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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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조선후기 김장생(金長生)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
논산 돈암서원 (論山 遯巖書院)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조선후기 김장생(金長生)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
지질학은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의 종류와 특성, 그리고 이들 물질들의 형성과정, 구조, 역사 등을 다루는 학문이다. 지질과학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지질학 연구는 1884년 독일 지질학자 고체가 다녀간 후 시작되었다. 일제는 1900년을 전후하여 지질학자를 파견하여 지질과 광물자원 조사에 열을 올렸고, 지질과 광상(鑛床)에 관한 상세한 보고서를 펴냈다. 1946년 서울대학교에 이학부 지질학과가 설치되어 지질학 발전의 토대가 갖추어졌다. 현재 지질과학의 교수와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곳은 전국적으로 총 15개교이다.
지질학 (地質學)
지질학은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의 종류와 특성, 그리고 이들 물질들의 형성과정, 구조, 역사 등을 다루는 학문이다. 지질과학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지질학 연구는 1884년 독일 지질학자 고체가 다녀간 후 시작되었다. 일제는 1900년을 전후하여 지질학자를 파견하여 지질과 광물자원 조사에 열을 올렸고, 지질과 광상(鑛床)에 관한 상세한 보고서를 펴냈다. 1946년 서울대학교에 이학부 지질학과가 설치되어 지질학 발전의 토대가 갖추어졌다. 현재 지질과학의 교수와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곳은 전국적으로 총 15개교이다.
해방 이후 영풍 주식회사, 영풍산업, 고려아연 등을 설립한 기업인.
장병희 (張炳希)
해방 이후 영풍 주식회사, 영풍산업, 고려아연 등을 설립한 기업인.
광업법은 1906년 6월 29일에 공포된 광업에 관한 법령이다. 초안은 1905년부터 일본 외부와 농상무성의 고문 메카다와 고치·다나카 등에 의해 작성되었다. 이 법의 시행으로 기존의 궁내부 소속 광산제도를 없애 일본이 자유롭게 한국 광산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내·외국인의 구별을 없앰으로써 일본인과 구미인이 한국 광산 채굴에 진출하여 일본인의 광업 허가 건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이후 「제실의 광산 규정」을 폐지했고, 궁내부 소속 광산을 폐지하였다. 「사광채취법」도 공포하여 사금에 채취세를 규정하여 한국인 사이에 사금 유통을 규제하였다.
광업법 (鑛業法)
광업법은 1906년 6월 29일에 공포된 광업에 관한 법령이다. 초안은 1905년부터 일본 외부와 농상무성의 고문 메카다와 고치·다나카 등에 의해 작성되었다. 이 법의 시행으로 기존의 궁내부 소속 광산제도를 없애 일본이 자유롭게 한국 광산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내·외국인의 구별을 없앰으로써 일본인과 구미인이 한국 광산 채굴에 진출하여 일본인의 광업 허가 건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이후 「제실의 광산 규정」을 폐지했고, 궁내부 소속 광산을 폐지하였다. 「사광채취법」도 공포하여 사금에 채취세를 규정하여 한국인 사이에 사금 유통을 규제하였다.
전국광산노동조합연맹은 석탄광업, 금속광업, 비금속광업 등에 종사하는 광산노동자로 구성된 노동조합들의 산별 노동조합 연맹체이다. 1949년에 전국광산노동조합이 결성되었는데 노동조합법 제정에 따라 명칭을 변경하였다. 1961년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 해산된 후, 전국광산노동조합으로 재조직되었다. 1980년 신군부의 기업별 노조로의 전환으로 조직이 크게 약화되었으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등 활동을 전개하였다. 2011년 광산노동자의 이해가 직접 관련된 『광산보안법』, 진폐의 예방과 진폐 노동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 청원과 정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전국광산노동조합연맹 (全國鑛山勞動組合聯盟)
전국광산노동조합연맹은 석탄광업, 금속광업, 비금속광업 등에 종사하는 광산노동자로 구성된 노동조합들의 산별 노동조합 연맹체이다. 1949년에 전국광산노동조합이 결성되었는데 노동조합법 제정에 따라 명칭을 변경하였다. 1961년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 해산된 후, 전국광산노동조합으로 재조직되었다. 1980년 신군부의 기업별 노조로의 전환으로 조직이 크게 약화되었으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등 활동을 전개하였다. 2011년 광산노동자의 이해가 직접 관련된 『광산보안법』, 진폐의 예방과 진폐 노동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 청원과 정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황해남도의 남서부, 대동만과 해주만 사이에 있는 황해에 돌출한 반도.
옹진반도 (甕津半島)
황해남도의 남서부, 대동만과 해주만 사이에 있는 황해에 돌출한 반도.
