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12월 4일, 통리아문을 개칭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외아문)은 1883년 1월 20일에 장정을 마련하여 그 예하에 정각사(征榷司) · 장교사(掌交司) · 부교사(富敎司) · 우정사(郵程司)의 4사와 동문학(同文學)를 두었다.
정각사는 해관 · 변관(邊關)의 징세 업무와 개항장 관련 업무, 장교사는 외교 교섭 · 사신 파견 · 조약의 개정 등 조약에 관한 업무, 부교사는 이원을 개척하기 위한 화폐 주조 · 개광 · 제조 · 잠상(蠶桑) · 목축 등의 업무, 우정사는 전보 · 역전(驛傳) · 철로 · 수륙 통행로 등의 토목사업, 동문학은 외국어와 정치 · 경제의 학습을 통한 인재 양성 업무를 각각 담당하였다.
관료 기구는 4사와 동문학을 총괄하는 총책임자 독판(督辦) 1명, 각 사를 대표하는 책임자로 독판을 보좌하는 협판(協辦) 4명, 각 사에서 협판을 보좌하는 참의 4명, 각 사에 속해 문서의 기록과 작성 및 수취와 발송을 담당하는 주사 8명 등으로 구성되었다.
1885년 5월에 설치된 내무부가 외아문의 일부 기능을 담당하면서 외아문은 외교와 통상만을 전담하는 기구로 개편된다. 1887년 4월 27일에 직무 규정을 개정하여 종래의 4사 1학 체제를 총무사 · 교섭사 · 번역사 · 기록사 · 통상사 · 회계사의 6사 체제로 개편한 것이다. 주사의 인원도 기존의 8명에서 24명으로 대폭 증원되었다.
그 후 갑오개혁 시기인 1894년 7월 20일에 외아문은 폐지되고 외무아문이 창설되었다. 외무아문은 산하에 총무국 · 교섭국 · 통상국 · 번역국 · 기록국 · 회계국의 6국을 두어, 외아문의 6사를 이름만 바꾸어 그대로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