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묵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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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견은 조선 전기 「팔준도」, 「몽유도원도」, 「대소가의장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세종 대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문종과 단종을 거쳐 세조 대까지도 화원으로 활약했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기면서 그가 소장하고 있던 고화들을 섭렵하여 자신의 화풍을 형성하는 토대로 삼았다. 북송 때의 화원 곽희의 화풍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다른 화풍의 요소를 수용하여 자기 나름의 독특한 양식을 이룩하여 조선 중기까지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산수화에 가장 뛰어났지만 초상·화훼·매죽·노안·누각·말·의장도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안견 (安堅)
안견은 조선 전기 「팔준도」, 「몽유도원도」, 「대소가의장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세종 대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문종과 단종을 거쳐 세조 대까지도 화원으로 활약했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기면서 그가 소장하고 있던 고화들을 섭렵하여 자신의 화풍을 형성하는 토대로 삼았다. 북송 때의 화원 곽희의 화풍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다른 화풍의 요소를 수용하여 자기 나름의 독특한 양식을 이룩하여 조선 중기까지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산수화에 가장 뛰어났지만 초상·화훼·매죽·노안·누각·말·의장도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묵죽화책』은 조선 초기의 화가로 추정되는 이수문이 그린 화첩이다. 현재 일본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현재 마쓰다이라 고토가 소장하고 있다. 1424년에 그린 화책으로 총 10장의 대나무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문인화가의 간결하고 서예적인 묵죽과 달리 바위·언덕·벼랑·비·바람· 달 등을 배경으로 밀집된 죽림의 모습을 그렸다. 맨 마지막 장의 왼편 상단에는 관기(款記)와 화가의 서명이 있다. 이 관기를 통해 종래 명나라 사람이라고 여겼던 이수문을 조선인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 화책은 화가 이수문의 국적 문제를 규명해 볼 수 있는 유력한 단서이다.
묵죽화책 (墨竹畵冊)
『묵죽화책』은 조선 초기의 화가로 추정되는 이수문이 그린 화첩이다. 현재 일본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현재 마쓰다이라 고토가 소장하고 있다. 1424년에 그린 화책으로 총 10장의 대나무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문인화가의 간결하고 서예적인 묵죽과 달리 바위·언덕·벼랑·비·바람· 달 등을 배경으로 밀집된 죽림의 모습을 그렸다. 맨 마지막 장의 왼편 상단에는 관기(款記)와 화가의 서명이 있다. 이 관기를 통해 종래 명나라 사람이라고 여겼던 이수문을 조선인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 화책은 화가 이수문의 국적 문제를 규명해 볼 수 있는 유력한 단서이다.
「묵죽도」는 1625년 왕실 종친 화가인 이정이 수묵으로 그린 대나무 그림이다. 이정의 묵죽도는 대나무의 생태와 기후에 따른 변화 양상을 다양하고 독자적인 양식으로 화폭에 담아냈다. 특히 소재가 지닌 특징을 부각시키는 화면 구성을 보이며, 농담의 차이를 이용한 전·후위 대나무를 조화롭게 표현하는 기법을 완성하였다.
묵죽도 (墨竹圖)
「묵죽도」는 1625년 왕실 종친 화가인 이정이 수묵으로 그린 대나무 그림이다. 이정의 묵죽도는 대나무의 생태와 기후에 따른 변화 양상을 다양하고 독자적인 양식으로 화폭에 담아냈다. 특히 소재가 지닌 특징을 부각시키는 화면 구성을 보이며, 농담의 차이를 이용한 전·후위 대나무를 조화롭게 표현하는 기법을 완성하였다.
유덕장은 조선 후기 「묵죽도」 8폭 병풍, 「연월죽도」 등의 그림을 그린 문신, 화가이다. 이정의 묵죽화풍과 가전 화풍을 계승하여 자신만의 개성적인 묵죽화풍을 정립하였다. 조선 중기 묵죽화의 형식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조선 후기 묵죽화의 시작을 알리는 교량적인 역할을 하였다.
유덕장 (柳德章)
유덕장은 조선 후기 「묵죽도」 8폭 병풍, 「연월죽도」 등의 그림을 그린 문신, 화가이다. 이정의 묵죽화풍과 가전 화풍을 계승하여 자신만의 개성적인 묵죽화풍을 정립하였다. 조선 중기 묵죽화의 형식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조선 후기 묵죽화의 시작을 알리는 교량적인 역할을 하였다.
신잠은 조선 전기 「심매도」, 「사계화조도」, 「묵죽도」 등을 그린 문신이자 서화가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신숙주이며, 아버지는 예조참판 신종호이다. 1519년에 현량과에 급제하였으나 기묘사화로 파방되었다. 1521년에는 다시 신사무옥에 연루되었고, 이후 20여 년간 귀양과 은거를 하며 서화에만 몰두했다. 시서화에 모두 뛰어나 삼절이라고 평가받았다. 연작 형식의 묵죽도 병풍과 화첩을 남긴 문인화가로 이름이 높았다.
신잠 (申潛)
신잠은 조선 전기 「심매도」, 「사계화조도」, 「묵죽도」 등을 그린 문신이자 서화가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신숙주이며, 아버지는 예조참판 신종호이다. 1519년에 현량과에 급제하였으나 기묘사화로 파방되었다. 1521년에는 다시 신사무옥에 연루되었고, 이후 20여 년간 귀양과 은거를 하며 서화에만 몰두했다. 시서화에 모두 뛰어나 삼절이라고 평가받았다. 연작 형식의 묵죽도 병풍과 화첩을 남긴 문인화가로 이름이 높았다.
함제건은 조선 후기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도화서 화원이다. 현종 대부터 숙종 대에 걸쳐 궁중에서 다양한 행사의 도감에 참여하였다. 1682년에는 통신사행에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일본 측 문사들의 요청으로 많은 작품을 제작한 기록이 전한다.
함제건 (咸悌健)
함제건은 조선 후기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도화서 화원이다. 현종 대부터 숙종 대에 걸쳐 궁중에서 다양한 행사의 도감에 참여하였다. 1682년에는 통신사행에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일본 측 문사들의 요청으로 많은 작품을 제작한 기록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