英城子村)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가 요하유역에 설치한 방어성 중 하나인 성곽. 산성.
안시성 (安市城)
중국 요령성 해성시(海城市) 영성자둔(英城子屯) 영성자촌(英城子村)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가 요하유역에 설치한 방어성 중 하나인 성곽. 산성.
고국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6대(재위: 331~371) 왕이다. 국원왕, 국강상왕이라고도 한다. 314년(미천왕 15) 태자로 책봉된 후, 331년 2월 미천왕이 죽자 즉위하였다. 영토 확장 과정에서 요동(遼東)과 부여(夫餘) 지역을 둘러싸고 전연(前燕)과 대립하였고, 남쪽으로는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과 경쟁하였다. 371년 10월 평양성에서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고국원왕 (故國原王)
고국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6대(재위: 331~371) 왕이다. 국원왕, 국강상왕이라고도 한다. 314년(미천왕 15) 태자로 책봉된 후, 331년 2월 미천왕이 죽자 즉위하였다. 영토 확장 과정에서 요동(遼東)과 부여(夫餘) 지역을 둘러싸고 전연(前燕)과 대립하였고, 남쪽으로는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과 경쟁하였다. 371년 10월 평양성에서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왕건 동상은 951년에 제작된 고려 태조 왕건의 청동 조각상이다. 고려 왕실 최고의 상징물로서 개경의 봉은사 진전(眞殿)에 안치되어 연등회의 첫날이나 국가 중대사가 있을 때에 제사를 올렸다. 고려 망국 이후 1429년에 고려 태조의 능인 현릉(顯陵) 옆에 매장되었는데, 1992년 현릉 확장 공사 중에 출토되었다. 황제의 복식을 착용한 나체상으로 왕건의 실제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동명왕 숭배의 영향으로, 동아시아의 조각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나체상에 옷을 입히는 고구려계통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고려의 황제제도를 실증하는 유물로 중요하다.
왕건 동상 (王建 銅像)
왕건 동상은 951년에 제작된 고려 태조 왕건의 청동 조각상이다. 고려 왕실 최고의 상징물로서 개경의 봉은사 진전(眞殿)에 안치되어 연등회의 첫날이나 국가 중대사가 있을 때에 제사를 올렸다. 고려 망국 이후 1429년에 고려 태조의 능인 현릉(顯陵) 옆에 매장되었는데, 1992년 현릉 확장 공사 중에 출토되었다. 황제의 복식을 착용한 나체상으로 왕건의 실제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동명왕 숭배의 영향으로, 동아시아의 조각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나체상에 옷을 입히는 고구려계통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고려의 황제제도를 실증하는 유물로 중요하다.
말갈은 6세기~10세기경 만주 동북부 지역에 거주하였던 주민 집단이다. 북제(北齊) 무성제(武成帝) 하청(河淸) 2년(563년)에 조공한 것으로 처음 등장하여 요(遼) 태종(太宗) 회동(會同) 원년(938년)까지 기록이 보인다. 거주 지역과 풍속의 유사성 등을 근거로 숙신-읍루-물길의 후예이자 여진의 선조로 언급되기도 한다.
말갈 (靺鞨)
말갈은 6세기~10세기경 만주 동북부 지역에 거주하였던 주민 집단이다. 북제(北齊) 무성제(武成帝) 하청(河淸) 2년(563년)에 조공한 것으로 처음 등장하여 요(遼) 태종(太宗) 회동(會同) 원년(938년)까지 기록이 보인다. 거주 지역과 풍속의 유사성 등을 근거로 숙신-읍루-물길의 후예이자 여진의 선조로 언급되기도 한다.
북한 황해남도 안악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무악도·대행렬도 관련 벽화무덤. 횡혈식석실분.
안악 3호분 (安岳 三號墳)
북한 황해남도 안악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무악도·대행렬도 관련 벽화무덤. 횡혈식석실분.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集安市) 여산(如山)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실내생활도·씨름그림 관련 벽화무덤. 횡혈식석실분.
각저총 (角抵塚)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集安市) 여산(如山)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실내생활도·씨름그림 관련 벽화무덤. 횡혈식석실분.
