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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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시대 중국의 연(燕)과 경계가 된 지역의 명칭.
만번한 (滿潘汗)
고조선시대 중국의 연(燕)과 경계가 된 지역의 명칭.
미송리형토기는 중국 동북지역에서부터 한반도 북부지방에 걸쳐 사용한 토기로, 표면에 가로줄 무늬가 새겨지고 손잡이가 붙은 항아리 모양 토기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로줄 무늬의 수가 적어지고 손잡이의 모양도 간략한 것으로 변화하였다. 이것의 상한과 하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며, 중심 시기는 대체로 서기전 8∼7세기에 해당한다.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서북지역이라는 한정된 범위에서 출토되며, 비파형동검과 더불어 고조선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미송리형토기 (美松里型土器)
미송리형토기는 중국 동북지역에서부터 한반도 북부지방에 걸쳐 사용한 토기로, 표면에 가로줄 무늬가 새겨지고 손잡이가 붙은 항아리 모양 토기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로줄 무늬의 수가 적어지고 손잡이의 모양도 간략한 것으로 변화하였다. 이것의 상한과 하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며, 중심 시기는 대체로 서기전 8∼7세기에 해당한다.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서북지역이라는 한정된 범위에서 출토되며, 비파형동검과 더불어 고조선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단군은 초기국가시대 고조선의 제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BCE.2333년부터 BCE.1122년까지이며 단군왕검·단웅천왕이라고도 한다. 천제인 환인의 손자이며, 환웅의 아들로, 서기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 이후 나라를 다스리다 1908세에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단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시대의 스님 일연이 쓴 『삼국유사』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단군을 고조선의 시조로 이해하여 평양에 사당을 짓고 고구려 시조 동명왕과 함께 모신 이후로 단군은 한민족의 명실상부한 시조가 되었다.
단군 (檀君)
단군은 초기국가시대 고조선의 제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BCE.2333년부터 BCE.1122년까지이며 단군왕검·단웅천왕이라고도 한다. 천제인 환인의 손자이며, 환웅의 아들로, 서기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 이후 나라를 다스리다 1908세에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단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시대의 스님 일연이 쓴 『삼국유사』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단군을 고조선의 시조로 이해하여 평양에 사당을 짓고 고구려 시조 동명왕과 함께 모신 이후로 단군은 한민족의 명실상부한 시조가 되었다.
단군이 개국한 우리 나라 최초의 국가.
단군조선 (檀君朝鮮)
단군이 개국한 우리 나라 최초의 국가.
단군조선에 이어 서기전 1100년경에 건국한 초기국가.
기자조선 (箕子朝鮮)
단군조선에 이어 서기전 1100년경에 건국한 초기국가.
북한에서 함흥시립도서관장,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수와 고고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북한 고고학 발전에 공을 세운 고고학자.
도유호 (都宥浩)
북한에서 함흥시립도서관장,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수와 고고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북한 고고학 발전에 공을 세운 고고학자.
길림 서단산자 유적은 중국 길림성 길림시에 있는 청동기 시대 집터 등이 출토된 복합 유적이다. 이 유적은 중국 동북지역의 대표적인 청동기 시대 문화 가운데 하나인 ‘서단산 문화’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이 유적은 길림·장춘지역의 서단산 문화를 대표한다. 서단산 남서쪽 비탈에 자리하고 있으며 돌널무덤이 밀집해 있다. 유물로는 어린이의 뼈와 이빨, 토기, 석기,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청동기 문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고조선 또는 숙신족의 문화로 이해돼 한반도와의 문화적 동질성도 확인된다.
길림 서단산자 유적 (吉林 西團山子 遺蹟)
길림 서단산자 유적은 중국 길림성 길림시에 있는 청동기 시대 집터 등이 출토된 복합 유적이다. 이 유적은 중국 동북지역의 대표적인 청동기 시대 문화 가운데 하나인 ‘서단산 문화’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이 유적은 길림·장춘지역의 서단산 문화를 대표한다. 서단산 남서쪽 비탈에 자리하고 있으며 돌널무덤이 밀집해 있다. 유물로는 어린이의 뼈와 이빨, 토기, 석기,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청동기 문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고조선 또는 숙신족의 문화로 이해돼 한반도와의 문화적 동질성도 확인된다.
