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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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고종 17) 12월 20일에 설치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의 예하 기관인 12사(司) 가운데 하나로, 외국과의 통상을 담당한 부서.
제도/관청
설치 시기
1880년(고종 17) 12월 20일|1882년(고종 19)
폐지 시기
1887년(고종 24) 4월|1894년(고종 31) 6월 28일
상급 기관
통리기무아문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통상사는 1880년(고종 17) 12월 20일에 설치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의 예하 기관인 12사(司) 가운데 하나로, 외국과의 통상을 담당한 부서이다. 임오군란으로 폐지되었다가, 1887년 4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이 6사(司) 체제로 개편되었을 때 복설되었다. 갑오개혁 때는 외무아문의 산하 부서의 하나인 통상국으로 계승되었다.

목차
정의
1880년(고종 17) 12월 20일에 설치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의 예하 기관인 12사(司) 가운데 하나로, 외국과의 통상을 담당한 부서.
내용

1880년(고종 17) 12월 20일에 설치된 통리기무아문이 1881년 1월 16일 12사로 사무를 분장(分掌)하였을 때 설치되었다. 설치 당시 통상사 당상(堂上)에는 김보현(金輔鉉) · 김홍집(金弘集)이 임명되었다. 1881년 11월 통리기무아문의 기구가 12사에서 7사로 개편되었을 때에도 존속되었다.

이때 통상사 당상에는 경리사(經理事) 김보현과 김홍집, 부경리사(副經理事) 조병직(趙秉稷) · 이헌영(李𨯶永) · 민종묵(閔種默)이 임명되었다. 3명의 부경리사는 모두 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의 세관을 시찰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당상에 임명된 것이다.

임오군란으로 통리기무아문이 폐지됨에 따라 그 예하 기관인 통상사도 자연적으로 소멸되었다. 이후 1882년 12월 4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외아문)이 설치되면서 그 예하 기관인 정각사(征榷司)가 통상사와 유사한 기능을 담당하다가 외아문 개편 때 복설되었다.

1887년 4월 27일에 외아문이 정각사 · 장교사(掌交司) · 부교사(富敎司) · 우정사(郵程司)동문학(同文學)의 4사 1학 체제에서 총무사 · 교섭사 · 번역사 · 기록사 · 통상사 · 회계사의 6사 체제로 개편 때 6사의 하나가 된 것이다. 이때 제정된 「통리교섭통상아문속장정(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續章程)」에 따르면, 통상사의 업무는 외국인의 조선 내지(內地) 매입, 조선인의 해외 무역 및 해관 · 변관(邊關)과 관련된 사무와 외국에 파견한 영사의 부임 · 해임과 관련된 사무 등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1894년 6월 28일 군국기무처가 공포한 신관제에 따라 외아문이 외무아문으로 바뀌고 그 산하의 6사가 이름만 바꾸어 6국이 됨에 따라 통상사는 통상국으로 계승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승정원일기』

단행본

森万佑子, 『朝鮮外交の近代-宗屬關係から大韓帝國へ』(名古屋大學出版會, 2017)

논문

전미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 관한 연구」(『이대사원』 24·25, 이화여자대학교 사학회, 1989)
전해종, 「통리기무아문설치의 경위에 대하여」(『역사학보』 17·18, 역사학회,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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