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단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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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조우인(曺友仁)이 지은 가사.
관동속별곡 (關東續別曲)
조선 후기에 조우인(曺友仁)이 지은 가사.
개항기 때, 김도현, 신돌석 등과 모병하여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박석용 (朴石用)
개항기 때, 김도현, 신돌석 등과 모병하여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조선 말기에서 대한제국기 충청북도 지방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대하여 의병을 계획하다가 체포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남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다시 체포되었고,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병합이 임박하자 단식하여 23일 만에 사망하였다.
박세화 (朴世和)
조선 말기에서 대한제국기 충청북도 지방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대하여 의병을 계획하다가 체포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남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다시 체포되었고,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병합이 임박하자 단식하여 23일 만에 사망하였다.
김기서는 조선 후기 「단발령도」를 그린 화가, 문신이다. 1766년에 태어나 1822년에 사망했다. 명필 배와 김상숙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큰아버지 김상복에게 입적됐다. 당쟁으로 낙향하여 고향인 충청도 홍성에서 주로 생활했다. 서화에 관심이 많았고, 문집 『화초만고』를 남겼다.
김기서 (金箕書)
김기서는 조선 후기 「단발령도」를 그린 화가, 문신이다. 1766년에 태어나 1822년에 사망했다. 명필 배와 김상숙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큰아버지 김상복에게 입적됐다. 당쟁으로 낙향하여 고향인 충청도 홍성에서 주로 생활했다. 서화에 관심이 많았고, 문집 『화초만고』를 남겼다.
조선후기 문인 이병연의 「분매」·「정양사잡영」·「오대산」·「만폭동」 등을 수록한 시집.
사천시초 (槎川詩抄)
조선후기 문인 이병연의 「분매」·「정양사잡영」·「오대산」·「만폭동」 등을 수록한 시집.
대한제국기 외부대신, 농상공부대신,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관료.
이도재 (李道宰)
대한제국기 외부대신, 농상공부대신,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관료.
개항기 때, 선략장군, 용양위사과,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동기 (李東基)
개항기 때, 선략장군, 용양위사과,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서상렬은 을미사변 이후 충청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 이후 이필희 의진의 참고가 되었고, 이후 안승우 의진과 회합하여 유인석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였다. 관찰사 이남규·이중하가 이끄는 정부군과 전투하다가 낭천(지금의 강원도 화천군)에서 1896년 9월에 사망하였다.
서상렬 (徐相烈)
서상렬은 을미사변 이후 충청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 이후 이필희 의진의 참고가 되었고, 이후 안승우 의진과 회합하여 유인석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였다. 관찰사 이남규·이중하가 이끄는 정부군과 전투하다가 낭천(지금의 강원도 화천군)에서 1896년 9월에 사망하였다.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교리, 중학교수 등을 역임하다가 을미사변 이후 의병활동을 전개하였고, 국권 피탈 이후 자결한 관료·의병장·열사.
이만도 (李晩燾)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교리, 중학교수 등을 역임하다가 을미사변 이후 의병활동을 전개하였고, 국권 피탈 이후 자결한 관료·의병장·열사.
대한제국기 궁내부특진관, 전라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관료.
이승우 (李勝宇)
대한제국기 궁내부특진관, 전라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관료.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 시종원부경 등을 역임한 관료. 순국지사.
장태수 (張泰秀)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 시종원부경 등을 역임한 관료. 순국지사.
창도군은 북한에서 강원도의 남동부에 위치한 군이다. 1952년에 강원도 김화군, 회양군, 양구군의 일부 지역을 분리해 군을 신설하였다. 중심에 위치한 창도면의 지명을 따라 군의 이름을 지었다. 과거 '나라의 큰 군량창고 뒤에 있던 마을'이라 하여 ‘창뒤’라고 불리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창도’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1개 읍, 16개 리로 구성돼 있고 군 소재지는 창도읍이다. 내륙산간지대이며 북한강과 그 지류의 하천이 흐르고 있다. 식료품, 방직 및 피복, 기계 등의 지방공업과 농업이 발달하였다.
창도군 (昌道郡)
창도군은 북한에서 강원도의 남동부에 위치한 군이다. 1952년에 강원도 김화군, 회양군, 양구군의 일부 지역을 분리해 군을 신설하였다. 중심에 위치한 창도면의 지명을 따라 군의 이름을 지었다. 과거 '나라의 큰 군량창고 뒤에 있던 마을'이라 하여 ‘창뒤’라고 불리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창도’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1개 읍, 16개 리로 구성돼 있고 군 소재지는 창도읍이다. 내륙산간지대이며 북한강과 그 지류의 하천이 흐르고 있다. 식료품, 방직 및 피복, 기계 등의 지방공업과 농업이 발달하였다.
대한제국기 영일군내의 죽장, 흥해, 청하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장.
장헌문 (蔣憲文)
대한제국기 영일군내의 죽장, 흥해, 청하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장.
개항기 밀양부사, 내장원장, 농상공부협판 등을 역임한 관리.
정병하 (鄭秉夏)
개항기 밀양부사, 내장원장, 농상공부협판 등을 역임한 관리.
홍주의진(洪州義陣)은 1895년 및 1906년 충청남도 홍주군 일대에서 결성된 반일 의병부대이다. 두 차례에 걸쳐 결성된 의병부대로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기에 전국적인 항일 의병운동을 선도해 간 대규모 무장투쟁이다. 의병장 김복한(金福漢)과 민종식(閔宗植)은 의진(義陣)을 결성함과 동시에 각국 공사(公使)에게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여 대내외에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독립전쟁의 성격을 공표하였다. 홍주의진의 활동은 1910년 국권 상실 이후 독립전쟁으로 계승되어 1910년대 국내외의 독립전쟁과 3 · 1운동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
홍주의진 (洪州義陣)
홍주의진(洪州義陣)은 1895년 및 1906년 충청남도 홍주군 일대에서 결성된 반일 의병부대이다. 두 차례에 걸쳐 결성된 의병부대로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기에 전국적인 항일 의병운동을 선도해 간 대규모 무장투쟁이다. 의병장 김복한(金福漢)과 민종식(閔宗植)은 의진(義陣)을 결성함과 동시에 각국 공사(公使)에게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여 대내외에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독립전쟁의 성격을 공표하였다. 홍주의진의 활동은 1910년 국권 상실 이후 독립전쟁으로 계승되어 1910년대 국내외의 독립전쟁과 3 · 1운동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