광산김씨 긍구당고택은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조선시대 광산김씨 담안공파 관련 주택이다. 광산김씨 담안공파 김언기(1520~1588)가 말년에 이곳에서 제자를 길렀다. 집의 이름은 김언기의 4세손 김세환의 호인 긍구당(肯構堂)에서 따왔다. ‘긍구’는 ‘조상들이 이루어 놓은 훌륭한 업적을 소홀히 하지 말고 길이 이어받으라’는 뜻이다. 원래 이 집은 김언기의 둘째 부인 처가였는데 김언기가 물려받았다. 처음에는 99칸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지만 지금은 축소된 상태이다. 이 고택은 비교적 옛 양식이 잘 남아 있어 전통가옥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광산김씨 긍구당고택 (光山金氏 肯構堂古宅)
광산김씨 긍구당고택은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조선시대 광산김씨 담안공파 관련 주택이다. 광산김씨 담안공파 김언기(1520~1588)가 말년에 이곳에서 제자를 길렀다. 집의 이름은 김언기의 4세손 김세환의 호인 긍구당(肯構堂)에서 따왔다. ‘긍구’는 ‘조상들이 이루어 놓은 훌륭한 업적을 소홀히 하지 말고 길이 이어받으라’는 뜻이다. 원래 이 집은 김언기의 둘째 부인 처가였는데 김언기가 물려받았다. 처음에는 99칸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지만 지금은 축소된 상태이다. 이 고택은 비교적 옛 양식이 잘 남아 있어 전통가옥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학자 김장생을 비롯한 광산김씨 문중의 묘역.
김장생 선생 묘소 일원 (金長生 先生 墓所 一園)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학자 김장생을 비롯한 광산김씨 문중의 묘역.
화평군은 자강도의 동북쪽에 있는 군이다. 1952년 자강도 후창군의 남신면과 칠평면, 자성군, 리평면의 12개 리를 통합해 군을 신설하였다. 후창군의 유화리에서 ‘화’자를, 자성군 리평면에서 ‘평’자를 따서 ‘후창군’으로 명명하였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1개 읍, 3개의 로동자구, 10개의 리로 이루어져 있다. 군 소재지는 화평읍이다. 높고 낮은 산줄기로 둘러싸여 있으며 자성강 등 하천이 20여 개에 달한다. 임업‧공업‧농업 등 다각적인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계공업, 생필품공업, 방직 및 피복공업, 식료품공업 등이 발달하였고 이중 임업의 비중이 가장 크다.
화평군 (和坪郡)
화평군은 자강도의 동북쪽에 있는 군이다. 1952년 자강도 후창군의 남신면과 칠평면, 자성군, 리평면의 12개 리를 통합해 군을 신설하였다. 후창군의 유화리에서 ‘화’자를, 자성군 리평면에서 ‘평’자를 따서 ‘후창군’으로 명명하였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1개 읍, 3개의 로동자구, 10개의 리로 이루어져 있다. 군 소재지는 화평읍이다. 높고 낮은 산줄기로 둘러싸여 있으며 자성강 등 하천이 20여 개에 달한다. 임업‧공업‧농업 등 다각적인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계공업, 생필품공업, 방직 및 피복공업, 식료품공업 등이 발달하였고 이중 임업의 비중이 가장 크다.
질소족에 속하는 담황색 반투명의 비금속원소.
인 (燐)
질소족에 속하는 담황색 반투명의 비금속원소.
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光山金氏 齋舍 및 祠堂)은 조선 중기에 경상북도 안동시 오천면 외내마을에 지어졌다가 안동댐 건설로 인근의 와룡면 오천리로 옮겨진 광산김씨의 재사 및 사당이다. 이 사당은 입향조로 알려진 농수(聾叟) 김효로(金孝盧)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1536년(중종 31)에 지어진 이후 김효로의 증손자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를 합향한 것이다. 재사는 2동의 ㅡ자형 건물과 1동의 고사(庫舍)로 구성된다. 이 건물들은 함께 옮겨진 후조당(後彫堂)의 부속 건물들로 알려져 있는데, 이건하기 전의 배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 (光山金氏 齋舍 및 祠堂)
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光山金氏 齋舍 및 祠堂)은 조선 중기에 경상북도 안동시 오천면 외내마을에 지어졌다가 안동댐 건설로 인근의 와룡면 오천리로 옮겨진 광산김씨의 재사 및 사당이다. 이 사당은 입향조로 알려진 농수(聾叟) 김효로(金孝盧)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1536년(중종 31)에 지어진 이후 김효로의 증손자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를 합향한 것이다. 재사는 2동의 ㅡ자형 건물과 1동의 고사(庫舍)로 구성된다. 이 건물들은 함께 옮겨진 후조당(後彫堂)의 부속 건물들로 알려져 있는데, 이건하기 전의 배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광산김씨 예안파 종손가에 소장된 문서. 종가문서.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고문서 (光山金氏 禮安派 宗家 古文書)
광산김씨 예안파 종손가에 소장된 문서. 종가문서.
조선시대 중앙에서 파견된 임시관직.
채방사 (採訪使)
조선시대 중앙에서 파견된 임시관직.
