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금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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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부금광명경석독구결』은 고려본 『합부금광명경』의 한문 원문을 우리말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토를 단 불교경전이며 구결서이다. 문자를 사용하는 자토석독구결과 점을 찍거나 선을 긋는 점토석독구결을 모두 기입한 특이한 형태의 구결서이다. 이 책은 597년 수나라의 보귀가 번역한 『합부금광명경』의 제3권으로 13세기 초에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점토구결은 각필로 찍어 나타낸 것도 있으나 대체로 먹물로 기입하였다. 구결 기입은 13세기 초로 추정된다. 점토구결과 자토구결의 대응 관계를 직접 살펴볼 수 있어 구결 해독에 중요한 자료이다.
합부금광명경석독구결 (合部金光明經釋讀口訣)
『합부금광명경석독구결』은 고려본 『합부금광명경』의 한문 원문을 우리말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토를 단 불교경전이며 구결서이다. 문자를 사용하는 자토석독구결과 점을 찍거나 선을 긋는 점토석독구결을 모두 기입한 특이한 형태의 구결서이다. 이 책은 597년 수나라의 보귀가 번역한 『합부금광명경』의 제3권으로 13세기 초에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점토구결은 각필로 찍어 나타낸 것도 있으나 대체로 먹물로 기입하였다. 구결 기입은 13세기 초로 추정된다. 점토구결과 자토구결의 대응 관계를 직접 살펴볼 수 있어 구결 해독에 중요한 자료이다.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광산자원의 개발에 따라 형성된 취락.
광산취락 (鑛山聚落)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광산자원의 개발에 따라 형성된 취락.
덕대제는 광산의 주인과 계약을 맺고 채광하는 덕대가 노동자를 고용·관리하여 생산활동을 하던 광산 경영방식이다. 조선 후기에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한말에는 국가의 승인하에 사금광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 일본 자본가가 대거 광산주 및 물주로 등장하여 덕대를 지배하였다. 이 때문에 덕대는 독립경영자의 성격을 상실하고 피고용자 또는 하청업자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의 덕대제에는 종래의 물주제 또는 공장제 수공업의 성격은 없어지고 하청제의 성격만 남아 있다. 1981년 조광권 현실화로 덕대의 명칭은 사라졌다.
덕대제 (德大制)
덕대제는 광산의 주인과 계약을 맺고 채광하는 덕대가 노동자를 고용·관리하여 생산활동을 하던 광산 경영방식이다. 조선 후기에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한말에는 국가의 승인하에 사금광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 일본 자본가가 대거 광산주 및 물주로 등장하여 덕대를 지배하였다. 이 때문에 덕대는 독립경영자의 성격을 상실하고 피고용자 또는 하청업자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의 덕대제에는 종래의 물주제 또는 공장제 수공업의 성격은 없어지고 하청제의 성격만 남아 있다. 1981년 조광권 현실화로 덕대의 명칭은 사라졌다.
불교에서 가뭄이 심할 때 비가 내리도록 기원하는 종교의례. 불교의식.
기우도량 (祈雨道場)
불교에서 가뭄이 심할 때 비가 내리도록 기원하는 종교의례. 불교의식.
사천왕을 본존(本尊)으로 개최하는 불교의례. 불교의식·기원법회.
사천왕도량 (四天王道場)
사천왕을 본존(本尊)으로 개최하는 불교의례. 불교의식·기원법회.
정현(鼎賢)은 고려 전기에 활동한 법상종의 승려이다. 출가 후 승과에 급제하였고, 법천사, 현화사, 칠장사 등 고려 전기 주요 법상종 사찰에서 주지를 지냈다. 고려 제11대 임금인 문종 대에 왕사(王師)와 국사(國師)를 역임하였다. 칠장사에서 입적한 후 왕명으로 비석이 조성되었다.
정현 (鼎賢)
정현(鼎賢)은 고려 전기에 활동한 법상종의 승려이다. 출가 후 승과에 급제하였고, 법천사, 현화사, 칠장사 등 고려 전기 주요 법상종 사찰에서 주지를 지냈다. 고려 제11대 임금인 문종 대에 왕사(王師)와 국사(國師)를 역임하였다. 칠장사에서 입적한 후 왕명으로 비석이 조성되었다.
병화(兵禍)를 물리칠 목적으로 행하는 불교의식.
진병의식 (鎭兵儀式)
병화(兵禍)를 물리칠 목적으로 행하는 불교의식.
