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돌덧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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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은 사람의 시신을 매장한 시설물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후기 구석기시대에 인간의 지능 발달과 함께 무덤의 기념물화가 시작되면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식의 무덤들이 만들어졌다. 무덤 중에서도 고대국가 형성 이후의 무덤을 고분이라 하여 역사를 연구하고 재구성하는 학술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고분에 대한 연구는 묘지와 그 분포, 봉토 및 묘역 시설, 매장주체시설 및 매장법, 껴묻거리(부장품) 등 4가지 요소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다.
고분 (古墳)
고분은 사람의 시신을 매장한 시설물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후기 구석기시대에 인간의 지능 발달과 함께 무덤의 기념물화가 시작되면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식의 무덤들이 만들어졌다. 무덤 중에서도 고대국가 형성 이후의 무덤을 고분이라 하여 역사를 연구하고 재구성하는 학술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고분에 대한 연구는 묘지와 그 분포, 봉토 및 묘역 시설, 매장주체시설 및 매장법, 껴묻거리(부장품) 등 4가지 요소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다.
신라고분은 삼국시대 신라부터 통일신라까지의 무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주의 신라고분은 신라 최고 지배자의 칭호가 이사금에서 마립간으로, 왕으로 바뀌어 감에 따라 묘제도 함께 변화하였다. 신라식 덧널무덤은 덧널 위에 야트막한 봉토를 쌓은 형태로 사로국이 신라국가로 탈바꿈하는 시기의 것이다. 4세기 후반부터 등장하는 돌무지덧널무덤은 금관과 금제 허리띠 등 각종 금제품을 다량 부장한 경주 시내 평지의 대형분들이다. 6세기 전반 중앙집권체제 확립과 함께 돌방흙무덤으로 교체되며, 8세기 후반 신라 지배체제의 와해되면서 소형 돌덧널무덤으로 바뀌었다.
신라고분 (新羅古墳)
신라고분은 삼국시대 신라부터 통일신라까지의 무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주의 신라고분은 신라 최고 지배자의 칭호가 이사금에서 마립간으로, 왕으로 바뀌어 감에 따라 묘제도 함께 변화하였다. 신라식 덧널무덤은 덧널 위에 야트막한 봉토를 쌓은 형태로 사로국이 신라국가로 탈바꿈하는 시기의 것이다. 4세기 후반부터 등장하는 돌무지덧널무덤은 금관과 금제 허리띠 등 각종 금제품을 다량 부장한 경주 시내 평지의 대형분들이다. 6세기 전반 중앙집권체제 확립과 함께 돌방흙무덤으로 교체되며, 8세기 후반 신라 지배체제의 와해되면서 소형 돌덧널무덤으로 바뀌었다.
가야고분(加耶古墳)은 낙동강 중하류역, 남강 유역, 섬진강 유역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무덤이다. 가야는 서기전 1세기부터 서기 6세기 중엽까지 존속하였다. 공간적 범위는 낙동강 중하류역과 남강 유역이 중심이지만, 가야 전성기인 5세기 후반 대~6세기 초엽 가야의 영역은 섬진강 유역권까지 이른다. 가야고분은 널무덤, 덧널무덤, 구덩식돌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 등 계기적인 순으로 형식이 변화한다. 김해 대성동고분군, 고령 지산동고분군, 함안 말이산고분군, 고성 송학동고분군 등이 유력 가야 세력의 왕묘역이다.
가야고분 (加耶古墳)
가야고분(加耶古墳)은 낙동강 중하류역, 남강 유역, 섬진강 유역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무덤이다. 가야는 서기전 1세기부터 서기 6세기 중엽까지 존속하였다. 공간적 범위는 낙동강 중하류역과 남강 유역이 중심이지만, 가야 전성기인 5세기 후반 대~6세기 초엽 가야의 영역은 섬진강 유역권까지 이른다. 가야고분은 널무덤, 덧널무덤, 구덩식돌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 등 계기적인 순으로 형식이 변화한다. 김해 대성동고분군, 고령 지산동고분군, 함안 말이산고분군, 고성 송학동고분군 등이 유력 가야 세력의 왕묘역이다.
원삼국시대는 우리나라 고고학 편년상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 사이의 시기이다. 서기전 100년경부터 서기 300년경까지의 약 400년간의 기간을 이른다. 청동기의 실용성 소멸, 철기생산의 보급 및 확대, 김해토기의 출현, 벼농사의 발전, 고인돌의 소멸, 돌덧널무덤의 발달 등 문화적 특징이 나타났다. 고고학계에서는 철기시대 Ⅱ기, 역사학계에서는 삼한시대·부족국가시대·성읍국가시대·삼국시대 초기·삼국시대 전기 등으로 명명하였다. 이러한 용어상의 불편과 불합리를 줄이고 고고학계와 문헌사학계에서 모두 쓸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고고학계에서 제안한 용어이다.
