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최창학은 일제강점기 금광 개발로 많은 재산을 축적한 광산업자이자 친일 기업인이다. 1920년대, 고향인 평안북도 구성군(현, 구성시)에서 양질의 금광을 발견하여 삼성 금광을 열고 광산업의 기반을 다졌다. 그의 광산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고 평안북도를 중심으로 수십 개의 광구를 보유하였다. 이것을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전반에 걸쳐 미쓰이〔三井〕 광산, 일본 광업 등에 매각하여 큰 부를 일구었다. 조선의 금광왕, 광산왕, 천만장자는 그를 일컫는 수식어였다. 그의 성공 배경에는 친일의 그림자도 드러워져 있다.
정의
일제강점기, 금광 개발로 많은 재산을 축적한 광산업자이자 친일 기업인.
인적사항
일제시기 주요 활동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조선인인 최창학이 이러한 성공을 거둔 배경에는 스스로의 노력 외에 친일의 그림자도 짙게 드러워 있다. 1930년대 중반까지만 하여도 일제 관공서나 공공사업에 대한 기부 수준이었지만, 전시 체제로 접어들면서 친일기업가의 모습은 보다 뚜렷해졌다. 중일 전쟁이 발발한 1937년 평안북도 관선 도의원,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과 이사, 1939년 경성부 육군병 지원자 후원회 이사,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에는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이사 등이 그가 맡은 직함이었다. 그 외에도 군용기 등 군수물자 제작비 헌납, 시국 운동비, 의연금, 방호비 등 각종 명목의 헌납이 이어졌다.
해방 후 활동
참고문헌
단행본
-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2009)
논문
- 박기주, 「조선에서의 금광업 발전과 조선인광업가」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박사논문, 1998)
인터넷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s://db.history.go.kr) 한국근현대회사조합자료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https://newslibrary.naver.com)
- 대한민국 신문아카이브(https://nl.go.kr/newspape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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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예전에, 한문을 사사로이 가르치던 곳.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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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관청에서 어떤 광물의 채굴이나 시굴을 허가한 구역.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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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1937년 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에서 비롯되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전쟁. 일본이 중국 본토를 정복하려고 일으켰는데 1945년에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끝났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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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국가 기관에서 가려 뽑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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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 제이 차 세계 대전의 일부로서,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되어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났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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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우리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짐. 1948년 남과 북에 각각 단독 정부가 수립되면서 나뉘게 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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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1948년 9월에 공포한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집행하기 위하여 그해 10월에 제헌 국회가 설치한 특별 위원회. 정부의 비협조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1949년 8월 폐지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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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1907년에 이승훈이 평안북도 정주에 세운 학교.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하였으며, 광복 후 서울의 오산 중ㆍ고등학교가 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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