모두루 묘지는 중국 길림성 집안현 하양어두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관리 모두루의 묘지이다. 이 묘에서 주목할 것은 전실 벽에서 발견된 묘지명이다. 묘지명은 현재 250여 자만 판독가능하다. 내용은 모두루의 조상의 이야기와 그의 생애에 대한 것으로 모두루의 조상은 북부여 출신이고 활동 시기는 광개토왕 때임을 알 수 있다. 특징적인 점은 광개토왕릉비의 내용과 표현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 묘지명을 통해 4∼5세기 고구려 왕권의 실상과 고구려의 지방 지배 방식, 당시의 씨족 계승 의식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모두루 묘지 (牟頭婁 墓誌)
모두루 묘지는 중국 길림성 집안현 하양어두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관리 모두루의 묘지이다. 이 묘에서 주목할 것은 전실 벽에서 발견된 묘지명이다. 묘지명은 현재 250여 자만 판독가능하다. 내용은 모두루의 조상의 이야기와 그의 생애에 대한 것으로 모두루의 조상은 북부여 출신이고 활동 시기는 광개토왕 때임을 알 수 있다. 특징적인 점은 광개토왕릉비의 내용과 표현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 묘지명을 통해 4∼5세기 고구려 왕권의 실상과 고구려의 지방 지배 방식, 당시의 씨족 계승 의식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소노부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국가를 구성한 하위 정치체이다. 초기 고구려를 구성한 5부 중 하나로, 계루부에 앞서 고구려의 왕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비류나부와 동일한 실체로 파악된다. 계루부로 왕위를 넘긴 이후에도 3세기 중반까지 독자성과 정치적 특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소노부 (消奴部)
소노부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국가를 구성한 하위 정치체이다. 초기 고구려를 구성한 5부 중 하나로, 계루부에 앞서 고구려의 왕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비류나부와 동일한 실체로 파악된다. 계루부로 왕위를 넘긴 이후에도 3세기 중반까지 독자성과 정치적 특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644년(보장왕 3)에서 668년까지 벌어진 고구려와 당(唐) 과의 전쟁.
여당전쟁 (麗唐戰爭)
644년(보장왕 3)에서 668년까지 벌어진 고구려와 당(唐) 과의 전쟁.
원삼국시대는 우리나라 고고학 편년상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 사이의 시기이다. 서기전 100년경부터 서기 300년경까지의 약 400년간의 기간을 이른다. 청동기의 실용성 소멸, 철기생산의 보급 및 확대, 김해토기의 출현, 벼농사의 발전, 고인돌의 소멸, 돌덧널무덤의 발달 등 문화적 특징이 나타났다. 고고학계에서는 철기시대 Ⅱ기, 역사학계에서는 삼한시대·부족국가시대·성읍국가시대·삼국시대 초기·삼국시대 전기 등으로 명명하였다. 이러한 용어상의 불편과 불합리를 줄이고 고고학계와 문헌사학계에서 모두 쓸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고고학계에서 제안한 용어이다.
원삼국시대 (原三國時代)
원삼국시대는 우리나라 고고학 편년상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 사이의 시기이다. 서기전 100년경부터 서기 300년경까지의 약 400년간의 기간을 이른다. 청동기의 실용성 소멸, 철기생산의 보급 및 확대, 김해토기의 출현, 벼농사의 발전, 고인돌의 소멸, 돌덧널무덤의 발달 등 문화적 특징이 나타났다. 고고학계에서는 철기시대 Ⅱ기, 역사학계에서는 삼한시대·부족국가시대·성읍국가시대·삼국시대 초기·삼국시대 전기 등으로 명명하였다. 이러한 용어상의 불편과 불합리를 줄이고 고고학계와 문헌사학계에서 모두 쓸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고고학계에서 제안한 용어이다.
보덕국은 삼국시대에 신라가 고구려 정벌 후 지금의 익산 지역인 금마저에 고구려 왕족 안승과 유민들을 이주시켜 세운 자치국 또는 보호국이다. 674년(문무왕 14)에 고구려 유민을 금마저에 이주시키고 고구려 왕족인 안승을 책봉하여 성립시켰다. 삼국 통일 전쟁이 마무리되자 683년(신문왕 3)에 안승을 경주로 이주시키고 소판 벼슬을 하사하면서 보덕국은 소멸되었다.
보덕국 (報德國)
보덕국은 삼국시대에 신라가 고구려 정벌 후 지금의 익산 지역인 금마저에 고구려 왕족 안승과 유민들을 이주시켜 세운 자치국 또는 보호국이다. 674년(문무왕 14)에 고구려 유민을 금마저에 이주시키고 고구려 왕족인 안승을 책봉하여 성립시켰다. 삼국 통일 전쟁이 마무리되자 683년(신문왕 3)에 안승을 경주로 이주시키고 소판 벼슬을 하사하면서 보덕국은 소멸되었다.
『구삼국사』는 고려 전기에 편찬된, 삼국시대에 관한 역사서이다. 이 책은 현전하지 않으며 저자도 알 수 없고 기전체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편찬할 때 많이 인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책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달리 고구려 계승 의식을 강조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삼국사 (舊三國史)
『구삼국사』는 고려 전기에 편찬된, 삼국시대에 관한 역사서이다. 이 책은 현전하지 않으며 저자도 알 수 없고 기전체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편찬할 때 많이 인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책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달리 고구려 계승 의식을 강조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