호국의 목적에서 행한 종교의례. 불교의식·호국법회의식.
진호국가도량 (鎭護國家道場)
호국의 목적에서 행한 종교의례. 불교의식·호국법회의식.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은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 사간판전에 소장된 고려시대 판각의 불교 경판류 및 도판이다. 198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전체 수량은 26종 110판에 달한다. 『금광명경』51판, 『불설보문경』7판 등은 불교경전, 『보살계본지범종요』1판 등은 유명한 승려들의 저술과 시문집, 『화엄경수소연의초』1판, 『역대연표』2판 등은 연표, 『화엄신중』1판, 『보살상』1판 등은 판화를 판각한 것이다. 고려시대 불교신앙의 경향을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음은 물론 판각과 판각기술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陜川 海印寺 高麗木板)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은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 사간판전에 소장된 고려시대 판각의 불교 경판류 및 도판이다. 198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전체 수량은 26종 110판에 달한다. 『금광명경』51판, 『불설보문경』7판 등은 불교경전, 『보살계본지범종요』1판 등은 유명한 승려들의 저술과 시문집, 『화엄경수소연의초』1판, 『역대연표』2판 등은 연표, 『화엄신중』1판, 『보살상』1판 등은 판화를 판각한 것이다. 고려시대 불교신앙의 경향을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음은 물론 판각과 판각기술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방위불은 각 방위마다 불국토가 있고 그곳에 상주하며 네 방위를 대표하는 부처를 형상화한 불상이다. 동서남북 및 모든 곳에 부처가 존재한다는 사방불신앙과 결합하여 통일신라 때 성행했다. 우리나라 사방불은 동쪽 약사유리광, 서쪽 무량수나 아미타로 거의 고정적이다. 그러나 남과 북은 미륵과 석가 혹은 석가와 미륵 등 일정하지 않다. 현재 사방불은 사면석불 6점, 탑에 조각된 사방불 16점 등이 남아 있다.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 문경시 사불산 사방불 등이 대표적이다. 방위불은 당대 불교 동향을 가장 잘 반영한 귀중한 자료이다.
방위불 (方位佛)
방위불은 각 방위마다 불국토가 있고 그곳에 상주하며 네 방위를 대표하는 부처를 형상화한 불상이다. 동서남북 및 모든 곳에 부처가 존재한다는 사방불신앙과 결합하여 통일신라 때 성행했다. 우리나라 사방불은 동쪽 약사유리광, 서쪽 무량수나 아미타로 거의 고정적이다. 그러나 남과 북은 미륵과 석가 혹은 석가와 미륵 등 일정하지 않다. 현재 사방불은 사면석불 6점, 탑에 조각된 사방불 16점 등이 남아 있다.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 문경시 사불산 사방불 등이 대표적이다. 방위불은 당대 불교 동향을 가장 잘 반영한 귀중한 자료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 대적광전에 봉안된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내부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전적.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 비로자나불 좌상 복장전적 (陜川 海印寺 大寂光殿 木造 毘盧遮▽那佛 坐像 腹藏典籍)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 대적광전에 봉안된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내부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전적.
최창학은 일제강점기 금광 개발로 많은 재산을 축적한 광산업자이자 친일 기업인이다. 1920년대, 고향인 평안북도 구성군(현, 구성시)에서 양질의 금광을 발견하여 삼성 금광을 열고 광산업의 기반을 다졌다. 그의 광산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고 평안북도를 중심으로 수십 개의 광구를 보유하였다. 이것을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전반에 걸쳐 미쓰이〔三井〕 광산, 일본 광업 등에 매각하여 큰 부를 일구었다. 조선의 금광왕, 광산왕, 천만장자는 그를 일컫는 수식어였다. 그의 성공 배경에는 친일의 그림자도 드러워져 있다.
최창학 (崔昌學)
최창학은 일제강점기 금광 개발로 많은 재산을 축적한 광산업자이자 친일 기업인이다. 1920년대, 고향인 평안북도 구성군(현, 구성시)에서 양질의 금광을 발견하여 삼성 금광을 열고 광산업의 기반을 다졌다. 그의 광산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고 평안북도를 중심으로 수십 개의 광구를 보유하였다. 이것을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전반에 걸쳐 미쓰이〔三井〕 광산, 일본 광업 등에 매각하여 큰 부를 일구었다. 조선의 금광왕, 광산왕, 천만장자는 그를 일컫는 수식어였다. 그의 성공 배경에는 친일의 그림자도 드러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