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무정부주의"
검색결과 총 10건
무정부주의운동(無政府主義運動)은 일제강점기 국가권력인 일제에 저항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개혁하고자 한 운동이다. 압박받고 지배당하는 자들을 중심으로 노동과 자본이란 생산관계에 입각한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비판하고 국가권력 등 모든 사회적 권력을 부정하며 절대 자유가 행해지는 사회를 추구한 해방운동이다. 사회주의 계열과는 자본주의 비판에 공조하면서 러시아 공산주의의 당 중심의 볼셰비즘에 비판적이었다. 전시 체제기에 들어가면서 중국 관내에 거주하던 무정부주의자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민족주의 계열과 공동전선을 도모하였다.
무정부주의운동 (無政府主義運動)
무정부주의운동(無政府主義運動)은 일제강점기 국가권력인 일제에 저항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개혁하고자 한 운동이다. 압박받고 지배당하는 자들을 중심으로 노동과 자본이란 생산관계에 입각한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비판하고 국가권력 등 모든 사회적 권력을 부정하며 절대 자유가 행해지는 사회를 추구한 해방운동이다. 사회주의 계열과는 자본주의 비판에 공조하면서 러시아 공산주의의 당 중심의 볼셰비즘에 비판적이었다. 전시 체제기에 들어가면서 중국 관내에 거주하던 무정부주의자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민족주의 계열과 공동전선을 도모하였다.
1920년대 중국 북경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
1920년대 중국 북경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1929년 7월 만주에서 결성된 무정부주의 운동단체.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在滿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
1929년 7월 만주에서 결성된 무정부주의 운동단체.
1924년 중국 북경(北京)에서 조직되었던 무정부주의운동단체.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在中國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
1924년 중국 북경(北京)에서 조직되었던 무정부주의운동단체.
1927년 제주도에서 조직되었던 계(契)조직을 통한 무정부주의운동단체.
우리계 (宇利稧)
1927년 제주도에서 조직되었던 계(契)조직을 통한 무정부주의운동단체.
유림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노농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어문학자, 아나키스트이다. 1898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술국치 당시 손가락을 잘라 충군애국의 4자 혈서를 써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21년 이후 북경과 상해에서 신채호,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22년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다. 김두봉, 신채호 등과 함께 『한글말본』, 『깊더조선말본』 등을 저술하였다. 해방 후 아나키즘 이념정당인 독립노농당을 결성해 당수에 취임하고 『노농신문』을 발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유림 (柳林)
유림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노농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어문학자, 아나키스트이다. 1898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술국치 당시 손가락을 잘라 충군애국의 4자 혈서를 써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21년 이후 북경과 상해에서 신채호,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22년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다. 김두봉, 신채호 등과 함께 『한글말본』, 『깊더조선말본』 등을 저술하였다. 해방 후 아나키즘 이념정당인 독립노농당을 결성해 당수에 취임하고 『노농신문』을 발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조선혁명자연맹은 1937년 중국 난징에서 조직된 무정부주의세력의 항일 독립운동단체이다. 중일전쟁의 발발로 한중 연합전선이 강화되면서 한인 독립운동 세력의 단결과 통일을 위해 창설하였다. 유자명·정화암·나월환 등 20여 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었다. 김구계열과 함께 활동하며 중국 무정부주의세력과 연대하였다.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과 반대 입장을 유보하고, 협동전선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특히 한국국민당과 조선민족혁명당 두 세력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자임하였다. 1930년대에 조선민족혁명당 등과 함께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여 좌익 정당의 통일에 기여하였다.
조선혁명자연맹 (朝鮮革命者聯盟)
조선혁명자연맹은 1937년 중국 난징에서 조직된 무정부주의세력의 항일 독립운동단체이다. 중일전쟁의 발발로 한중 연합전선이 강화되면서 한인 독립운동 세력의 단결과 통일을 위해 창설하였다. 유자명·정화암·나월환 등 20여 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었다. 김구계열과 함께 활동하며 중국 무정부주의세력과 연대하였다.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과 반대 입장을 유보하고, 협동전선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특히 한국국민당과 조선민족혁명당 두 세력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자임하였다. 1930년대에 조선민족혁명당 등과 함께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여 좌익 정당의 통일에 기여하였다.
진우연맹은 1925년 대구에서 조직되었던 무정부주의단체이다. 서동성·방한상 등이 무정부주의사상을 연구할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1926년 4월 회합에서 무정부주의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2년 이내에 대구의 주요 관공서를 파괴하고 요인 암살을 위한 파괴단을 조직하기로 결정하였다. 1926년 7월 일본경찰은 연맹원인 신재모·방한상·마명 등을 구속·기소하였다. 1927년 7월 대구지방법원은 방한상·신재모·김정근·서학은 각 징역 5년, 구리하라·가스모토·동성·마명·우해운 각 징역 3년, 정명준·안달득은 각 징역 2년, 하종진·김동석 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였다.
진우연맹 (眞友聯盟)
진우연맹은 1925년 대구에서 조직되었던 무정부주의단체이다. 서동성·방한상 등이 무정부주의사상을 연구할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1926년 4월 회합에서 무정부주의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2년 이내에 대구의 주요 관공서를 파괴하고 요인 암살을 위한 파괴단을 조직하기로 결정하였다. 1926년 7월 일본경찰은 연맹원인 신재모·방한상·마명 등을 구속·기소하였다. 1927년 7월 대구지방법원은 방한상·신재모·김정근·서학은 각 징역 5년, 구리하라·가스모토·동성·마명·우해운 각 징역 3년, 정명준·안달득은 각 징역 2년, 하종진·김동석 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였다.
1920년대 관서·관북지방에 조직되었던 무정부주의 운동단체.
흑우회 (黑友會)
1920년대 관서·관북지방에 조직되었던 무정부주의 운동단체.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이후에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00년 경상북도 선산군 선산면 출생으로, 1923년 4월 도쿄에서 박열(朴烈) 등과 비밀결사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하였고, 1926년 11월 흑색청년연맹(黑色靑年聯盟)을 조직하였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경상북도 선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1972년 제헌동지회 회원으로 10월 유신을 지지하는 성명서 발표에 동참했다. 1983년 7월 5일 사망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육홍균 (陸洪均)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이후에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00년 경상북도 선산군 선산면 출생으로, 1923년 4월 도쿄에서 박열(朴烈) 등과 비밀결사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하였고, 1926년 11월 흑색청년연맹(黑色靑年聯盟)을 조직하였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경상북도 선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1972년 제헌동지회 회원으로 10월 유신을 지지하는 성명서 발표에 동참했다. 1983년 7월 5일 사망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