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동광산은 평안북도 동창군 대유로동자구[구 평안북도 창성군 청산면]에 있는 금광산이다. 대유동광산은 운산금광에 이은 최대 금광이다. 1952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창성군의 동창면과 청산면이 동창군으로 바뀌었다. 로동자구는 노동자 비율이 높은 지역에 붙는 읍면의 행정 단위에 해당한다. 북한의 주요 금광은 대유동광산을 비롯하여 수안광산 · 홀동광산 · 운산광산 · 성흥광산 · 상농광산 · 옹진광산 · 금강광산 등을 꼽는다.
1901년 프랑스인 살타렐[P.M. Saltarel, 薩泰來]이 대유동금광 특허를 얻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사금을 채취할 정도로 창성군은 운산군과 더불어 평안북도의 주요 산금지로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1914년 대유동금광 지역에서 천주교 성당을 설립한 ‘멩[J. Meng, 明]’ 신부가 주교에게 보낸 서한에 현지 사정이 나타난다. “이 동리는 농부가 없고 모두 광부들인데 약 500명 정도가 일하고 있다. 1,000명 정도는 일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모두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이들은 먹을 것이 충분치 않아. 프랑스 광산에 취직시켜 줄 것을 부탁한다. 이 금광 회사의 대리인은 ‘반워스(Bannwarth)’인데 사제관과 성당 건립에 매우 적극적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유동광산은 미국인이 운영하는 운산금광 다음으로 규모가 큰 광산이었다. 19131915년에는 영국영사관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하던 방유영[18801932]이 대유동광산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한 점도 특징적이다.
대유동광산은 1901년부터 프랑스인이 운영하였으나, 특허 광산을 총독부에 이속시키는 비상조치에 의해 1937년 일본광업에 매각하였다. 당시 3,800명의 광부가 3교대로 채굴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한편, 총독관방 외사과에서 1929년 생산한 ‘대유동광산의 미국인 사원에 관한 조선인의 협박장에 관한 건’에는 대유동광산의 열악한 노동 실정이 등장한다. 조선인은 “대유동 회사의 ‘오라노르’라는 사람이 조선에서 일하기 위해 왔으나, 그는 한국인들을 개처럼 대하며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대유동의 모든 사람들은 이 사람을 암살하고 그의 집을 불태우고, 또한 회사의 기계 창고와 작업장을 불태워 회사를 파괴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선에서 이 사람을 죽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 편지를 잘 번역해 주십시오.”라면서 협박문을 공개한 것이다. 대유동광산의 미국인 사원이 노동자를 함부로 취급하는 데 대한 분개의 협박장이 영어, 일어, 한국어 등 3개 국어로 첨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