원삼국시대 (原三國時代)
원삼국시대는 우리나라 고고학 편년상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 사이의 시기이다. 서기전 100년경부터 서기 300년경까지의 약 400년간의 기간을 이른다. 청동기의 실용성 소멸, 철기생산의 보급 및 확대, 김해토기의 출현, 벼농사의 발전, 고인돌의 소멸, 돌덧널무덤의 발달 등 문화적 특징이 나타났다. 고고학계에서는 철기시대 Ⅱ기, 역사학계에서는 삼한시대·부족국가시대·성읍국가시대·삼국시대 초기·삼국시대 전기 등으로 명명하였다. 이러한 용어상의 불편과 불합리를 줄이고 고고학계와 문헌사학계에서 모두 쓸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고고학계에서 제안한 용어이다.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돌널무덤·돌덧널무덤·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高靈 池山洞 古墳群)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돌널무덤·돌덧널무덤·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벽돌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公州 武寧王陵과 王陵園)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벽돌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경상남도 고성군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固城 松鶴洞 古墳群)
경상남도 고성군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돌덧널무덤은 시신을 옮기는 널길 없이 석재로 네 벽을 쌓은 무덤이다. 한자로는 ‘석곽묘(石槨墓)’이다. 용어 사용에 이견이 있으나 나무널을 넣을 수 있는 공간과 규모를 가지고 피장자의 착장품과 부장유물이 있는 무덤을 일컫는다. 한반도의 돌덧널무덤은 청동기시대 고인돌의 하부구조에서 보이기 시작하여 삼국시대에 가장 성행하였으며 조선 초기까지 사용되었다. 백제에서는 중·소형급 무덤에서 확인되며 가야에서는 주요 묘제로 사용되었다. 한반도 동남부지방에서 가장 성행한 무덤 양식으로, 굴식무덤이 보편화되는 6세기 중엽부터 쇠퇴하였다.
돌덧널무덤
돌덧널무덤은 시신을 옮기는 널길 없이 석재로 네 벽을 쌓은 무덤이다. 한자로는 ‘석곽묘(石槨墓)’이다. 용어 사용에 이견이 있으나 나무널을 넣을 수 있는 공간과 규모를 가지고 피장자의 착장품과 부장유물이 있는 무덤을 일컫는다. 한반도의 돌덧널무덤은 청동기시대 고인돌의 하부구조에서 보이기 시작하여 삼국시대에 가장 성행하였으며 조선 초기까지 사용되었다. 백제에서는 중·소형급 무덤에서 확인되며 가야에서는 주요 묘제로 사용되었다. 한반도 동남부지방에서 가장 성행한 무덤 양식으로, 굴식무덤이 보편화되는 6세기 중엽부터 쇠퇴하였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경주 황남리 고분군 (慶州 皇南里 古墳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구덩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부산 복천동 고분군 (釜山 福泉洞 古墳群)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구덩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경주 황성동 고분(慶州 隍城洞 古墳)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성동에 있는 원삼국시대~삼국시대 무덤군이다. 경주시 북서쪽에 자리한 형산강변 하상 충적 대지에 넓게 분포하는 대규모 무덤군으로, 원삼국시대 널무덤 단계부터 통일신라시대 돌방무덤 단계까지 장기간 조영되었다. 신라 무덤의 계기적인 변천을 명확하게 보여 주며, 사로국 형성 과정과 신라의 발전 양상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경주 황성동 고분 (慶州 隍城洞 古墳)
경주 황성동 고분(慶州 隍城洞 古墳)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성동에 있는 원삼국시대~삼국시대 무덤군이다. 경주시 북서쪽에 자리한 형산강변 하상 충적 대지에 넓게 분포하는 대규모 무덤군으로, 원삼국시대 널무덤 단계부터 통일신라시대 돌방무덤 단계까지 장기간 조영되었다. 신라 무덤의 계기적인 변천을 명확하게 보여 주며, 사로국 형성 과정과 신라의 발전 양상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요령 십이대영자 유적은 중국 요령성 조양시 조양현 십이대영자에 있는 청동기시대 앞트기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3기의 무덤이 발견되었으나, 2기는 이미 파손되었고 1기만 발굴하였다. 부부합장을 하였고 부장품은 청동단검과 잔무늬거울이 나왔다. 비파형동검과 잔무늬거울이 같이 출토된다는 점에서 한국의 청동기문화·고조선과 연결하여 이 유적의 축조 주체에 따라 고조선의 중심지 추정이 가능하다. 1980년대부터 서기전 8세기 경에 고조선이 남긴 유적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또한 최근 연구자들은 이 유적이 요동의 청동기 문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요령 십이대영자 유적 (遼寧 十二臺營子 遺蹟)
요령 십이대영자 유적은 중국 요령성 조양시 조양현 십이대영자에 있는 청동기시대 앞트기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3기의 무덤이 발견되었으나, 2기는 이미 파손되었고 1기만 발굴하였다. 부부합장을 하였고 부장품은 청동단검과 잔무늬거울이 나왔다. 비파형동검과 잔무늬거울이 같이 출토된다는 점에서 한국의 청동기문화·고조선과 연결하여 이 유적의 축조 주체에 따라 고조선의 중심지 추정이 가능하다. 1980년대부터 서기전 8세기 경에 고조선이 남긴 유적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또한 최근 연구자들은 이 유적이 요동의 청동기 문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울주 검단리 유적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집터 주변을 둘러싼 도랑인 환호, 고인돌 등이 발견된 복합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주목할 점은 국내 최초로 완전한 모습을 갖춘 환호와 이와 관련된 마을의 구조가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환호는 능선을 따라 타원형으로 둘러져 있는데, 안쪽에는 집자리, 도랑, 구덩유구가 있고 바깥쪽에는 집자리 외에 무덤 3기가 있다. 이 유적은 환호 설치 이전의 취락, 환호취락, 환호가 폐기된 후의 취락 3단계로 나누어진다. 이 유적은 우리나라 환호 취락 유적 조사의 시발점으로 평가 받는다.
