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군국기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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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아문(工務衙門)은 갑오개혁기에 교통, 체신, 건축, 광산 등의 사무를 관장하던 중앙관청이다. 개화파 정부의 근대화 정책에 따라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 회의를 거쳐 신설되었다. 체신 운반과 전선 가설, 철도와 도로 건설, 광산 개발, 해운항만 시설, 각종 공공건물 건축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확충과 산업개발을 전담하였다.
공무아문 (工務衙門)
공무아문(工務衙門)은 갑오개혁기에 교통, 체신, 건축, 광산 등의 사무를 관장하던 중앙관청이다. 개화파 정부의 근대화 정책에 따라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 회의를 거쳐 신설되었다. 체신 운반과 전선 가설, 철도와 도로 건설, 광산 개발, 해운항만 시설, 각종 공공건물 건축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확충과 산업개발을 전담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법무 행정을 관장하던 중앙관청.
법무아문 (法務衙門)
갑오개혁 이후 법무 행정을 관장하던 중앙관청.
농상아문은 1894~1895년 갑오개혁 시기에 농업, 상업, 수산, 종목, 지질, 영업회사 등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던 중앙 관서이다. 갑오개화파 정부의 근대화 정책에 따라 군국기무처 회의를 거쳐 신설되었다. 농업과 상업 등 국가의 기본 생활 경제를 전담하였으며, 산하에 총무국, 농상국(農桑局), 공상국(工商局), 산림국, 수산국, 지질국, 장려국, 회계국을 두었다.
농상아문 (農商衙門)
농상아문은 1894~1895년 갑오개혁 시기에 농업, 상업, 수산, 종목, 지질, 영업회사 등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던 중앙 관서이다. 갑오개화파 정부의 근대화 정책에 따라 군국기무처 회의를 거쳐 신설되었다. 농업과 상업 등 국가의 기본 생활 경제를 전담하였으며, 산하에 총무국, 농상국(農桑局), 공상국(工商局), 산림국, 수산국, 지질국, 장려국, 회계국을 두었다.
경연원은 갑오개혁(甲午改革) 때 궁내부(宮內府) 산하에 설치되어 경적(經籍)과 문한(文翰)을 보관하고, 경연과 대찬(代撰)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던 관서이다. 1894년 7월 22일, 궁내부관제를 제정할 때 홍문관과 예문관을 합하여 경연청(經筵廳)이 설치되었으나, 1895년 4월 2일, 경연청이 폐지되어 시종원(侍從院)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다가, 같은 해 11월 10일, 다시 궁내부관제가 개정되어 경연원이 설치되었다. 1897년 1월, 홍문관(弘文館)으로 개칭하였다.
경연원 (經筵院)
경연원은 갑오개혁(甲午改革) 때 궁내부(宮內府) 산하에 설치되어 경적(經籍)과 문한(文翰)을 보관하고, 경연과 대찬(代撰)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던 관서이다. 1894년 7월 22일, 궁내부관제를 제정할 때 홍문관과 예문관을 합하여 경연청(經筵廳)이 설치되었으나, 1895년 4월 2일, 경연청이 폐지되어 시종원(侍從院)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다가, 같은 해 11월 10일, 다시 궁내부관제가 개정되어 경연원이 설치되었다. 1897년 1월, 홍문관(弘文館)으로 개칭하였다.
내각(內閣)은 1895년 갑오개혁 때부터 1896년 아관파천 때까지 국가의 주요 정책과 법률을 심의 결정하던 최고 기관이다. 법률 칙령의 제정과 폐지 등 법령제정권과 관리임명 제청권, 세입 세출, 국채와 조세 징수 제청, 국제조약 체결 등에 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내각 (內閣)
내각(內閣)은 1895년 갑오개혁 때부터 1896년 아관파천 때까지 국가의 주요 정책과 법률을 심의 결정하던 최고 기관이다. 법률 칙령의 제정과 폐지 등 법령제정권과 관리임명 제청권, 세입 세출, 국채와 조세 징수 제청, 국제조약 체결 등에 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1894년 갑오경장이 전개되면서 군국기무처에서 의결한 사항들을 수록한 법제서.
의정존안 (議政存案)
1894년 갑오경장이 전개되면서 군국기무처에서 의결한 사항들을 수록한 법제서.
1894년 군국기무처에서 의결한 장정을 모아 엮은 법제서. 존안.
장정존안 (章程存案)
1894년 군국기무처에서 의결한 장정을 모아 엮은 법제서. 존안.
중추원은 1894년에 설립되어 일제강점기까지 존속하였으며, 한일합병 전에는 초기 의회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의 자문 역할을 한 기관이다. 1894년, 갑오개혁기에 정치개혁과 관제개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에는 독립협회, 만만공동회의 활약에 힘입어 국정에 민의를 반영하는 의회적 성격을 띠었으며, 한일병합 후에는 조선총독의 자문기관으로 변화하였다. 이 외에 구관습을 조사하는 업무를 하였다. 문화정치기에 민심수습책의 일환으로 중추원에 지역참의를 설치하였다.
중추원 (中樞院)
중추원은 1894년에 설립되어 일제강점기까지 존속하였으며, 한일합병 전에는 초기 의회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의 자문 역할을 한 기관이다. 1894년, 갑오개혁기에 정치개혁과 관제개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에는 독립협회, 만만공동회의 활약에 힘입어 국정에 민의를 반영하는 의회적 성격을 띠었으며, 한일병합 후에는 조선총독의 자문기관으로 변화하였다. 이 외에 구관습을 조사하는 업무를 하였다. 문화정치기에 민심수습책의 일환으로 중추원에 지역참의를 설치하였다.
통상사는 1880년(고종 17) 12월 20일에 설치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의 예하 기관인 12사(司) 가운데 하나로, 외국과의 통상을 담당한 부서이다. 임오군란으로 폐지되었다가, 1887년 4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이 6사(司) 체제로 개편되었을 때 복설되었다. 갑오개혁 때는 외무아문의 산하 부서의 하나인 통상국으로 계승되었다.
통상사 (通商司)
통상사는 1880년(고종 17) 12월 20일에 설치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의 예하 기관인 12사(司) 가운데 하나로, 외국과의 통상을 담당한 부서이다. 임오군란으로 폐지되었다가, 1887년 4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이 6사(司) 체제로 개편되었을 때 복설되었다. 갑오개혁 때는 외무아문의 산하 부서의 하나인 통상국으로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