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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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임금의 행차에 따른 노부의식(鹵簿儀式)에서 사용된 북.
강고 (掆鼓)
고려시대 임금의 행차에 따른 노부의식(鹵簿儀式)에서 사용된 북.
고려·조선시대 왕이 참석하는 조회·연회 및 왕의 행차시에 동원되는 노부(鹵簿)에 편성된 의장기구.
가서봉 (哥舒棒)
고려·조선시대 왕이 참석하는 조회·연회 및 왕의 행차시에 동원되는 노부(鹵簿)에 편성된 의장기구.
고려시대의 숙위군(宿衛軍).
공학 (控鶴)
고려시대의 숙위군(宿衛軍).
도가(導駕)는 조선시대에 국왕이 행차할 때 어가 행렬의 가장 선두에 서는 시위 인원이다. 어가 행렬의 수행 인원 및 의장물의 전체 구성을 노부라고 하며, 행사의 성격 및 장소에 따라 등급이 나뉘었다. 가장 높은 등급인 대가 노부에서 도가는 당부주부(當部主簿), 한성부 판윤, 예조 판서, 호조 판서, 대사헌, 병조 판서, 의금부 당하관 2인으로 구성되었다.
도가 (導駕)
도가(導駕)는 조선시대에 국왕이 행차할 때 어가 행렬의 가장 선두에 서는 시위 인원이다. 어가 행렬의 수행 인원 및 의장물의 전체 구성을 노부라고 하며, 행사의 성격 및 장소에 따라 등급이 나뉘었다. 가장 높은 등급인 대가 노부에서 도가는 당부주부(當部主簿), 한성부 판윤, 예조 판서, 호조 판서, 대사헌, 병조 판서, 의금부 당하관 2인으로 구성되었다.
고려시대 타악기의 하나.
금정 (金鉦)
고려시대 타악기의 하나.
삼국시대 신라의 파진찬 · 상대등 등을 역임한 장수이다. 할아버지는 잉숙(仍宿), 아버지는 이찬(伊湌) 물력(勿力)이다. 545년 신라 왕조의 역사서인 『국사(國史)』를 편찬하였고, 551년 고구려를 쳐서 죽령(竹嶺) 이북의 10군(郡)을 빼앗아 신라 영토로 만들었으며, 진지왕(眞智王) 즉위에 공헌하는 등 신라 중고기의 중요한 대신으로서 활약했다.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 즉 「마운령비(摩雲嶺碑)」와 「창녕비(昌寧碑)」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진흥왕 때 가장 영향력 있는 장군으로 정치적 비중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거칠부 (居柒夫)
삼국시대 신라의 파진찬 · 상대등 등을 역임한 장수이다. 할아버지는 잉숙(仍宿), 아버지는 이찬(伊湌) 물력(勿力)이다. 545년 신라 왕조의 역사서인 『국사(國史)』를 편찬하였고, 551년 고구려를 쳐서 죽령(竹嶺) 이북의 10군(郡)을 빼앗아 신라 영토로 만들었으며, 진지왕(眞智王) 즉위에 공헌하는 등 신라 중고기의 중요한 대신으로서 활약했다.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 즉 「마운령비(摩雲嶺碑)」와 「창녕비(昌寧碑)」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진흥왕 때 가장 영향력 있는 장군으로 정치적 비중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고려·조선시대의 평상적인 왕실 의장.
길의장 (吉儀仗)
고려·조선시대의 평상적인 왕실 의장.
『동사일기』는 조선후기 문신 임수간이 통신부사로 일본에 다녀온 후 1711년에 작성한 견문록이다. 일본 막부의 장군 도쿠가와 이에노부의 습직을 축하하기 위해 파견된 통신사행 기록으로 2권으로 된 필사본이다. 1권에는 「전후통신좌목」과 「신묘통신좌목」, 「동사일기」가 수록되었다. 「동사일기」는 10개월간의 일정을 기록하였는데 소제목을 붙여 일목요연하게 기록하였다. 2권에는 「강관필담」과 국서 및 서계, 하정물목 등을 비롯하여 「문견록」·「해외기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강관필담」은 중국의 역사, 서양의 문물, 양국의 정세 등에 관해 아라이 하쿠세키와 나눈 필담이다.
