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금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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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산성에 있는 조선후기 금위영의 이건 내력을 기록한 기적비.
북한산성 금위영 이건기비 (北漢山城 禁衛營 移建記碑)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산성에 있는 조선후기 금위영의 이건 내력을 기록한 기적비.
조선 후기 군영문(軍營門) 중 금위영(禁衛營)의 종2품 무관직.
금위대장 (禁衛大將)
조선 후기 군영문(軍營門) 중 금위영(禁衛營)의 종2품 무관직.
조선시대 승정원의 병전(兵典) 담당관서.
병방 (兵房)
조선시대 승정원의 병전(兵典) 담당관서.
조선 후기 금위영과 어영청에 편성되어 있던 특수 기병대.
기사 (騎士)
조선 후기 금위영과 어영청에 편성되어 있던 특수 기병대.
조선 후기 금위영과 어영청 소속의 정3품의 관직.
기사장 (騎士將)
조선 후기 금위영과 어영청 소속의 정3품의 관직.
기패관(旗牌官)은 조선 후기, 중앙과 지방의 군문에 소속된 장교직 가운데 하나이다. 임진왜란 때 창설된 훈련도감에 처음 설치되었다. 그 뒤 여러 군문에 세워졌는데 일부 비중이 큰 군문에 설치되었다. 외방의 경우 수영까지 배정되었다. 항오(行伍)도 선발되어 임기를 마치면 6품을 제수 받게 되자 신분 이동의 통로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기패관 (旗牌官)
기패관(旗牌官)은 조선 후기, 중앙과 지방의 군문에 소속된 장교직 가운데 하나이다. 임진왜란 때 창설된 훈련도감에 처음 설치되었다. 그 뒤 여러 군문에 세워졌는데 일부 비중이 큰 군문에 설치되었다. 외방의 경우 수영까지 배정되었다. 항오(行伍)도 선발되어 임기를 마치면 6품을 제수 받게 되자 신분 이동의 통로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 금위영과 어영청에 편성되어 있던 특수병종.
겸별파진 (兼別破陣)
조선 후기 금위영과 어영청에 편성되어 있던 특수병종.
조선 후기 어영청·금위영의 종4품 관직.
겸파총 (兼把摠)
조선 후기 어영청·금위영의 종4품 관직.
무반은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지배계층인 양반 가운데 무관 반열이다. 전문 군사직은 삼국시대에도 있었지만, 관직제도상 문무반 중 하나라는 의미를 갖는 무반제도는 관료제가 정착되기 시작한 고려초에 도입돼 조선말까지 이어졌다. 고려와 조선의 관료체계는 문반 중심으로 운영되어 무반은 상대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았다. 고려 때는 노골적인 천대가 무신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고려 때는 무예가 출중하거나 공로를 세운 군인·향리·일품군의 장교 등에서 선발하거나 문·무 양반의 자제가 문음으로 출사했고, 조선 때는 무과를 설치해 무과급제자로 충당했다.
무반 (武班)
무반은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지배계층인 양반 가운데 무관 반열이다. 전문 군사직은 삼국시대에도 있었지만, 관직제도상 문무반 중 하나라는 의미를 갖는 무반제도는 관료제가 정착되기 시작한 고려초에 도입돼 조선말까지 이어졌다. 고려와 조선의 관료체계는 문반 중심으로 운영되어 무반은 상대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았다. 고려 때는 노골적인 천대가 무신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고려 때는 무예가 출중하거나 공로를 세운 군인·향리·일품군의 장교 등에서 선발하거나 문·무 양반의 자제가 문음으로 출사했고, 조선 때는 무과를 설치해 무과급제자로 충당했다.
조선 후기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의 3군영에 두었던 관직.
권무군관 (勸武軍官)
조선 후기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의 3군영에 두었던 관직.
1881년(고종 18) 11월에 설치된 군영(軍營).
장어영 (壯禦營)
1881년(고종 18) 11월에 설치된 군영(軍營).
조선 후기 중앙군영인 정초청에 속하여 있던 군대.
정초군 (精抄軍)
조선 후기 중앙군영인 정초청에 속하여 있던 군대.
파총은 조선 후기, 대부분 군영에 있었던 중간 지휘관으로, 종4품 무관직이다. 편제된 사라는 단위부대의 지휘관으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속오법에 의거하여 군사 조직을 개편하면서 설치되었다. 사는 최상인 영 바로 아래에 위치하였다. 실제로는 변용되기도 하면서 일부 군영에서는 소속 고을의 수령이 겸직하였다.
파총 (把摠)
파총은 조선 후기, 대부분 군영에 있었던 중간 지휘관으로, 종4품 무관직이다. 편제된 사라는 단위부대의 지휘관으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속오법에 의거하여 군사 조직을 개편하면서 설치되었다. 사는 최상인 영 바로 아래에 위치하였다. 실제로는 변용되기도 하면서 일부 군영에서는 소속 고을의 수령이 겸직하였다.
조선시대 병사집단인 초(哨)를 통솔하던 종9품 관직.
초관 (哨官)
조선시대 병사집단인 초(哨)를 통솔하던 종9품 관직.
내삼청은 조선 후기 내금위·겸사복·우림위를 합쳐 단일화하여 국왕 호위와 궁궐 수비를 담당하던 군영이다. 북벌을 추진한 효종이 국왕의 친위병인 금군을 강화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설치 당시 629명이었는데 1천 명까지 정원이 증액되었다. 이후 인원 충원이 여의치 않아서 700명으로 재조정되었다. 1682년에 설치된 금위영에 통합되어 독립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1728년 무신란 이후 금군을 정비하여 내금위, 겸사복, 우림위로 나누어 편성하였다. 1737년 금군의 처우 개선을 위한 금군절목을 제정하였다. 이 절목을 근거로 1754년 용호영으로 개편되었다.
내삼청 (內三廳)
내삼청은 조선 후기 내금위·겸사복·우림위를 합쳐 단일화하여 국왕 호위와 궁궐 수비를 담당하던 군영이다. 북벌을 추진한 효종이 국왕의 친위병인 금군을 강화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설치 당시 629명이었는데 1천 명까지 정원이 증액되었다. 이후 인원 충원이 여의치 않아서 700명으로 재조정되었다. 1682년에 설치된 금위영에 통합되어 독립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1728년 무신란 이후 금군을 정비하여 내금위, 겸사복, 우림위로 나누어 편성하였다. 1737년 금군의 처우 개선을 위한 금군절목을 제정하였다. 이 절목을 근거로 1754년 용호영으로 개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