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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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군읍지』는 1899년 함경북도 길주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38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내제는 ‘길주목’이나, 읍지 편찬 당시 이미 ‘길주군’으로 재편된 상태였다. 이미 별도의 군으로 독립한 ‘성진’을 상세히 기록한 점이 눈에 띈다. 당시 길주군의 상황과 대한제국기 지방행정의 움직임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길주목읍지 (吉州牧邑誌)
『길주군읍지』는 1899년 함경북도 길주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38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내제는 ‘길주목’이나, 읍지 편찬 당시 이미 ‘길주군’으로 재편된 상태였다. 이미 별도의 군으로 독립한 ‘성진’을 상세히 기록한 점이 눈에 띈다. 당시 길주군의 상황과 대한제국기 지방행정의 움직임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백암군은 양강도 북동부에 있는 군이다. 면적 2,293.7㎢, 인구 7만 3,400여 명(1996년 추정)이며, 1읍, 19개 노동자구, 4리로 구성되어 있다. 1952년 길주군 일부와 무산군 일부가 통합되어 삼사군이 신설되었다. 1954년 백암군으로 개칭되어 양강도에 속하게 되었다. 백두용암대지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고원지대의 형태를 띠고 있다. 동쪽 경계에는 함경산맥이, 서쪽 경계에는 백두산맥이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다. 산림은 군 넓이의 90%를 차지하며 산림자원이 풍부하다. 주요 산업은 임업으로 전국 최고의 임업기지이다.
백암군 (白岩郡)
백암군은 양강도 북동부에 있는 군이다. 면적 2,293.7㎢, 인구 7만 3,400여 명(1996년 추정)이며, 1읍, 19개 노동자구, 4리로 구성되어 있다. 1952년 길주군 일부와 무산군 일부가 통합되어 삼사군이 신설되었다. 1954년 백암군으로 개칭되어 양강도에 속하게 되었다. 백두용암대지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고원지대의 형태를 띠고 있다. 동쪽 경계에는 함경산맥이, 서쪽 경계에는 백두산맥이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다. 산림은 군 넓이의 90%를 차지하며 산림자원이 풍부하다. 주요 산업은 임업으로 전국 최고의 임업기지이다.
경상북도 영주와 예천 지역의 옛 지명.
기목진 (基木鎭)
경상북도 영주와 예천 지역의 옛 지명.
태극교(太極敎)의 한 분파.
모성원 (慕聖院)
태극교(太極敎)의 한 분파.
함경북도 길주 지역의 옛 지명.
길성 (吉城)
함경북도 길주 지역의 옛 지명.
양강도(兩江道) 백암군(白岩郡)과 함경남도(咸鏡南道) 단천시(端川市)의 경계에 있는 산.
두류산 (頭流山)
양강도(兩江道) 백암군(白岩郡)과 함경남도(咸鏡南道) 단천시(端川市)의 경계에 있는 산.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었던 고려 때의 진.
고선화진 (古宣化鎭)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었던 고려 때의 진.
『성진군읍지』는 1899년 함경북도 성진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5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당시 성진군은 길주에서 분리되어 독립한 신설 행정구역이었는데, 이와 관련한 사실이 읍지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본래 길주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길주목읍지』에 성진군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성진군읍지』는 당시 성진군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자, 대한제국기 지방행정의 움직임을 살펴보는 데 도움을 주는 문헌이다.
성진군읍지 (城津郡邑誌)
『성진군읍지』는 1899년 함경북도 성진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5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당시 성진군은 길주에서 분리되어 독립한 신설 행정구역이었는데, 이와 관련한 사실이 읍지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본래 길주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길주목읍지』에 성진군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성진군읍지』는 당시 성진군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자, 대한제국기 지방행정의 움직임을 살펴보는 데 도움을 주는 문헌이다.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옛 지명.
예안 (禮安)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옛 지명.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옛 지명.
선곡 (善谷)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옛 지명.
함경북도 길주 지역의 옛 지명.
웅주 (雄州)
함경북도 길주 지역의 옛 지명.
조선 후기에, 홍문관교리, 길주목사, 동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최유해 (崔有海)
조선 후기에, 홍문관교리, 길주목사, 동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전기 영북진첨절제사, 길주목사, 중추원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하한 (河漢)
조선전기 영북진첨절제사, 길주목사, 중추원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여진정벌은 고려의 동북면에 거주하던 동여진을 토벌한 전쟁이다. 여진족은 고려의 동북면에서 농경이나 어업에 종사하였는데, 1104년 여진족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완안부 세력이 남하하여 정주를 침범하였다. 임간과 윤관 등이 군사를 이끌고 여진을 정벌하였다가 실패하고 화친을 맺고 돌아왔다. 이후 고려는 별무반을 편성하여 군사를 양성하였고, 1107년에 17만 대군을 동원하여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축조하였다.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북진정책의 결과로 북방 영토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완안부의 약탈과 반환 요청이 계속되자 9성을 여진에게 돌려주었다.
여진정벌 (女眞征伐)
여진정벌은 고려의 동북면에 거주하던 동여진을 토벌한 전쟁이다. 여진족은 고려의 동북면에서 농경이나 어업에 종사하였는데, 1104년 여진족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완안부 세력이 남하하여 정주를 침범하였다. 임간과 윤관 등이 군사를 이끌고 여진을 정벌하였다가 실패하고 화친을 맺고 돌아왔다. 이후 고려는 별무반을 편성하여 군사를 양성하였고, 1107년에 17만 대군을 동원하여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축조하였다.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북진정책의 결과로 북방 영토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완안부의 약탈과 반환 요청이 계속되자 9성을 여진에게 돌려주었다.
일본 사가현[佐賀縣] 사가시[佐賀市] 도진마치(唐人町)에 있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조선인 이종환을 제신으로 모신 신사(神社).
당인신사 (唐人神社)
일본 사가현[佐賀縣] 사가시[佐賀市] 도진마치(唐人町)에 있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조선인 이종환을 제신으로 모신 신사(神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