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에 흥선대원군은 삼군부(三軍府)를 설치하고 유사당상으로 훈련대장(訓鍊大將), 어영대장(禦營大將), 금위대장(禁衛大將)을 두었다. 삼군부는 당시 최고의 군령 기관으로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에게 강화도와 한강 일대를 무단으로 침략당한 이후 군사를 양성하고 무기를 제조하여 군사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1873년,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자 삼군부는 유명무실한 군사 기구로 전락하였다가 1880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흥선대원군이 정계에서 물러난 이후 고종은 1874년 6월 무위소(武衛所)를 설치하고 훈련대장이 이를 지휘하게 하였으며, 7월에는 금위대장 조영하에게 무위도통사를 겸임시켰다.
그러나 무신들의 지위와 그들에 대한 우대는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비해 약화되었다. 그러던 중 1882년 2월, 종래의 5군영 체제를 무위영과 장어영의 2군영 체제로 개편하고 초대 무위대장에는 이경하, 장어대장에는 신정희가 임명되었다. 그러나 임오군란 이후 대원군이 일시 재집권하면서 다시 5군영 체제로 복귀하였지만 군란 실패 이후 친군영 체제로 재편되었다.
이같은 군제의 변화 과정에서 종래의 대장은 영사(營使) 등으로 호칭이 변경되었다. 대한제국 시기 원수부(元帥府)의 각 급 부장 또는 총장(摠長)이 이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