부왕은 초기국가시대 고조선의 왕이다. 진(秦)이 중국을 통일한 서기전 3세기 중반경 왕위에 올랐다.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 진에게 복속을 청하였지만, 진의 조회에는 응하지 않았다. 부왕이 죽은 뒤 아들 준(準)이 왕위를 이었다.
부왕 (否王)
부왕은 초기국가시대 고조선의 왕이다. 진(秦)이 중국을 통일한 서기전 3세기 중반경 왕위에 올랐다.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 진에게 복속을 청하였지만, 진의 조회에는 응하지 않았다. 부왕이 죽은 뒤 아들 준(準)이 왕위를 이었다.
숙신은 기원전 6~5세기 중원 북계를 비롯한 산둥반도 및 만주 동북부 지역에 살았던 종족이다. 식신(息愼)·직신(稷愼)이라고도 하며 조선이라는 왕조명을 갖기 이전에 고조선인들을 부르던 호칭으로도 보기도 한다. 숙신의 후손으로는 한(漢)대의 읍루(?婁), 후위(後魏)대의 물길(勿吉)과 수·당대의 말갈(靺鞨), 발해 멸망 후의 여진(女眞)이 꼽힌다. 부여에 살던 읍루족의 후손인 물길이 부여를 멸망시키고 농안지역에 이주한 물길-말갈계 집단이 고구려 멸망 이후 발해를 건국하는 주요 세력이 된다.
숙신 (肅愼)
숙신은 기원전 6~5세기 중원 북계를 비롯한 산둥반도 및 만주 동북부 지역에 살았던 종족이다. 식신(息愼)·직신(稷愼)이라고도 하며 조선이라는 왕조명을 갖기 이전에 고조선인들을 부르던 호칭으로도 보기도 한다. 숙신의 후손으로는 한(漢)대의 읍루(?婁), 후위(後魏)대의 물길(勿吉)과 수·당대의 말갈(靺鞨), 발해 멸망 후의 여진(女眞)이 꼽힌다. 부여에 살던 읍루족의 후손인 물길이 부여를 멸망시키고 농안지역에 이주한 물길-말갈계 집단이 고구려 멸망 이후 발해를 건국하는 주요 세력이 된다.
돌널무덤은 고인돌, 석개토광묘, 독무덤과 함께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무덤 양식이다. 일반적인 형태는 지하에 묘광을 파고 판돌이나 깬돌로 장방형의 돌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1매 이상의 뚜껑돌을 덮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의 옛 터전인 중국 동북부 지방과 북한 지역은 물론이고 남한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발견되며, 금강 중하류 일대에서 밀집 분포를 보이고 있다.
돌널무덤
돌널무덤은 고인돌, 석개토광묘, 독무덤과 함께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무덤 양식이다. 일반적인 형태는 지하에 묘광을 파고 판돌이나 깬돌로 장방형의 돌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1매 이상의 뚜껑돌을 덮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의 옛 터전인 중국 동북부 지방과 북한 지역은 물론이고 남한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발견되며, 금강 중하류 일대에서 밀집 분포를 보이고 있다.
고조선 건국 이전의 도읍지.
신시 (神市)
고조선 건국 이전의 도읍지.
청동기시대의 무기 혹은 제기(祭器).
비파형 동검 (琵琶形 銅劍)
청동기시대의 무기 혹은 제기(祭器).
위만조선의 제3대(재위: ?~BCE.108) 왕.
우거왕 (右渠王)
위만조선의 제3대(재위: ?~BCE.108) 왕.
중국 요령성 대련시(大連市) 감정자구(甘井子區) 영성자(營城子)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삼족기·가라바퀴 등이 발굴된 유물산포지. 생활유적.
요령 쌍타자 유적 (遼寧 雙駝子 遺蹟)
중국 요령성 대련시(大連市) 감정자구(甘井子區) 영성자(營城子)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삼족기·가라바퀴 등이 발굴된 유물산포지. 생활유적.
