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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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이 형제나 자손 등 후사(後嗣)가 없이 죽고 종친 중에서 왕위를 계승하는 경우, 해당 국왕의 생부(生父)에게 주던 존호(尊號).
대원군 (大院君)
조선시대 왕이 형제나 자손 등 후사(後嗣)가 없이 죽고 종친 중에서 왕위를 계승하는 경우, 해당 국왕의 생부(生父)에게 주던 존호(尊號).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후기 흥선대원군 관련 건물. 별당.
대원군 별장 (大院君 別莊)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후기 흥선대원군 관련 건물. 별당.
조선 고종의 부친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초상화.
대원군 초상화 (大院君 肖像畵)
조선 고종의 부친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초상화.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제14대 선조의 부친 덕흥대원군의 무덤.
덕흥대원군 묘 (德興大院君 墓)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제14대 선조의 부친 덕흥대원군의 무덤.
흥선대원군 효유문은 1894년, 흥선대원군이 동학농민운동과 관련하여 각 지역에 보낸 효유문이다. 대원군과 농민군의 밀접한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대원군의 정치적 입장과 행동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실물 사료이다.
흥선대원군 효유문 (興宣大院君 曉諭文)
흥선대원군 효유문은 1894년, 흥선대원군이 동학농민운동과 관련하여 각 지역에 보낸 효유문이다. 대원군과 농민군의 밀접한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대원군의 정치적 입장과 행동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실물 사료이다.
조선 후기 호조참판,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척신.
민승호 (閔升鎬)
조선 후기 호조참판,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척신.
조선 후기에, 공조참의, 공조판서, 광주부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민치구 (閔致久)
조선 후기에, 공조참의, 공조판서, 광주부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항기 봉상사제조, 장례원경 등을 역임한 관료.
김주현 (金疇鉉)
개항기 봉상사제조, 장례원경 등을 역임한 관료.
조선후기 병인박해와 관련된 천주교인.
박마르다 (朴Martha)
조선후기 병인박해와 관련된 천주교인.
병인박해는 조선 후기 1866년부터 1873년까지 8년 동안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된 천주교 박해이다. 프랑스와의 조약을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대신 천주교를 공인받으려는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회담은 국제 정세의 변화와 조선 정부 내의 반발로 결렬되었고,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다. 병인양요(1866년)와 남연군묘 도굴 사건(1868년), 신미양요(1871년) 등 서양 국가와의 충돌은 박해를 격화시켜 교회 조직이 철저히 파괴되었고, 수천 명의 순교자가 탄생했다. 1873년 흥선대원군의 하야로 박해가 끝났다.
병인박해 (丙寅迫害)
병인박해는 조선 후기 1866년부터 1873년까지 8년 동안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된 천주교 박해이다. 프랑스와의 조약을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대신 천주교를 공인받으려는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회담은 국제 정세의 변화와 조선 정부 내의 반발로 결렬되었고,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다. 병인양요(1866년)와 남연군묘 도굴 사건(1868년), 신미양요(1871년) 등 서양 국가와의 충돌은 박해를 격화시켜 교회 조직이 철저히 파괴되었고, 수천 명의 순교자가 탄생했다. 1873년 흥선대원군의 하야로 박해가 끝났다.
보덕사는 19세기에 가야산의 가야사(伽倻寺)를 계승하여 창건된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서원산(書院山)에 있는 사찰이다. 흥선대원군이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지관의 말을 듣고 부친이 묘를 옮기기 위해 1860년에 가야사를 불태우고 석탑이 있던 자리에 묘를 옮겼다. 그 후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지금의 자리에 보덕사를 창건하였다.
왕방산 보덕사 (王訪山 普德寺)
보덕사는 19세기에 가야산의 가야사(伽倻寺)를 계승하여 창건된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서원산(書院山)에 있는 사찰이다. 흥선대원군이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지관의 말을 듣고 부친이 묘를 옮기기 위해 1860년에 가야사를 불태우고 석탑이 있던 자리에 묘를 옮겼다. 그 후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지금의 자리에 보덕사를 창건하였다.
보부청은 개항 전후 시기에 설치된 보부상 전담 기구이다. 1876년에는 부상청으로 있었던 것이 1881년에는 부상청과 보부청으로 나누어졌다. 보부상 집단은 병인양요 이후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세력이 성장하였고 그 과정에서 기구도 강화되었다.
