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 「심매도」, 「사계화조도」, 「묵죽도」 등을 그린 문신이자 서화가.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이후 양주(楊州)로 이배되었다가 편의를 받아 아차산 아래에 은거하며 서화에만 몰두했다. 1543년(중종 38) 다시 등용되어 태인현감과 간성군수를 거쳤고, 상주목사를 지내다가 사망했다.
시서화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고 평가받았다. 특히 연작 형식의 묵죽도 병풍이나 화첩을 많이 남긴 문인화가로 이름이 높았다. 어숙권(魚叔權)은 『패관잡기(稗官雜記)』 2권에서 “묵죽(墨竹)에 뛰어난 인물로 현감 신잠이 있다[墨竹有縣監申潛].”라고 했고,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도 인용되었다.
전해지는 작품으로는 「심매도(尋梅圖)」, 「사계화조도(四季花鳥圖)」, 「묵죽도(墨竹圖)」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패관잡기(稗官雜記)』
- 『월정만필(月汀漫筆)』
단행본
- 『한국역대서화가사전 상』(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논문
- 이재숙, 「영천자 신잠의 삶과 시세계: 유인의 삶과 의식 변화 양상을 중심으로」(『동양한문학연구』 23, 동양한문학회, 2006)
- 백인산, 「조선시대 묵죽화 연구」(동국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0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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