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용 ()

근대사
인물
1920년 조선독립군사령부를 조직하고 조선총독 암살 계획을 수립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명
박환(朴桓)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2년
사망 연도
1929년
본관
진원(珍原)
출생지
전라남도 보성군
주요 경력
신민보 기자|암살단 조직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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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박문용은 1920년 조선독립군사령부를 조직하고 조선총독 암살 계획을 수립한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협조를 얻어 조선독립군사령부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자금 모금에 나섰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미국 의원단의 경성(지금의 서울특별시) 방문에 맞추어 조선총독 등의 암살 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의
1920년 조선독립군사령부를 조직하고 조선총독 암살 계획을 수립한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박문용(朴文鎔, 1882~1929)은 전라남도 보성군 출신으로, 본관은 진원(珍原), 이명(異名)은 박환(朴桓)이다.

주요 활동

1913년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면장으로 재직하였다. 1914년 11월경 중국으로 망명하여 베이징〔北京〕에서 진문대학을 다녔고, 톈진〔天津〕에서 『 신민보』 기자로 활동하였다. 1919년 7월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노동총판인 안창호와 회견하고 그해 말 경성에 들어왔다.

1920년 2월에 한우석과 함께 다시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지도자인 김철과 회견하고 경성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필요한 권총을 빌려 줄 것을 요청하였다. 3월에 다시 경성으로 돌아와 조선독립군사령부 조직에 나섰다.

6월에는 전라남도 광주군(지금의 광주광역시)에서 권총을 휴대하고 독립운동자금 모금에 나섰으나 실패하였다. 같은 해 8월 미국 의원단이 경성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조선총독 및 정무총감 등을 제거할 암살단을 조직하였다. 하지만 한우석이 검거됨에 따라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그 자신도 체포되었다.

1921년 11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강도살인 예비 및 제령(制令) 제7호 위반과 총포 화약류 취체령 위반, 사기죄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追敍)되었다.

참고문헌

신문 · 잡지

『동아일보』(1921. 3. 6)

판결문

「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21. 11. 15)
「예심종결서」(경성지방법원, 1921.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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