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아문(工務衙門)은 갑오개혁기에 교통, 체신, 건축, 광산 등의 사무를 관장하던 중앙관청이다. 개화파 정부의 근대화 정책에 따라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 회의를 거쳐 신설되었다. 체신 운반과 전선 가설, 철도와 도로 건설, 광산 개발, 해운항만 시설, 각종 공공건물 건축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확충과 산업개발을 전담하였다.
1895년 4월 1일, 칙령 제48호로 농상아문(農商衙門)과 통합하여 농상공부(農商工部)로 개편되었다. 개편된 농상공부의 직무 중 농업과 상업을 제외한 공업, 우체, 전신, 광산, 선박, 해원(海員) 등의 관리가 공무아문에서 하던 업무이다.
공무아문은 갑오개혁(甲午改革) 당시 개화파 관료들이 조선의 산업을 개발하고 자본주의 발전의 토대를 확충하고 근대국가 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였다. 그러나 주(駐)조선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가 “공무아문은 아직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였는데, 이 주장이 관철되어 공무아문이 폐지되었다. 근대국가 체제의 수립은 좌절되었으나 자주적으로 근대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