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시청(警視廳)은 1907년부터 1910년에 일본 통감부가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 직전까지 대한제국의 경찰 관련 업무를 간섭 · 감독하기 위하여 경무청(警務廳)을 개칭한 중앙기구이다. 대한제국의 경무청(警務廳)을 대신하였다. 경시총감(警視總監)이 총괄하던 이 기구는 일본식 경찰 제도를 따랐고, 대한제국의 치안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일제 통감부가 대한제국의 국권과 민권을 말살하는 과정에 적극 악용되었다.
1907년 12월, 순종황제가 제가(制可)하여 반포한 직제(職制)에 따르면 경시총감 1인은 칙임, 경시부감 1인은 칙임 혹은 주임, 경시(警視) 12인은 주임, 경찰의(警察醫) 5인은 주임이나 판임, 경부(警部) 58인은 판임으로 하였다.
경시총감(警視總監)은 내부대신(內部大臣)의 지휘 감독을 받아 황실 · 한성부 및 경기의 경찰 · 소방 및 위생 사무를 관장하고, 경찰 사무는 각부 대신의 지휘 감독을 받았다. 또한 관내 경찰 사무에 관하여 청령(廳令)을 발동할 수 있었다. 경시총감은 경찰서장, 경찰분서장의 처분 또는 명령이 규정에 어긋날 때에는 그 처분과 명령을 취소하거나 정지할 수 있었다.
경시청은 이완용 등 친일인사의 신변을 경호하는 반면, 의병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를 수색 · 체포하고 탄압하는 데 적극 앞장섰다. 또한 한국과 일본의 경관(警官)을 동원하여 『이태리건국삼걸전』, 『을지문덕전』, 『월남망국사』 등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서적을 압수하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1907년 7월 27일, 칙령 1호 경무청 관제를 개정하여 경무청을 경시청으로, 경무사를 경시총감으로, 경무관을 경시로 개정하였다. 이때 경무청을 일본식 경찰제도로 바꾸었다. 직제는 4 차례에 걸쳐 개정되었다. 강제병합 직전인 1910년 5월 순종황제의 칙령으로 경시청 관제를 폐지하라는 안건이 제가 반포되었고, 그해 6월 30일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1907년부터 1910년까지, 국권이 형해화되는 과정에서 통감부가 대한제국의 경찰치안 행정을 일본식으로 바꾼 것으로, 일제의 식민지화 준비를 위한 통치억압기구로 적극 악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