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청광산은 함경남도 북청군 이곡면 상리에 있는 철광산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중요 광산으로 지정한 철광산이다. 1944년 고이소 구니아키 총독이 직접 방문하여 철 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할 정도로 주목받는 광산이었다. 북청광산의 철광석 수송을 위해 북청선 산업철도를 개설하였으며, 1944년의 연장에 이어 1960년에 51.7㎞까지 확장하였다. 2013년 기준 북한의 철 매장량은 약 43억 톤으로 추정되며, 북청광산을 포함한 주요 철광산에서 연간 500만 톤의 철을 생산해 7개의 제철소 및 제강소로 보내고 있다.
철을 함유한 광석인 철광석은 자철석(磁鐵石), 적철석(赤鐵石), 갈철석(褐鐵石) 등이 있다. 북청광산 일대의 철광석은 암갈색이나 흑적색을 띠는 적철석과 검은색과 금속광택을 띤 자철석이 많다. 적철석[Hematite]은 철의 산화물[Fe2o3]로 이루어진 광물로, 붉은색을 띠는 경우가 많아 적철석이라 부른다. 적철석의 결정 구조는 삼방정계에 속하며, 결정의 형태는 불규칙한 덩어리 형태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자철석은 광물 가운데 자성(磁性)이 가장 강하다. 1944년에 신규 개발에 나선 철산인 북청광산은 자철광으로 이루어졌으며, 매장량 수백만 톤, 품위 50%의 고품질로 평가를 받았다. 신규 광산 개발을 위해 철도와 송전선을 설치하였다.
북청광산은 1944년 『조선총독부 관보』 제5151호에 중요 광산으로 공개되었다. 1944년 6월에 조선 총독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 1880~1950)가 직접 북청광산을 찾아 북청광산 표고 1,000m 산꼭대기에서는 탈피 작업이 진행되고, 산허리에서는 최고 50m마다 갱도가 이루어진다는 보고를 소장에게 받았다. 총독은 간부와 광부들을 모아놓고 “지금이 전시 상태인바, 철은 전력(戰力) 증강에 가장 중요한 것이며, 새로 착수한 북청광산은 장래가 유망한 광산이므로 생산을 많이 해야 한다”라고 독려하였다. 고이소 총독은 해방 이후 일본으로 가서 도조 히데키 후임으로 제41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였다.
북청광산이 있는 이곡면(泥谷面)은 북청군의 가장 북쪽인 산악 지역에 위치하며, 후치령과 통팔령을 넘어가는 풍산군으로 길이 열려 있다. 북청선 철도는 북청광산을 위한 산업 철도 역할을 하는데, 북청광산이 있는 이곡면 상리가 시발이자 종착지이다. 관내에 삼기역, 송중역, 상일역, 상리역이 있는데, 상리에 북청선 철도를 부설한 이유가 북청광산이 있기 때문이다. 신북청역에서 북청역까지의 9.4㎞ 구간은 1929년 부설되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4년 북청군 내륙의 북청광산에서 나오는 철광석의 수송을 위해 북청역에서 상리역까지 가는 연장선 38㎞를 착공하였다. 1960년 철도 노선을 51.7㎞로 연장하였으며, 역 간 평균 거리는 4.7㎞에 달한다.
2013년 자료에 의하면 북한의 철 매장량은 Fe 63.5% 기준으로 약 43억 톤에 이른다. 주요 철광산은 북청광산을 비롯하여 무산광산 · 리원광산 · 재령광산 · 은율광산 · 신원광산이 대표적이며 여기서 생산된 연간 500만 톤의 철은 7개 제철소 및 제강소, 즉 청진시 청진제강소, 김책제철연합기업소, 김책시 성진제강연합기업소, 평안북도 의주시 덕현제철소, 남포 지역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황해북도 송림시 황해제철기업소로 보내진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조선중요광물증산령」 제1조에서 규정한 특수 광물은 금은광을 비롯해서 운모, 형석, 마그네사이트광 등 총 26개 광종이었다. 그중에서 북청광산은 운모 광산으로도 유명하였다. 조선산 금운모는 함경남북도, 평안북도 지역, 백운모는 평안남도와 전라남도 지역이 주요 부존 지대였고, 1938년 당시 운모 광구는 52개 광구에 달하였다. 조선총독부가 1939년 일본 자본과 공동으로 조선운모개발판매를 설립해서 운모 광산 개발에 박차를 가할 때 핵심 광산이 북청광산과 포평광산[함경남도]을 비롯하여 장백광산 · 임동광산 · 명천광산[함경북도], 안악광산[황해도], 제일영미광산[평안북도, 함경북도]이었다.
한편, 장편소설 『철쇄를 마스라』의 작가이자 북청군 출신인 고병삼[1931~1987]은 12세인 1943년 북청광산에 들어가 소년공으로 일한 적이 있다. 고병삼은 북청광산의 추천을 받아 북청군인민위원회 사무원이 된 후에 독학으로 문학 수업을 하며 작가로 데뷔하였다. 리군도서관장과 차호수산산업소 신문 주필까지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