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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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신은 조선 전기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15년(중종 10)에 출생하여 1590년(선조 23)에 사망했다. 자는 과회, 호는 소재이다. 을사사화 때 순천으로 유배되었다가,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진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이언적에게 배우고, 이황, 김인후 등과도 학문을 논하였다. 경일(敬一) 공부를 강조하고, 도심미발(道心未發)·인심이발설(人心已發說)을 주장했다. 충주의 팔봉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소재집』이 있다.
노수신 (盧守愼)
노수신은 조선 전기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15년(중종 10)에 출생하여 1590년(선조 23)에 사망했다. 자는 과회, 호는 소재이다. 을사사화 때 순천으로 유배되었다가,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진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이언적에게 배우고, 이황, 김인후 등과도 학문을 논하였다. 경일(敬一) 공부를 강조하고, 도심미발(道心未發)·인심이발설(人心已發說)을 주장했다. 충주의 팔봉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소재집』이 있다.
기대승은 조선 전기 성균관 대사성, 대사간,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자는 명언, 호는 고봉, 존재, 시호는 문헌이다. 1527년에 출생하여 1572년 사망했다. 1558년 문과에 응시하기 위하여 서울로 가던 중 김인후, 이항 등과 만나 태극설을 논하였다. 1558년 「천명도설」을 얻어 보고 서울에 와 있던 이황을 찾아가 사단칠정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 뒤 12년에 걸쳐 이황과 서신을 교환하였다. 1559년에서 1566년까지 8년간 이루어진 사칠논변(四七論辨)은 조선유학사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기대승은 광주의 월봉서원에 제향되었다.
기대승 (奇大升)
기대승은 조선 전기 성균관 대사성, 대사간,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자는 명언, 호는 고봉, 존재, 시호는 문헌이다. 1527년에 출생하여 1572년 사망했다. 1558년 문과에 응시하기 위하여 서울로 가던 중 김인후, 이항 등과 만나 태극설을 논하였다. 1558년 「천명도설」을 얻어 보고 서울에 와 있던 이황을 찾아가 사단칠정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 뒤 12년에 걸쳐 이황과 서신을 교환하였다. 1559년에서 1566년까지 8년간 이루어진 사칠논변(四七論辨)은 조선유학사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기대승은 광주의 월봉서원에 제향되었다.
조선 전기 기묘명현의 송별시를 모은 서첩.
기묘제현수필 (己卯諸賢手筆)
조선 전기 기묘명현의 송별시를 모은 서첩.
「김하서전」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조선 전기의 도학자인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를 주인공으로 하는 야담계 고전소설로, 『잡기유초(雜記類抄)』에 실려 있다. 창작 시기는 17세기 중·후반을 상회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근엄하기만 한 도학자의 모습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미색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결국 이를 잘 극복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작품에 나타난다. 실제 김인후의 행적과는 거리가 있지만, 김인후에 대한 민간의 상상력과 친밀감·존숭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김하서전 (金河西傳)
「김하서전」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조선 전기의 도학자인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를 주인공으로 하는 야담계 고전소설로, 『잡기유초(雜記類抄)』에 실려 있다. 창작 시기는 17세기 중·후반을 상회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근엄하기만 한 도학자의 모습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미색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결국 이를 잘 극복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작품에 나타난다. 실제 김인후의 행적과는 거리가 있지만, 김인후에 대한 민간의 상상력과 친밀감·존숭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조선 중기에, 벼슬에 오르지 않고 학문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호남의 은덕군자로 불린 학자.
기효간 (奇孝諫)
조선 중기에, 벼슬에 오르지 않고 학문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호남의 은덕군자로 불린 학자.
조선 중기에, 장악원주부, 예조좌랑, 군자감정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의병.
김경수 (金景壽)
조선 중기에, 장악원주부, 예조좌랑, 군자감정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의병.
조선 전기에, 인심도심설을 토론하며 도학에 열중한 문신.
남언기 (南彦紀)
조선 전기에, 인심도심설을 토론하며 도학에 열중한 문신.
조선시대 제원도찰방, 동복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김성원 (金成遠)
조선시대 제원도찰방, 동복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조선전기 효행으로 소격서 참봉에 제수된 문신.
이지남 (李至男)
조선전기 효행으로 소격서 참봉에 제수된 문신.
조선 후기에, 공조참판, 도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이직보 (李直輔)
조선 후기에, 공조참판, 도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에 있는 조선전기 김인후(金麟厚)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
장성 필암서원 (長城 筆巖書院)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에 있는 조선전기 김인후(金麟厚)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
조선전기 장흥부사, 홍문관교리, 이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조희문 (趙希文)
조선전기 장흥부사, 홍문관교리, 이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정철은 조선시대 우의정, 좌의정, 전라도체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1536년(중종 31)에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사망했다. 사화·당쟁이 이어지는 어지러운 시기에 파직·사직·유배를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문재가 뛰어나 관직 진출 전에 「성산별곡」을 지었고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을 지었다. 정여립 사건 때는 우의정 겸 서인의 영수로서 동인들을 가혹하게 숙청하여 원성을 샀다. 왕세자 책봉문제로 선조의 노여움을 사 유배되었다가 임진왜란을 맞아 다시 복귀했으나 동인의 모함으로 사직하고 강화에 우거하다가 사망했다.
정철 (鄭澈)
정철은 조선시대 우의정, 좌의정, 전라도체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1536년(중종 31)에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사망했다. 사화·당쟁이 이어지는 어지러운 시기에 파직·사직·유배를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문재가 뛰어나 관직 진출 전에 「성산별곡」을 지었고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을 지었다. 정여립 사건 때는 우의정 겸 서인의 영수로서 동인들을 가혹하게 숙청하여 원성을 샀다. 왕세자 책봉문제로 선조의 노여움을 사 유배되었다가 임진왜란을 맞아 다시 복귀했으나 동인의 모함으로 사직하고 강화에 우거하다가 사망했다.
전라남도 장성군 소재 필암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하서 김인후(金麟厚)의 문집 목판이다. 1999년 7월 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568년(선조 1)에 처음 판각된 후 1686년(숙종 12)에 재각하였으며, 1797(정조 21)~1802년(순조 2)간에 삼각 등 3회에 걸쳐 간행되었다. 초각본 1판, 재각본 258판, 삼각본 391판 등 모두 650판이다. 200여 년간의 기간 동안 3회에 걸친 판각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어 특이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판각연대가 올라가며 결판이 없어 가치가 크다.
장성 필암서원 하서선생문집 목판 (長城 筆岩書院 河西先生文集 木板)
전라남도 장성군 소재 필암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하서 김인후(金麟厚)의 문집 목판이다. 1999년 7월 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568년(선조 1)에 처음 판각된 후 1686년(숙종 12)에 재각하였으며, 1797(정조 21)~1802년(순조 2)간에 삼각 등 3회에 걸쳐 간행되었다. 초각본 1판, 재각본 258판, 삼각본 391판 등 모두 650판이다. 200여 년간의 기간 동안 3회에 걸친 판각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어 특이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판각연대가 올라가며 결판이 없어 가치가 크다.
전라남도 장성군 소재 필암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하서 김인후의 유묵 목판.
장성 필암서원 하서유묵 목판 일괄 (長城 筆岩書院 河西遺墨 木板 一括)
전라남도 장성군 소재 필암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하서 김인후의 유묵 목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