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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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1대 왕, 태조의 사촌동생으로,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종실.
이지 (李枝)
조선의 제1대 왕, 태조의 사촌동생으로,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종실.
의릉(義陵)은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의 능이다. 도조는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이춘이며, 태조 즉위 후 도왕 의릉으로 추존되었다. 의릉은 조선 전기 추존 왕릉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봉분에 병풍석이 설치되어 있으며, 문석인, 무석인, 장명등 등의 돌거리가 건립되어 있다. 의릉은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다.
의릉 (義陵)
의릉(義陵)은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의 능이다. 도조는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이춘이며, 태조 즉위 후 도왕 의릉으로 추존되었다. 의릉은 조선 전기 추존 왕릉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봉분에 병풍석이 설치되어 있으며, 문석인, 무석인, 장명등 등의 돌거리가 건립되어 있다. 의릉은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다.
고려후기 김삼개와 동북면을 침략한 여진족의 관리.
김삼선 (金三善)
고려후기 김삼개와 동북면을 침략한 여진족의 관리.
삼국시대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유리가 부여에서 고구려로 갈 때 수행한 관리.
옥지 (屋智)
삼국시대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유리가 부여에서 고구려로 갈 때 수행한 관리.
순릉(純陵)은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의 비 경순왕후 문주박씨의 능이다. 경순왕후는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 이춘의 왕후이며, 태조 즉위 후 경순왕후 순릉으로 추존되었다. 순릉은 사진 등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지만, 『춘관통고』로 볼 때 조선 전기 추존 왕릉의 전형적인 모습과 동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함경남도 함흥시 동명사에 있다.
순릉 (純陵)
순릉(純陵)은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의 비 경순왕후 문주박씨의 능이다. 경순왕후는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 이춘의 왕후이며, 태조 즉위 후 경순왕후 순릉으로 추존되었다. 순릉은 사진 등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지만, 『춘관통고』로 볼 때 조선 전기 추존 왕릉의 전형적인 모습과 동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함경남도 함흥시 동명사에 있다.
고려후기 김삼선과 동북면을 침략한 여진족의 관리.
김삼개 (金三介)
고려후기 김삼선과 동북면을 침략한 여진족의 관리.
「영경」은 조선 전기 세종 때 창제된 「발상」 11곡 중 제4번째 곡이다. 「발상」은 「용비어천가」에서 익조(翼祖)‧도조(度祖)‧태조(太祖)‧태종(太宗) 등 4조(祖)에게 있었던 조선 건국을 예지한 상서로운 사건에 대한 내용들만 모아 새롭게 가사를 지어 만든 모음곡이다. 그 중 「영경」은 ‘도조가 꿈에서 백룡을 흑룡으로부터 구하여 주었더니, 백룡이 다시 꿈에 나타나 사례하였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악보는 『세종실록』 권139에, 가사는 『세종실록』 권116에 전한다.
영경 (靈慶)
「영경」은 조선 전기 세종 때 창제된 「발상」 11곡 중 제4번째 곡이다. 「발상」은 「용비어천가」에서 익조(翼祖)‧도조(度祖)‧태조(太祖)‧태종(太宗) 등 4조(祖)에게 있었던 조선 건국을 예지한 상서로운 사건에 대한 내용들만 모아 새롭게 가사를 지어 만든 모음곡이다. 그 중 「영경」은 ‘도조가 꿈에서 백룡을 흑룡으로부터 구하여 주었더니, 백룡이 다시 꿈에 나타나 사례하였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악보는 『세종실록』 권139에, 가사는 『세종실록』 권116에 전한다.
<창부>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29년 이전에 창제된 ⟪발상(發祥)⟫ 아홉 개의 변(變) 중 제3변의 정재와 음악이며, 노랫말은 도조가 쏜 한 화살에 까치 두 마리가 떨어진 것이 태조가 일어날 징조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창부 (昌符)
<창부>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29년 이전에 창제된 ⟪발상(發祥)⟫ 아홉 개의 변(變) 중 제3변의 정재와 음악이며, 노랫말은 도조가 쏜 한 화살에 까치 두 마리가 떨어진 것이 태조가 일어날 징조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대동아공영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며 내세운 정치 슬로건이다. 일본이 1930년대까지 영유했던 ‘일만지[일본, 만주, 중국]’ 블록에, 1940년대에는 동남아시아까지 편입시켜 일본을 맹주로 하는 지역 위계 구조로 만든 개념이다. 일본의 패전과 함게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지만, 동아시아 지역에서 지금도 패권적 지역주의의 망령으로써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존공영의 구호와는 달리 위안부, 징병, 징용, 강제연행 등 식민지배의 폭력성을 드러내며 아시아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
대동아공영권 (大東亞共榮圈)
대동아공영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며 내세운 정치 슬로건이다. 일본이 1930년대까지 영유했던 ‘일만지[일본, 만주, 중국]’ 블록에, 1940년대에는 동남아시아까지 편입시켜 일본을 맹주로 하는 지역 위계 구조로 만든 개념이다. 일본의 패전과 함게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지만, 동아시아 지역에서 지금도 패권적 지역주의의 망령으로써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존공영의 구호와는 달리 위안부, 징병, 징용, 강제연행 등 식민지배의 폭력성을 드러내며 아시아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