요령 정가와자 유적은 중국 요령성 심양시 정가와자에 있는 청동기시대 청동단검·쌍뉴경 등이 출토된 널무덤이다. 이 유적은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오래전부터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정가와자 마을에 위치한다. 무덤 규모나 출토 유물로 보아 무덤의 주인공은 선양 일대 요양 평원 지역을 관할하던 고조선의 최고지배자 또는 예맥계 정치집단 지배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과 관련하여 중요한 유물은 비파형 동검이다. 고인돌 분포지역과의 일치 및 서북한 세형동검 문화와의 연계성으로 고조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요령 정가와자 유적 (遼寧 鄭家窪子 遺蹟)
요령 정가와자 유적은 중국 요령성 심양시 정가와자에 있는 청동기시대 청동단검·쌍뉴경 등이 출토된 널무덤이다. 이 유적은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오래전부터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정가와자 마을에 위치한다. 무덤 규모나 출토 유물로 보아 무덤의 주인공은 선양 일대 요양 평원 지역을 관할하던 고조선의 최고지배자 또는 예맥계 정치집단 지배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과 관련하여 중요한 유물은 비파형 동검이다. 고인돌 분포지역과의 일치 및 서북한 세형동검 문화와의 연계성으로 고조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위만조선의 제1대(재위: 기원전 194년~?) 왕.
위만 (衛滿)
위만조선의 제1대(재위: 기원전 194년~?) 왕.
『위서(魏書)』는 고대 중국의 위(魏)나라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다. 좁은 의미로는 위수(魏收)의 『위서』 등 특정 사서를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는 진수(陳壽)의 『위지(魏志)』를 포함하여 조위(曹魏) 혹은 북위(北魏)의 역사를 다룬 사서의 범칭이기도 하다.
위서 (魏書)
『위서(魏書)』는 고대 중국의 위(魏)나라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다. 좁은 의미로는 위수(魏收)의 『위서』 등 특정 사서를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는 진수(陳壽)의 『위지(魏志)』를 포함하여 조위(曹魏) 혹은 북위(北魏)의 역사를 다룬 사서의 범칭이기도 하다.
고조선시대 단군(檀君)의 도읍지.
장당경 (藏唐京)
고조선시대 단군(檀君)의 도읍지.
평양용추동고분(平壤龍秋洞古墳)은 평양직할시 룡성구역에 있는 고조선 후기의 덧널무덤이다. 덧널의 북쪽이 부장칸이 되는 전형적인 단장 덧널무덤의 구조이다. 출토된 유물이 명기화된 점에서 늦은 시기의 구덩무덤으로 파악된다. 평양용추동고분 덧널무덤의 존재는 대동강 남쪽 기슭에 집중되는 전형적인 덧널무덤의 전체적인 분포 범위를 시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여기서 출토된 나무칼과 칼집의 형태는 진한 사회의 대구팔달동유적과 유사한 점이 있어 양 지역 간에는 상호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평양 용추동 고분 (平壤 龍秋洞 古墳)
평양용추동고분(平壤龍秋洞古墳)은 평양직할시 룡성구역에 있는 고조선 후기의 덧널무덤이다. 덧널의 북쪽이 부장칸이 되는 전형적인 단장 덧널무덤의 구조이다. 출토된 유물이 명기화된 점에서 늦은 시기의 구덩무덤으로 파악된다. 평양용추동고분 덧널무덤의 존재는 대동강 남쪽 기슭에 집중되는 전형적인 덧널무덤의 전체적인 분포 범위를 시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여기서 출토된 나무칼과 칼집의 형태는 진한 사회의 대구팔달동유적과 유사한 점이 있어 양 지역 간에는 상호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식동검은 초기 철기시대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주로 사용했던 조립식 구조의 청동단검이다. 검신 하단부가 각이 지며, 등대 마디와 칼허리를 지닌 모양을 띤다. 넓은 범위로는 불완전한 초기 단계의 동검들과 쇠퇴 단계의 직인화된 동검까지 포함된다. 서기전 4~1세기경에 주로 유행하였으나, 남한 지역에는 서기 2세기경까지 잔존한다. 한국식동검은 요령식동검을 계승하면서도 중원식동검과 북방식동검의 일체형 구조와 구별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한반도가 독자적인 문화권을 이루면서 발전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한국식 동검 (韓國式 銅劍)
한국식동검은 초기 철기시대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주로 사용했던 조립식 구조의 청동단검이다. 검신 하단부가 각이 지며, 등대 마디와 칼허리를 지닌 모양을 띤다. 넓은 범위로는 불완전한 초기 단계의 동검들과 쇠퇴 단계의 직인화된 동검까지 포함된다. 서기전 4~1세기경에 주로 유행하였으나, 남한 지역에는 서기 2세기경까지 잔존한다. 한국식동검은 요령식동검을 계승하면서도 중원식동검과 북방식동검의 일체형 구조와 구별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한반도가 독자적인 문화권을 이루면서 발전하였음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