동사일기 (東槎日記)
『동사일기』는 조선후기 문신 임수간이 통신부사로 일본에 다녀온 후 1711년에 작성한 견문록이다. 일본 막부의 장군 도쿠가와 이에노부의 습직을 축하하기 위해 파견된 통신사행 기록으로 2권으로 된 필사본이다. 1권에는 「전후통신좌목」과 「신묘통신좌목」, 「동사일기」가 수록되었다. 「동사일기」는 10개월간의 일정을 기록하였는데 소제목을 붙여 일목요연하게 기록하였다. 2권에는 「강관필담」과 국서 및 서계, 하정물목 등을 비롯하여 「문견록」·「해외기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강관필담」은 중국의 역사, 서양의 문물, 양국의 정세 등에 관해 아라이 하쿠세키와 나눈 필담이다.
고려시대에 의장(儀仗)에 관한 일과 예기(禮器) 및 무기를 관장하던 관청.
사위시 (司衛寺)
고려시대에 의장(儀仗)에 관한 일과 예기(禮器) 및 무기를 관장하던 관청.
전부고취는 조선시대에 임금 또는 왕비의 공식적인 행차 때 어연(御輦) 앞에서 이동하며 연주한 악대이다. 행차의 규모에 따라 후부고취와 함께 쓰이거나 단독으로 쓰였고,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박‧피리‧대금‧당적‧퉁소‧당비파‧장고‧해금‧방향‧교방고 등, 이동하면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로 편성되었는데, 이중 해금은 조선 전기에는 전부고취에 편성되지 않다가 후기에 추가되었다.
전부고취 (前部鼓吹)
전부고취는 조선시대에 임금 또는 왕비의 공식적인 행차 때 어연(御輦) 앞에서 이동하며 연주한 악대이다. 행차의 규모에 따라 후부고취와 함께 쓰이거나 단독으로 쓰였고,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박‧피리‧대금‧당적‧퉁소‧당비파‧장고‧해금‧방향‧교방고 등, 이동하면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로 편성되었는데, 이중 해금은 조선 전기에는 전부고취에 편성되지 않다가 후기에 추가되었다.
세종은 삼국시대 금관국의 후예로서 신라 중고기에 활약한 장군, 관료이다. 법흥왕 19년(532) 아버지 금관국 구해왕을 따라 신라에 항복하였다. 신라에서는 장군으로서 한강 유역 획득과 신라 서쪽 국경을 지키는 공적을 세웠으며, 이찬으로 승차하여 상대등과 양궁 사신을 역임하였다.
세종 (世宗)
세종은 삼국시대 금관국의 후예로서 신라 중고기에 활약한 장군, 관료이다. 법흥왕 19년(532) 아버지 금관국 구해왕을 따라 신라에 항복하였다. 신라에서는 장군으로서 한강 유역 획득과 신라 서쪽 국경을 지키는 공적을 세웠으며, 이찬으로 승차하여 상대등과 양궁 사신을 역임하였다.
후부고취는 조선과 대한제국기 왕의 가마 뒤에서 고취악을 연주한 궁중 의식용 악대이다. 고취는 원래 중국 한나라에서 각·가를 연주하던 음악에서 비롯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고와 각을 뜻해 제사와 군악에 사용되었다. 궁중 음악으로는 고려시대부터 수용되었는데, 후부고취는 조선에서 처음 등장해 왕의 행차 과정에서 연주되었다. 대체로 당악기·향악기 기반의 관악기·현악기·타악기로 구성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노래가 사라지고 공수가 포함되었다. 성내 거둥에 쓰였으며 연주한 음악은 환궁악, 여민락만, 여민락영 등이었다.
후부고취 (後部鼓吹)
후부고취는 조선과 대한제국기 왕의 가마 뒤에서 고취악을 연주한 궁중 의식용 악대이다. 고취는 원래 중국 한나라에서 각·가를 연주하던 음악에서 비롯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고와 각을 뜻해 제사와 군악에 사용되었다. 궁중 음악으로는 고려시대부터 수용되었는데, 후부고취는 조선에서 처음 등장해 왕의 행차 과정에서 연주되었다. 대체로 당악기·향악기 기반의 관악기·현악기·타악기로 구성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노래가 사라지고 공수가 포함되었다. 성내 거둥에 쓰였으며 연주한 음악은 환궁악, 여민락만, 여민락영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