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독립운동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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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렬은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가을부터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김제 일대에서 6인의 동지와 함께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위원이라는 명의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는 일곱 차례의 활동을 펼쳤는데, 동지들이 체포되면서 은신해 있다가 뒤늦게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곽경렬 (郭京烈)
곽경렬은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가을부터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김제 일대에서 6인의 동지와 함께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위원이라는 명의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는 일곱 차례의 활동을 펼쳤는데, 동지들이 체포되면서 은신해 있다가 뒤늦게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박운석은 보합단원으로서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에 평안북도 일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던 보합단원이 되어 평안북도 용천군 일대에서 박초식, 박운죽과 함께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박운석 (朴雲碩)
박운석은 보합단원으로서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에 평안북도 일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던 보합단원이 되어 평안북도 용천군 일대에서 박초식, 박운죽과 함께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박원국은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 조달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이후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하고 10여 명의 조직원들과 함께 평안남도 강동군과 평원군 일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금하는 활동을 펼치다가 체포되어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박원국 (朴元國)
박원국은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 조달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이후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하고 10여 명의 조직원들과 함께 평안남도 강동군과 평원군 일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금하는 활동을 펼치다가 체포되어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문재교는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일대에서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이다. 1917년부터 전라남도 일대에서 여러 동지들과 함께 권총과 칼 등을 휴대하고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문재교 (文在敎)
문재교는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일대에서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이다. 1917년부터 전라남도 일대에서 여러 동지들과 함께 권총과 칼 등을 휴대하고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독립공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수행하고 조국 광복을 달성하기 위해 발행한 군자금 모집의 공채이다. 독립운동을 위한 재정이 부족해 임시정부 운영이 어려워지자 1919년 11월 29일 「독립공채조례」를 제정·공포하여 공채를 발행했다. 공채명은 ‘대한민국원년독립공채’였으며 이자는 연 100분의 5로 하고 공채 본금은 우리 나라가 독립한 뒤 5개년부터 30년 이내에 수시로 상환하기로 하였다. 독립공채는 비밀 국내 행정조직을 통해 판매되어 군자금으로 쓰였는데, 미주 하와이 일대의 동포들이 가장 많이 소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립공채 (獨立公債)
독립공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수행하고 조국 광복을 달성하기 위해 발행한 군자금 모집의 공채이다. 독립운동을 위한 재정이 부족해 임시정부 운영이 어려워지자 1919년 11월 29일 「독립공채조례」를 제정·공포하여 공채를 발행했다. 공채명은 ‘대한민국원년독립공채’였으며 이자는 연 100분의 5로 하고 공채 본금은 우리 나라가 독립한 뒤 5개년부터 30년 이내에 수시로 상환하기로 하였다. 독립공채는 비밀 국내 행정조직을 통해 판매되어 군자금으로 쓰였는데, 미주 하와이 일대의 동포들이 가장 많이 소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형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에 만주와 경성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한일 강제 병합 이후 만주에서 군자금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였고, 치료소와 만선토지개간주식회사, 미곡상과 정미소 등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임시정부에 조달하였다. 8·15광복 이후에는 단국대학교를 설립하고 백남학원을 인수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등 교육 활동에 전념하였다.
장형 (張炯)
장형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에 만주와 경성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한일 강제 병합 이후 만주에서 군자금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였고, 치료소와 만선토지개간주식회사, 미곡상과 정미소 등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임시정부에 조달하였다. 8·15광복 이후에는 단국대학교를 설립하고 백남학원을 인수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등 교육 활동에 전념하였다.
임유식은 일제강점기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독립단과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계하면서 군자금 모집에 관한 증명서와 권총을 들고 부호가를 돌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징수하여 임시정부로 보냈다. 1922년 1월에 검거되어 징역 10년 형을 언도받았다.
임유식 (林懰植)
임유식은 일제강점기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독립단과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계하면서 군자금 모집에 관한 증명서와 권총을 들고 부호가를 돌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징수하여 임시정부로 보냈다. 1922년 1월에 검거되어 징역 10년 형을 언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