보부청 (褓負廳)
보부청은 개항 전후 시기에 설치된 보부상 전담 기구이다. 1876년에는 부상청으로 있었던 것이 1881년에는 부상청과 보부청으로 나누어졌다. 보부상 집단은 병인양요 이후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세력이 성장하였고 그 과정에서 기구도 강화되었다.
조선후기 병인박해 당시의 순교자.
김면호 (金勉浩)
조선후기 병인박해 당시의 순교자.
삼군부는 조선 후기 비변사가 폐지된 이후 설치되었던 최고 군령 기구이다. 일종의 최고군사위원회와 같은 기구로 의정부와 동격이었다. 비변사를 기반으로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세도 가문을 견제하고 군비 강화 등 권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비변사가 관장하던 군사적인 업무와 궁성의 수호, 서울의 치안을 담당하였다. 국방과 군사력에 관계되는 주요 관직의 인사권, 군제 조정과 각종 경제적 권한도 장악하였다. 대원군의 하야와 함께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하였다가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면서 폐지되었다. 대원군과 운명을 같이한 기구이다.
삼군부 (三軍府)
삼군부는 조선 후기 비변사가 폐지된 이후 설치되었던 최고 군령 기구이다. 일종의 최고군사위원회와 같은 기구로 의정부와 동격이었다. 비변사를 기반으로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세도 가문을 견제하고 군비 강화 등 권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비변사가 관장하던 군사적인 업무와 궁성의 수호, 서울의 치안을 담당하였다. 국방과 군사력에 관계되는 주요 관직의 인사권, 군제 조정과 각종 경제적 권한도 장악하였다. 대원군의 하야와 함께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하였다가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면서 폐지되었다. 대원군과 운명을 같이한 기구이다.
쇄국정책은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문호를 닫고 서양과 통상하지 않았던 대외정책이다.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지 않고 문호를 닫아 서로 통상하지 않는 정책을 말한다. 주로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의 대외정책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으나, 최근에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 또는 통상 거부 정책으로 고쳐서 표현하고 있다.
쇄국정책 (鎖國政策)
쇄국정책은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문호를 닫고 서양과 통상하지 않았던 대외정책이다.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지 않고 문호를 닫아 서로 통상하지 않는 정책을 말한다. 주로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의 대외정책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으나, 최근에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 또는 통상 거부 정책으로 고쳐서 표현하고 있다.
인천광역시 중구 백운산(白雲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
백운산 용궁사 (白雲山 龍宮寺)
인천광역시 중구 백운산(白雲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유후조 (柳厚祚)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1870년 흥선대원군의 명을 받아 승정원에서 정무를 전달, 집행하는 과정을 기록한 역사서.
은대조례 (銀臺條例)
1870년 흥선대원군의 명을 받아 승정원에서 정무를 전달, 집행하는 과정을 기록한 역사서.
김규락이 대원군집권기의 정사에 관해 견문한 내용을 수록한 역사서.
운하견문록 (雲下見聞錄)
김규락이 대원군집권기의 정사에 관해 견문한 내용을 수록한 역사서.
『운현궁(雲峴宮)의 봄』은 김동인이 지은 장편 역사소설이다. 중심인물 대원군은 상갓집 개처럼 행세하는 한편 아들 명복을 제왕으로 만들기 위해 교육을 시키는 이중적 생활을 한다. 그는 철종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명복으로 하여금 익종의 대를 잇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작가는 약육강식이라는 국제적 상황을 극복하고 외척인 안동 김씨의 장기 집권을 종식시키려 애썼던 대원군의 죽음을 애도한다. 하지만 소설은 핍박과 시련을 겪은 후 야망을 실현하는 흥선군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시대를 총체적으로 그리거나 그 의미를 묻는 데까지 나가지는 못한다.
운현궁의 봄 (雲峴宮의 봄)
『운현궁(雲峴宮)의 봄』은 김동인이 지은 장편 역사소설이다. 중심인물 대원군은 상갓집 개처럼 행세하는 한편 아들 명복을 제왕으로 만들기 위해 교육을 시키는 이중적 생활을 한다. 그는 철종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명복으로 하여금 익종의 대를 잇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작가는 약육강식이라는 국제적 상황을 극복하고 외척인 안동 김씨의 장기 집권을 종식시키려 애썼던 대원군의 죽음을 애도한다. 하지만 소설은 핍박과 시련을 겪은 후 야망을 실현하는 흥선군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시대를 총체적으로 그리거나 그 의미를 묻는 데까지 나가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