과일군은 황해남도 북서부 서해 연안에 있는 군이다. 1967년 10월 송화군에서 분리해 군으로 승격·개편하면서, 큰 규모의 과수종합농장이 있는 군이라는 의미로 과일군이라 개명하였다. 면적은 364.3㎢, 인구는 6만 7200여 명(1996년 추정)이다. 연안에 평야가 발달했으나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구릉성 지형을 이룬다. 군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과수단지로 개발하여 ‘1백리 청춘 과원’으로 불리며, 과수원이 군 전체 경지면적의 70%에 이른다. 군 이름이 나타내듯이 사과·배·복숭아 등의 생산량이 북한에서 가장 많으며, 과수원의 길이는 40㎞에 이른다.
과일군 (과일郡)
과일군은 황해남도 북서부 서해 연안에 있는 군이다. 1967년 10월 송화군에서 분리해 군으로 승격·개편하면서, 큰 규모의 과수종합농장이 있는 군이라는 의미로 과일군이라 개명하였다. 면적은 364.3㎢, 인구는 6만 7200여 명(1996년 추정)이다. 연안에 평야가 발달했으나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구릉성 지형을 이룬다. 군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과수단지로 개발하여 ‘1백리 청춘 과원’으로 불리며, 과수원이 군 전체 경지면적의 70%에 이른다. 군 이름이 나타내듯이 사과·배·복숭아 등의 생산량이 북한에서 가장 많으며, 과수원의 길이는 40㎞에 이른다.
조선후기 광산김씨 문중인(門中人)이 지은 잠계(箴戒) 수필집.
여잠 (女箴)
조선후기 광산김씨 문중인(門中人)이 지은 잠계(箴戒) 수필집.
해방 이후 『광물학개론』을 저술한 학자. 지질학자.
윤석규 (尹碩奎)
해방 이후 『광물학개론』을 저술한 학자. 지질학자.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김익희의 무덤.
김익희의 묘 (金益熙의 墓)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김익희의 무덤.
채굴공업과 금속공업 부문의 고급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
광산금속대학 (鑛山金屬大學)
채굴공업과 금속공업 부문의 고급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
신양군은 평안남도의 북창군·맹산군·양덕군·회창군·성천군과 함경남도 요덕군으로 둘러싸인 평안남도 동남쪽의 군이다. 1952년 양덕군과 성천군 일부를 분리해 신설되었다. 명칭은 새로운 양덕이라는 뜻이다. 산지가 대부분인 내륙 산간지대로, 비류강과 평원천이 흐르며 농경지는 군 면적의 13%에 불과하다. 주요 경제는 광공업으로, 납·아연을 생산하는 신양광산과 안티몬을 생산하는 인평광산이 중심이다. 고려시대에 쌓은 수덕성터가 남아 있으며, 백운사와 관성이봉수, 문명리고인돌 등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신양군 (新陽郡)
신양군은 평안남도의 북창군·맹산군·양덕군·회창군·성천군과 함경남도 요덕군으로 둘러싸인 평안남도 동남쪽의 군이다. 1952년 양덕군과 성천군 일부를 분리해 신설되었다. 명칭은 새로운 양덕이라는 뜻이다. 산지가 대부분인 내륙 산간지대로, 비류강과 평원천이 흐르며 농경지는 군 면적의 13%에 불과하다. 주요 경제는 광공업으로, 납·아연을 생산하는 신양광산과 안티몬을 생산하는 인평광산이 중심이다. 고려시대에 쌓은 수덕성터가 남아 있으며, 백운사와 관성이봉수, 문명리고인돌 등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한미무역회사는 1910년 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미국동포사회 최초의 무역회사이다. 한미합작 성격의 주식회사로 대동보국회 회원이 주축이 되어 본사 사장을 미국인 찰스 피셔가 맡았다. 1910년 서기풍 등을 주축으로 평양지사를 설치하여 사업 확장을 시도하였다.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본에 강탈당하자 정상적인 영업이 어려워져 한미무역협회의 활동은 1912년 막을 내렸다. 회사 주주로 참여한 최영만, 조성학, 서기풍 등은 국권상실기 국권회복과 산업자본 확보를 위해 노력했으며, 파산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에 가담하게 된다.
한미무역회사 (韓美貿易會社)
한미무역회사는 1910년 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미국동포사회 최초의 무역회사이다. 한미합작 성격의 주식회사로 대동보국회 회원이 주축이 되어 본사 사장을 미국인 찰스 피셔가 맡았다. 1910년 서기풍 등을 주축으로 평양지사를 설치하여 사업 확장을 시도하였다.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본에 강탈당하자 정상적인 영업이 어려워져 한미무역협회의 활동은 1912년 막을 내렸다. 회사 주주로 참여한 최영만, 조성학, 서기풍 등은 국권상실기 국권회복과 산업자본 확보를 위해 노력했으며, 파산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에 가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