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고종 17) 12월 20일에 설치된 통리기무아문이 1881년 1월 16일 12사로 사무를 분장(分掌)하였을 때 설치되었다. 설치 당시 통상사 당상(堂上)에는 김보현(金輔鉉) · 김홍집(金弘集)이 임명되었다. 1881년 11월 통리기무아문의 기구가 12사에서 7사로 개편되었을 때에도 존속되었다.
이때 통상사 당상에는 경리사(經理事) 김보현과 김홍집, 부경리사(副經理事) 조병직(趙秉稷) · 이헌영(李𨯶永) · 민종묵(閔種默)이 임명되었다. 3명의 부경리사는 모두 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의 세관을 시찰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당상에 임명된 것이다.
임오군란으로 통리기무아문이 폐지됨에 따라 그 예하 기관인 통상사도 자연적으로 소멸되었다. 이후 1882년 12월 4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외아문)이 설치되면서 그 예하 기관인 정각사(征榷司)가 통상사와 유사한 기능을 담당하다가 외아문 개편 때 복설되었다.
1887년 4월 27일에 외아문이 정각사 · 장교사(掌交司) · 부교사(富敎司) · 우정사(郵程司)와 동문학(同文學)의 4사 1학 체제에서 총무사 · 교섭사 · 번역사 · 기록사 · 통상사 · 회계사의 6사 체제로 개편 때 6사의 하나가 된 것이다. 이때 제정된 「통리교섭통상아문속장정(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續章程)」에 따르면, 통상사의 업무는 외국인의 조선 내지(內地) 매입, 조선인의 해외 무역 및 해관 · 변관(邊關)과 관련된 사무와 외국에 파견한 영사의 부임 · 해임과 관련된 사무 등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1894년 6월 28일 군국기무처가 공포한 신관제에 따라 외아문이 외무아문으로 바뀌고 그 산하의 6사가 이름만 바꾸어 6국이 됨에 따라 통상사는 통상국으로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