울주 검단리 유적 (蔚州 檢丹里 遺蹟)
울주 검단리 유적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집터 주변을 둘러싼 도랑인 환호, 고인돌 등이 발견된 복합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주목할 점은 국내 최초로 완전한 모습을 갖춘 환호와 이와 관련된 마을의 구조가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환호는 능선을 따라 타원형으로 둘러져 있는데, 안쪽에는 집자리, 도랑, 구덩유구가 있고 바깥쪽에는 집자리 외에 무덤 3기가 있다. 이 유적은 환호 설치 이전의 취락, 환호취락, 환호가 폐기된 후의 취락 3단계로 나누어진다. 이 유적은 우리나라 환호 취락 유적 조사의 시발점으로 평가 받는다.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삼국시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능. 왕릉.
김해 수로왕릉 (金海 首露王陵)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삼국시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능. 왕릉.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돌, 특히 석판으로 만든 널.
돌널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돌, 특히 석판으로 만든 널.
나주 복암리 고분군은 전라남도 나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굴식돌방무덤·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4기가 남아 있다. 고분군은 영산강이 흐르는 다시벌에 ‘ㄴ’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주목할 점은 3호분에서 3세기 옹관부터 7세기 사비백제기 석실분까지 동일 집단이 만든 여러 묘제가 나온 것이다. 이 집단이 백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도 토착문화와 그 위상을 그대로 유지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규두대도(圭頭大刀) 등 일본 관련 유물이 나왔고, 영산강 유역의 묘제의 변천과 조영 방법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나주 복암리 고분군 (羅州 伏巖里 古墳群)
나주 복암리 고분군은 전라남도 나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굴식돌방무덤·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4기가 남아 있다. 고분군은 영산강이 흐르는 다시벌에 ‘ㄴ’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주목할 점은 3호분에서 3세기 옹관부터 7세기 사비백제기 석실분까지 동일 집단이 만든 여러 묘제가 나온 것이다. 이 집단이 백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도 토착문화와 그 위상을 그대로 유지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규두대도(圭頭大刀) 등 일본 관련 유물이 나왔고, 영산강 유역의 묘제의 변천과 조영 방법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무덤군·토기류 관련 복합유적. 유물산포지.
대구 시지동 유적 (大邱 時至洞 遺蹟)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무덤군·토기류 관련 복합유적. 유물산포지.
부산 연산동 고분군은 부산광역시 연제구에 있는 삼국시대 구덩식돌덧널무덤·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이 고분은 연산동 일대 지배자의 집단분묘로 10기의 대형고분과 많은 소형 돌덧널무덤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형고분은 5세기 후반부터 7세기까지 순차적으로 만들어졌다. 매장시설은 깬돌로 네 벽을 쌓고 뚜껑 돌을 덮은 구덩식돌덧널무덤과 ‘일(日)’자형의 으뜸·딸린덧널식돌덧널무덤 등이 있다. 이 무덤군에서 출토된 쇠판갑옷·투구·갑옷비늘 등 철기류를 통해 이 지역 지배자가 군사적인 성격을 지녔으며 신라에 복속된 정치체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산 연산동 고분군 (釜山 蓮山洞 古墳群)
부산 연산동 고분군은 부산광역시 연제구에 있는 삼국시대 구덩식돌덧널무덤·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이 고분은 연산동 일대 지배자의 집단분묘로 10기의 대형고분과 많은 소형 돌덧널무덤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형고분은 5세기 후반부터 7세기까지 순차적으로 만들어졌다. 매장시설은 깬돌로 네 벽을 쌓고 뚜껑 돌을 덮은 구덩식돌덧널무덤과 ‘일(日)’자형의 으뜸·딸린덧널식돌덧널무덤 등이 있다. 이 무덤군에서 출토된 쇠판갑옷·투구·갑옷비늘 등 철기류를 통해 이 지역 지배자가 군사적인 성격을 지녔으며 신라에 복속된 정치체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나무널무덤·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경주 조양동 유적 (慶州 朝陽洞 遺蹟)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철기시대 이후 나무널무덤·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대구광역시 북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대구 구암동 고분군 (大邱 鳩岩洞 古墳群)
대구광역시 북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